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구사할 때마다 신경이 쓰이더군요. 내가 말을 버벅이거나 기본적인 어법 실수를 하면 상대는 뭐라고 생각할지. 몇 년이나 살았는데 그런 실수를 하다니 별로 똑똑하진 않나보네, 라고 생각하진 않을지.
물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바보같네’라고 당당히 말해줄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버벅거릴 때마다 상대가 ‘바보같네’라고 생각하는 걸 상상하길 나는 관둘 수가 없었습니다.
별로 똑똑하진 않은가 보네, 하는 평가를 받는 게 싫습니다. 솔직히 똑똑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똑똑하지 않게 보여지는 게,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능력보다 저평가되는 게 싫습니다.
네가 똑똑하다고 생각해? 언젠가 누군가가 물었어요. 솔직히 그렇다 대답하고 싶었지만 혹시 상대가 그 답을 듣고 '네가?ㅋ'라고 생각할까봐 두렵더군요. 내가 똑똑한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을지도, 그럼 상대는 내가 바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 걱정은 참 피상적이라는 걸요.
나는 마음 속으로는 나를 아주 깊게 믿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 사람이 날 바보로 착각하면 어쩌지’하는 걱정 대신 ‘내가 똑똑한 게 맞긴 한가?’라고 질문했겠죠. 나는 나에 대한 내 판단과 타인의 판단 사이에 괴리가 있다면 내 능력이 문제라고 생각하기보단 저평가받았다고, 내가 나를 잘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당당하게 답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이 본 나 때문이에요.
전부터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유리구슬을 모아둔 것과 같아요. 그들 자신은 유리구슬일 뿐이겠지만, 타인이 보면 심미성이 드러나죠.
남이 중요해서 그들의 평가에 집착한 건 아닙니다. 나는 세상에 섰을 나를 3자의 입장에서 상상했고, 그때의 심미성이란, 외부에서 보이는 내 모습이란 내면에 있을 내가 아닌 외부에 있는 남들이 판단해주잖아요. 그래서 남들이 나를 이렇게 봤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색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대답도 이상해져버렸나 봅니다.
하지만 반대로, 남의 말에 흔들렸다는 건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깊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나는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이었나?
아뇨, 충분히 믿을만한 사람 같은걸요. 이렇게 자기 질타를 많이 하고 자기에 대해 꼬여 있는 사람이 머리가 꽃밭인 것 같은 성찰없는 망상을 할 리도 없고, 그러니 근거 없는 망상도 아닐 것이고, 나를 믿지 않을 이유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타인보단 내 평가를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명의 사람이 나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두 명의 평가가 아주 달라요. 그럼 한 명만 나를 제대로 봤거나, 둘 다 틀린 거겠죠.
이제 두 평가자 중 한 명을 나로 대체해봅시다. 여러분이라면 어떠시겠어요. 나를 제대로 본 그 한 명이 나일까요, 저 사람일까요.
외부 시선은 객관적이니까 남이 더 잘 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나이와 동등한 시간만큼 자신을 알아가면서 '나는 이래'라고 확신하는 것들이 있지 않으신가요. 나라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분명 내 판단이 맞다고 생각할 겁니다.
어차피 무의식적으로는 바꾸지 않을 판단들입니다. 무의식에만 가두지 말고 대놓고 믿어준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상관 없어지지 않을까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했습니다. 아직도 중요해요.
하지만 신경쓰인다 해서 내 생각까지, 행동까지, 대답까지 그들의 판단에 맞춰 바뀔 필요는 없었어요.
남들 말을 듣지 않겠다는 선언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부분만큼은 나 자신을 당당하게 지지해주자는 이야깁니다. 그런다고 해서 내 판단이 바뀌지도, 그들이 맞췄을지 내가 맞췄을지 모르는 진실도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부분에서만큼은 머릿속에만 남겨두지 말고, 타인의 다른 판단에 의해 지워지게 두지 말고, 자신감 잃게 두지 말고 당당하게 나를 밀어주기로 했습니다. 남이 지금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이 부분만큼에서는 내가 맞다고 당당하게 믿기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