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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Feb 05. 2016

꽃집 아가씨는

아무나 되나?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꽃이 참 좋았다. 누군가 "넌 뭐가 제일 좋아?" 하고 물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꽃!"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꽃이라면 종류를 막론하고 다 좋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수국부터  국민학교 시절 학교 앞에서 팔던 펜지, 노랑 병아리가 생각나는 개나리, 해마다 날 미치게 만드는 벚꽃, 꽃송이째 뚝뚝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 눈처럼 흩날리는 배꽃, 시골집이 그리워지는 살구꽃, 하늘하늘 여리여리한 코스모스, 입학식날이 떠오르는 향기로운 프리지아, 어릴적 사이다병에 꽂아 놓던 싸리꽃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까지...  


그들은 단숨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날 흔들어 놓았으며, 나의 역마살을 부추겼다. 그들을 친견하기 위해 봄이 되면 내 머릿속의 꽃지도를 따라 엉덩이 붙일 새 없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그래서 막연하게 '꽃집의 아가씨가 되면 참 좋겠다' 생각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다고 느껴질때면 그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그런데 오늘 옆자리에 앉은 남자 동료가 꽃다발을 선물 받았다. 나라면 팔짝팔짝 뛰며 좋아라할 것 같은데 남자라 그런지 별 감흥이 없어보였다. 꽃다발이 탐이 났지만 선물 받은 걸 차마 달라고는 못 하고 "꽃다발 참 예쁘네"를 연발하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는데, 마침 퇴근 후에 모임이 있어서 꽃다발이 처치 곤란이라는 반가운 소릴 한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그럼 나 줘!~" 

"네! 가져가세요~~"

지친 하루에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룰루랄라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꽃병부터 찾는다. 그러나 우리집엔 꽃병다운 꽃병은 없다. 꽃다발 받을 일이 많지 않으니 사야지 사야지하면서도 잘 사지지가 않는다.

가만있자... 꽃다발이 크니까 물컵으론 턱도 없겠고... 베란다 구석에 있던 작은 항아리가 번뜩 떠올랐다. 좀 큰듯 했지만 나름 괜찮아 보였다.

이제 꽃꽂이 할 일만 남았네. TV에서 본 처럼 잎사귀를 정리하고 줄기를 사선으로 자른 다음 '난 플로리스트다' 라고 최면을 걸으며  꽃꽂이를 완성했다.

항아리가 좀 커서 꽃이 묻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처음치곤 나쁘진 않다. 남은 꽃으로 내 방 책상 위에 놓을 꽃도 물컵에 꽂아 두었다.

보고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이 반달이 된다.

불면과 과도한 업무스트레스로 힘들었던 일주일이 꽃으로 힐링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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