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애들은 ‘easy’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문제가 쉬웠다거나, 이 강의가 쉽다거나, 시험이 쉬웠다거나.
나는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게 껄끄럽다. 아주 예전부터, 꼭 대학이 아니라 그 전부터.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이렇게 ‘쉽다’고 말하면, 그렇게 말하고 성공을 못한다거나 문제를 못 푼다거나 틀린다거나 해버리면 쉽다고 거드름을 피운 게 너무 모양 빠지지 않나 싶어서. 그렇게 모양 빠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누가 날 무시할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친구가 물었다.
"무시? 무시는 네가 해서 그런 거 아니야?"
정곡이었다.
무시는 내가 했다.
그래서 역으로 무시당하는 게 무서웠던 거다.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해냈다고 말하면 나는 '어디 보자. 잘했나? 아, 그렇게 잘하진 않았네.' 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인정한다. 아주 꼬인 사람이다. 이거야말로 모양빠지는 마인드지만 고백하자면 사실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무시했기에 다른 사람 또한 나처럼 생각하고, 나도 언제나 무시받을 수 있다 생각한 것이다. 꼭 타인에게 투영하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그런 말을 걸었다. 날 무시하는 타인이 없다면 내가 타인이 되어 나를 무시했다.
나는 ‘쉽다’는 말을 “강아지도 발로 풀겠다”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쉽다’는 아마도 ‘할만한데? 더 어려운 것도 많은데 이건 그정돈 아니네’정도의 정직한 평가일 뿐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쉽네'라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나만큼 꼬여서 타인이 항상 그들을 무시할 준비를 하고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쉽다'라는 표현의 정의도 나처럼 극단적이지 않았던 것일 테고.
그러니 애초에 사람들은 모양 빠진다고 받아들이거나 내가 한 발언을 기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억했다 하더라도 그냥 모양 좀 빠지고 다른 사람이 잊길 기다리면 되었을 것이다.
정작 무시하고, 판단의 잣대를 마음대로 높여버리는 게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는 걸 알았으니 주의할 생각이다. 내가 남을 무시하고 있나 수시로 되짚어봐야겠다. 그럼 앞으로는 나도 easy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