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에는 근육질 할머니가 되고 싶어

by 블록

90에는 근육질 할머니가 되고 싶어.

백발이 되면 롱 코트를 입고 머리를 길게 해서 흔들고 다닐 거야.


그 전에 삶이 끝난다면 놓아주는 사람이고 싶어.

미련 없이, 두려움 없이, 아름답기만 하게.


내가 먼저 가거들랑 슬퍼하지 마.

네가 무섭지 않도록 아늑한 집을 만들어 놓을게.


너를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런 사랑을 할 거야.


장례식은 없어. 살아있을 때 더 보고 싶을 뿐이니까.

그러니 내 장례식에 꽃을 보내려거든 지금 보내.


친구는 내가 먼저 죽으면 추모곡을 써주겠다고 했지.

나는 평생 알지 못할 그 곡으로

당신들은 나를 기억할 거야.

그런 마무리를 지을 거야.


시력을 잃게 된다면 에코 로케이션을 배우려고.

나는 멋진 선글라스를 쓰고 골든 리트리버와 생을 보내는 시각장애인이 되겠지.


나는 당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맛을 느끼고,

당신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그것들은 그 누구도 상상해보지 못한 형태가 되어 내 머릿속만을 날아다닐 거야.


실패할 때마다 다른 행복을 찾아내는 사람이고 싶어.

세상은 넓으니까 몰랐던 대체제가 어딘가엔 있겠지.


20에는 할머니들 입는 꽃무늬 조끼를 입겠어.

돈이 없어도

옷을 만들어 입을 거고,

돈이 생기면

머리색을 바꿀 거야.

내년에는 나를 보면 못 알아볼만큼.

되고 싶은 모습이 다 되어볼 거야.


언젠가는 친구들과 모여

하루는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하루는 서로의 랜덤한 일기장을,

하루는 같은 공간을 서술하는 글을 써서 교환할 거야.

그게 낭만이니까.


쓸데없는 낭만들을 쫓아

행복해서 죽을 필요 없는 삶을 살 거야.


우리 언니가 봤던,

우리가 함께 밟았던 공간을

나는 언니의 눈이 되어 다시 보아볼 거야.


남의 글을 읽고 훔쳐본 그들의 세계를,

질기고 촉촉한한 감정을,

조심스러운 쾌감을,

오묘한 감각을,

당신들 모두가 안다면.

몰랐던 아름다움을 글로 전달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기꺼이 자기들 스스로 검은색과 흰색,

혹은 오돌도돌한 동그라미만의 조합을,

그 힘든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게 만들 수 있을 거고

책 만드는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겠지.


사람들은 글을 읽지 않지만,

못 읽는 건 아니야.


나는 아직 부족하지만,

계속 부족할 건 아니야.


사람들을 설득할만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책 만드는 사람들을 살려낼 수 있겠지.


나는 힙한 청년같은 아줌마가 되어서,

사람들이 글을 읽게 하겠어.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그게 이곳에서 이루고픈 꿈이야.

keyword
작가의 이전글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