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최악의 선배

잃어버린 내 이름을 찾아서

by 멍든새

가끔 함께 일했던 선배들이 꿈에 나온다. 꿈에서 깨어나면 한숨을 쉬며 말한다.

“휴우. 악몽을 꿨네.”

그렇듯 나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은 선배들이 있다. 좋은 선배보단 안 좋은 쪽이 더 많다.

그중엔 성격이 안 좋은 선배도 있었다. 덕분에 함께 일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다. 일하는 동안에는 눈칫밥을 먹느라 진짜 밥은 먹을 수도 없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 선배는 내가 밥을 먹으면 먹는 대로 안 먹으면 안 먹는 대로 눈치를 줬다. 차마 겸상을 할 자신이 없어서 다이어트를 핑계로 끼니를 걸렀다. 그리고 일이 끝난 늦은 밤, 집에 들어가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 일이 힘들어도 술 마실 시간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그 선배가 최악의 선배로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 후배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만큼 본인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듣기로는 아카데미도 안 나오고 대학도 관련 없는 학과지만 일찍 졸업하고 일찍 일을 시작했단다. KMTV가 있던 시절부터 방송작가를 했는데도 나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그녀는 꼼꼼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문서 양식, 폰트에 편집증처럼 신경 쓰는 대신 구성안을 잘 뽑아내는 작가였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조연출도 “구성안이 어떤 걸 찍고 어떻게 편집해야 될지 그림이 그려진다고 해서 PD들이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나도 그런 구성안을 쓰고 싶었다. 당시 내 장점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평생 성실할 자신은 없었고 연차가 쌓였을 때에 글 빨이 좋다거나 섭외를 잘한다는 등 작가로의 면모가 빛나길 바랐다.

성격만 나쁜 사람이었다면 ‘저 년 또 지랄이네’하고 말았을 텐데 능력 있는 선배라고 생각했기에 끝까지 인정받고 싶었다. 끝내 그 선배와는 아름답게 마무리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가끔 구전설화처럼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끝나는가 했는데 언젠가 방송국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났다. 모르는 척하는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내 모습을 보고 스스로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 그때까진 가끔 꿈에도 나올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먼저 인사하는 내 모습이 제법 멋있었다. 중요한 건 그녀가 내 인생 최악의 선배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내 인생 최악의 선배는 따로 있다. 그녀는 만나기 전부터 다른 작가들로부터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직접 만나 보니 그녀는 들은 것보다 더 별로인 사람이었다. 성격도 안 좋은데 일도 후배들의 몫으로 넘기고 그 와중에 연차는 어마 무시해서 본인은 돈을 많이 받고 후배들 페이는 챙겨주지 못했다. 자존감은 높아서 본인이 일을 잘하고 후배들도 잘 챙기는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와 일이 아니라 사적으로 만났다면 나쁘지… 않았을까? 또 그것도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와서 마음에 들지 않는 PD 욕, 후배 작가 욕… 누군가의 험담에 몇 시간씩 매일매일 시달렸다.

그녀를 보며 성격이 더러운 건 괜찮지만 일 못(안) 하는 선배는 되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너 이상해. 그러지 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주변에 직언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오래 지내다 보면 스스로 이상한 것도 모르고 그렇게 늙어가는 걸까, 측은지심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였고 나에 대해 “독립적이고 메인병에 걸렸다. 다른 PD와 너의 그런 모습에 대해 동감했다. 현장에서 일을 잘하는 것처럼 돋보이려고 나댄다. 네가 그만둔다고 해서 잘 됐다고 생각했다”라고 후배를 통해 나에게 전달하도록 시켰을 때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보통 방송국에서는 사람을 뽑기 전에 이력서를 보고 수소문을 한다. “어? 내가 아는 작가랑 같은 프로그램을 했네.”라거나 몇 다리를 건너서라도 알 만한 사람에게 같이 일할 때 어땠는지, 이 이력서가 믿을만한 경력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선배들이 이렇듯 후배들도 꼭 선배의 평판을 확인하고 프로그램을 했으면 좋겠다. 각오한 것보다 더 안 좋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