저는 10여 년의 유치원 교사 생활을 마치고 엄마가 되었습니다.
교사 생활을 오래 하며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고, 내 아이가 생긴다면 얼마나 기쁠까? 나는 육아를 잘할 수 있겠지? 하는 자신감이 가득했죠. 하지만 현실 육아는 유치원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어요.
쏟아지는 정보 사이에서도 전 기준을 세우고 야무지게 육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책을 구매하진 않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책을 골라 재미있게 읽어줄 수 있었고, 아기의 옹알이에도 따뜻한 반응을 아끼지 않으며 상호작용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엄마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아이의 발달이 빠르지 않을지 하는 기대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노력과 기대와는 달리, 아이의 기질은 예민했고 발달은 느렸어요. 낯가림이 심한 것은 물론, 오감 놀이 시 촉감에 예민해 많이 울었죠. 뒤집기, 앉기, 기기, 서기, 걷기 등의 대근육 발달도 모두 느렸어요. 친구들이 모두 걸을 때도 걷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아이의 발달에 욕심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아기 발달은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우리 아이를 친구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엄마도 아이도 너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이의 성장을 믿고 꾸준히 한계단 한계단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켜봐 주자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도통 아이의 말이 트이지 않았습니다. 22개월 무렵 빠른 친구들은 벌써 대화를 나누고 음정에 맞추어 노래도 부르는데 우리 아이는 ‘엄마, 아빠, 이거’ 세 단어와 ‘주세요’ 손짓, 그리고 옹알이가 표현의 전부였죠.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했어요. ‘기다리면 곧 말이 트인다, 한번 터지면 금방 말한다’고요.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매일 육아하는 부모에게 기다림은 참 어려운 시간인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아이는 언어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언어치료를 받으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같은 고민이 있으신 부모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 27개월 무렵, 어린이집 입소하면 감기에 자주 걸린다더니.. 정말 지겹도록 찾아오는 감기에 매주 출석 도장 찍듯이 자주 방문하던 소아청소년과 원장님께서 하루는 아이가 몇 개월인지 묻더니 언어가 많이 느린 것 같다며 언어 검사를 받아 볼 것을 권하셨습니다.
18개월쯤부터 발달이 빠른 인플루언서들의 아기, 즐겨보던 육아 웹툰, 그리고 또래 친구들을 보며 아이가 말이 느리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또래보다 말은 느리지만 27개월 무렵에는 단어들을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30개월까지 기다려보고, 그때에도 문장으로 말하지 못하면 언어발달 검사를 알아보아야겠다는 마음의 계획이 있었죠. 하지만 아이를 자주 보신 의사 선생님이 권하시니 그 시기를 당겨도 좋을 것 같아 언어발달검사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 언어 지연일까?
보통, 영아들은 9~10개월 정도가 되면 의미 있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요. 다만, 초기에는 말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낱말을 이해하게 되고, 점차 행동어를 이해하게 되면서 나아가 보이지 않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기는 0~6개월에 옹알이를 시작하고, 9개월 정도에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제스처를 동반한 발성을 시작해요. 이러한 반복 경험과 연습으로 10~14개월 정도가 되면 의미 있는 첫 낱말을 말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자주 겪는 상황에 의존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아이의 언어발달은 크게 수용 언어와 표현 언어로 나눌 수 있어요. 수용 언어는 듣기와 읽기를 말합니다. 흔히 '말귀를 알아듣는다' 라고 하죠. 아이가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표현 언어는 말하기와 쓰기를 말합니다. 우리가 '말이 트였다' 라고 하는 것은 아이가 표현 언어를 쓸 수 있게 된 것을 말해요.
표현 어휘 발달이 늦은 아이를 말 늦은 아이라고 하는데, 그 기준은 다음과 같아요.
- 청력, 인지, 정서, 행동 문제가 없고 표준화된 표현 어휘 검사 결과 10퍼센트 또는 -1 SD 비만인 아동
- 18~23개월의 아동 중 표현 어휘가 10개 미만인 아동
- 24개월~36개월의 아동 중 표현 어휘가 50개 미만이거나 두 단어 조합이 나타나지 않는 아동
아이들의 발달은 개인차가 커요. 언어의 경우 그 개인차가 더 큽니다. 말이 느리다고 해서 무조건 언어발달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꾸준히 말 표현이 늘고 있는 경우, 수용 언어에 문제가 없는 경우에는 기다려주어도 된다고 합니다.
저도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말이 늦게 트였지만 금방 또래 친구들의 언어표현을 따라잡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의 경우 지시하는 말을 하면 알아듣고 수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용 언어에 큰 문제가 없다고 느꼈고, 한번 말이 트이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언어평가를 받아보니 표현 언어만 지연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아이는 수용 언어도 지연이 있었고, 인지 수준도 낮은 편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가 말이 늦은 아이에 해당한다면 우선 어느 정도의 지연 상태인지 검사를 받아보시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검사를 통해 아이의 수준을 파악하고 나면 언어치료를 받아야 할지, 조금 더 기다려보아도 좋을지 선명해지기 때문이에요.
우리 아이의 수준 확인하기
언어발달검사를 고민하며, 저는 먼저 아이의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 메모장에 아이가 할 수 있는 단어들을 모두 적어 보았어요. 이때 어떤 단어들을 몇 개월부터 사용했는지 같이 메모하면 좋아요. 온전히 발음하지 못해도 특정 발음이 하나의 단어를 의미한다면 사용할 수 있는 단어로 보고 함께 메모해 두었습니다.
우리 아이의 경우, 27개월 무렵 두 단어 조합은 대상+이리와(주로 엄마 이리 와)만 사용할 수 있었어요. 이 무렵 미디어 노출은 영어 영상만 하였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영어 단어와 한글 단어를 합쳐 약 70개 정도 되었었습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표현을 적어놓고 보니 두 단어 조합이 되지 않는 것과, 동사 및 형용사 표현이 거의 없다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언어발달검사를 예약하게 되었습니다.
유치원 교사로 보낸 시간만 10년, 아이들과 상호작용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어발달 지연의 대표적인 원인이 양육 환경이다 보니, 나 때문에 아이의 발달이 늦어진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에 참 속상하더라구요.
하지만 아이의 기질적, 심리적인 요인에 따라서도 언어발달 속도가 느릴 수 있으며, 신체 발달이 느린 아이들은 언어발달도 느릴 수 있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언어 발달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자책하기보다는 양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나의 육아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언어발달검사를 기다리며, 저는 저의 육아 태도와 환경을 돌아보았어요. 매일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저는 저의 아쉬운 점을 크게 4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너무나 민감했던 나의 육아 태도
교사 생활을 오래 해서 언어발달에 도움이 되는 엄마의 말 표현은 관심이 많기도 했고, 실제로 육아하면서도 많이 사용해 왔어요. 아이에게 이야기할 때, 혹은 책을 볼 때 가급적 쉬운 단어, 짧은 표현으로 들려주고 의성어와 의태어를 많이 사용하고, 따라 말하기 유도를 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부분을 말로 표현해 주기 등 다양한 전략을 사용해 왔죠.
놀이 상황에서 아이의 관심을 따라가며 이야기 해주는 것은 정말 좋은 방법이에요. 하지만 제가 놓친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일상생활에서 말 표현이었어요.
돌이켜보니 전 일상생활에서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기회를 주지 않았던 적이 많았어요. 표현이 서툰 아이들의 속내를 읽어내는 생활을 오래 했던 제가 2년 넘도록 한 아이만 보고 살다 보니 원하는 것을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고, 언어나 몸짓으로 충분히 표현하지 않아도 빠른 피드백을 해 주어 아이는 짧은 옹알이와 손짓만으로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어요. 일상생활에서 아이가 짜증 내는 것을 듣지 않으려고 빨리빨리 원하는 것을 해 주었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2. 미디어 노출
언어가 느린 아이들일수록 영상 노출을 멈추고 엄마와 대화하고 놀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계실 거예요.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육아인에게 미디어는 달콤한 휴식을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아줄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미디어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대근육 발달도 느렸기 때문에 기관에 보내기 전에는 매일 산책을 두 번씩 나갔고, 기관에 다닌 후에는 저도 파트타임 출근을 했기 때문에 저녁에는 늘 녹초가 되어 편히 저녁을 먹기 위해, 마무리 집안일을 하기 위해 미디어를 보여주게 되었죠. 언어발달이 고민이라면 미디어를 과감히 끊는 것이 필요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전 미디어가 주는 조금의 숨 쉴 틈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어요.
3. 놀이환경
– 상호작용 할 수 있는 놀잇감이 적은 환경
아직 취향과 표현이 부족한 시기, 이 시기 아이의 장난감은 엄마의 취향이 더 반영되는 것 같아요. 아이가 27개월이던 무렵 우리 집 장난감은 대부분 블록이었어요. 정형화되지 않아서 생각을 확장하기 좋고, 소근육 발달에도 도움이 되고, 블록으로도 다양한 역할 놀이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아이도 장난감 중 블록을 가장 좋아해서 혼자 오랫동안 집중해서 놀았고, 아이와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꾸 미디어를 보여주려 하는 남편도 블록으로는 놀아주기 편하다고 하여 자연스럽게 블록이 많아지게 되었어요.
- 역할 놀이의 중요성
역할 놀이는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자발적인 역할 놀이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경찰 놀이, 소꿉놀이 같은 놀이를 이야기해요. 저는 아이가 역할 놀이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역할 장난감을 일찍 들이지 않았는데, 나의 육아를 돌아보며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 점을 꼽을 것 같아요.
영아기 역할 놀이는 앞서 이야기한 자발적인 역할 놀이보다 구조화된 역할놀이에 가깝거든요. 역할 놀이를 하며 아이는 엄마와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고 모방하게 되는데, 이러한 관찰이 영아의 개념적인 세계를 확장하고, 학습으로 이어지게 돼요. 또한 함께 놀이하는 부모나 또래 친구들과 상호작용을 하게 되므로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경험하게 되죠.
소꿉놀이는 어린이집에 있으니까, 우리집이 좁으니까.. 등 여러 이유로 역할 놀이로 경험할 수 있는 관찰, 모방, 표현 놀이의 기회를 너무 늦게 제공해 준 것이 너무 아쉬워요. 블록으로도 역할 놀이를 할 수는 있지만, 실제 사용하는 소꿉장난감으로 놀이 하는 힘이 길러져야 형태가 없는 놀잇감으로도 역할 놀이를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블록 장난감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에요. 블록 놀이의 장점도 분명하니까요! 우리 아이는 블록을 쌓으며 소근육도 많이 발달했고, 자력이 없는 나무 블록이나 벽돌블록을 쌓으며 균형감도 배울 수 있었고, 색 분류, 모양 분류, 구성하는 능력도 블록 놀이를 하며 많이 자랐거든요. 그리고 엄마가 블록 놀이를 함께하며 아이의 관심을 꾸준히 따라 이야기해 준다면 언어발달에도 도움이 됩니다.
저에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블록 놀이는 아이 혼자 집중해서 오래 놀이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이 시간을 엄마의 휴식 시간으로 활용할 때가 많았다는 점이에요. 블록 놀이를 하면서 놀이에 깊이 몰입하여 만들고 있는 구조물을 여러 방향으로 확장하며 구성해 보고, 아이의 반응을 살피며 상호작용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4. 아이의 기질
27개월 무렵의 우리 아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예민함”이었어요. 낯가림이 심해 친척 집 방문이 어려웠고, 문화센터에서 꾸준히 오감 놀이, 미술 놀이 수업을 들었지만, 선생님께 낯을 가려 수업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죠. 오감 놀이 재료들이 손이나 옷에 묻는 재료일 때에는 아예 활동을 거부하기도 했고, 식감은 갈수록 예민해져서 먹을 수 있는 반찬이나 간식이 몇 가지 되지 않았어요.
새로운 장난감을 보여주었을 때 큰 호기심을 보이며 열성적으로 탐구하기에 보다는 한동안 방치해 두었다가 눈에 익었을 때 만지고 놀이하는 편이었고, 모방에도 큰 관심이 없어 엄마의 말이나 행동을 따라 하도록 유도하여도 잘되지 않았고, 이름을 불렀을 때 반응이 없는 경우도 많았어요. 이후 상담을 받아보니 이런 기질적인 문제도 언어발달 지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이의 언어가 고민이라면 엄마·아빠의 육아 태도와 언어습관, 미디어 노출, 놀이환경과 놀이 방법, 아이의 기질 등을 고민해 보시길 바라요. 우리 가족에게 어떤 점이 문제였을지 생각해 보면 어떤 것들을 바꾸어야 할 지 보이게 되니까요.
엄마와 아빠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아이는 더욱 성장할 발판이 단단해졌을 거예요. 이 글을 읽어주신 부모님과 아이의 성장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