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최고의 선배

잃어버린 내 이름을 찾아서

by 멍든새

선배A와 처음 만날 당시 나는 27살로 막내 치고 나이가 많았다. 그때 일자리가 없어서 한동안 놀다가 소개받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을 보러 가던 그 길이 잊히지 않는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성에가 낀 창문 너머 보이는 길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까마득한 앞길이 바로 내 미래인 줄 모르고 열심히 달려갔다.

면접을 나쁘게 본 건 아니지만 나이 때문인지 분위기가 애매했다. 어렵게 합격을 했지만 소개해준 사람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네가 집도 제일 멀고 나이도 제일 많지만 소개해준 사람을 봐서라도 열심히 일 할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그 말이 맞았다. 나는 힘들고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버텼다.

프로그램은 끝날 때까지 평일 밤낮이 없었고 주말이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막내인 내가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다. 기본적으로 2주일에 한 번 100명의 여자를 방청석에 앉혀야 했고 그 100명과 통화하며 기분, 스케줄 등을 관리해야 했다. 또 대본 자료조사를 해야 했으며 소품 및 패널 주문, 회의 준비, 녹화, 방송 준비, 시청률 체크를 했다. 때로는 선배들이 VCR 촬영하는 것을 도왔다. 그 밖에도 팀 방 정리, 협찬 준비, 선배들의 잔심부름 등을 했다. 한 선배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핫식스 하나를 꼭 마셨고 매번 샷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벤티 사이즈로 마셨다. 또 한 선배는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즐겨 마셨으며 담배는 레종 블루를 피웠다. 또 한 선배는 오전 10시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연락을 하면 안 됐다. 반대로 나에 대해선 하나씩 잃어갔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다가 쉬는 시간이 생겨도 일을 미리 해두는 것 외엔 할 게 없었고 친구들도 점점 없어졌다. 말 그대로 사는 낙이 없었다. 매일 출퇴근길에 사고가 나서 출근할 수 없길 기도했다. 이유 없이 살이 빠졌다. 매일 혼나고 화장실, 비상계단에서 몰래 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의 인사는 “혼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엄마가 암에 걸려 수술을 하게 된 상황에서도 가족 중에 제일 늦게 알았고 녹화가 끝난 다음에야 하루 동안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 나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한 선배B가 새롭게 팀을 꾸리면서 난 버려질 위기에 처했다. 그때 나를 구해준 게 바로 그 선배A였다. 선배A는 나를 따로 불러서 나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주었다. 열심히 하고 싶은지, 포기하고 싶은지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팀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힘든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 통장잔고로 보상받을 날이 있을 거라 위로해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잘리지 않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 없는 팀에서 잘 적응하게 되었다.

모두가 힘든 시기였고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바쁜 와중에 나를 봐주는 단 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커리어, 아이템, 시청률, 프로그램, 출연자들만 신경 쓸 때 한밤중에 나를 불러내 에너지 드링크를 사주는 단 한 사람이었다. 자취를 하는 막내라며 편의점 상품권을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평이 좋았다. 우연히 겹치는 인맥이 있으면 “그 언니 진짜 사람 좋지?”라는 말이 나오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선배A와 간혹 연락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비슷한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힘들게 경력을 쌓았지만 현재는 집에서 애 보는 걸 주력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 비슷하다. 선배의 출산 소식을 듣고 육아로는 내가 선배라서 도움을 받았던 걸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선배에겐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다. 어제도 선배는 감기 걸린 나를 걱정하며 건강식품을 선물로 보냈다. 문득, 9년 전 밤새고 녹화장에 가서 선배가 주는 건강식품을 먹고 녹화 준비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선배 앞에선 늘 27살의 늙은 막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36살이 된 지금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