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님. 시네마. 코믹=월드> 1권 발행 후기
매거진 연재를 하다가 오래 멈춤을 하고 최근 글을 한 번에 여러 편을 발행했다. 그동안 발행을 안 했던 것은 쓰기 싫어서도 소재가 떨어져서가 아니다. 데님을 키워드로 영화와 만화 안에서 펼쳐지는 옷의 이야기를 담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데님. 시네마. 코믹=월드>는 원래 에필로그를 쓸 마지막까지 매거진의 형식으로 연재하며 완성 후 한 권의 브런치 북으로 발행하려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카피캣의 등장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2025년 9월 4일 발행한 <와야마 야마 작가로 보는 오리지널과 도작 및 표절>은 오리지널의 중요성으로 본 도작과 표절의 문제점을 말하며 암암리에 브런치에서 벌어지는 일부 비양심의 행태에 대한 것을 썼다. 사실 이 글은 당시 표절과 도작의 피해를 받고 있는 내 상황을 함께 말하고 있으며 나는 내 글의 카피캣을 만든 이 가 이것을 반드시 볼 것임을 알기에 우회적으로 뜻을 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분이 뒤늦게라도 잘못을 깨닫고 앞으로는 그런 비도덕적 행위를 하지 않길 바란 것은 나의 너무나 순진한 기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9월 10일 발행한 <나의 삽질에는 이유가 있었다.>라는 글을 쓰며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공모전' 응모작으로 쓴 이 글 또한 베껴 자신의 글로 발행했고 나는 실시간으로 표절과 도작의 현장을 목격한다.
브런치 발전을 위해 담당자들이 봐주었으면 하는 글이라며 장문의 글을 써서 공모에 응모해 많은 독자의 하트를 받은 그분은 공모전 마지막날 발행한 내 글이 저녁에 올라오고 얼마 후 그 형식과 내용을 베낀 짧은 글로 변경해 원래 썼던 글 위에 덮어쓰기 한다. 덮어쓰기를 어떻게 아느냐 물으면 간단하다. 새 글의 발행이나 삭제도 없는 상태에서 기존의 쓴 글과 같은 번호를 가진 페이지에 다른 글이 덮어졌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발행이 카운팅 되고 해당 글에는 몇 번째인지 숫자가 부여되는데 앱에서는 볼 수 없지만, pc에서는 상단에 바로 뜬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곧이어 황급히 원래 응모한 장문의 글로 다시 원상 복귀되는데 나는 그 이유를 3가지로 본다.
첫째 공모전 중에는 언제든 수정 내용이 반영되지만 공모 마감 후에는 본인 글에서는 수정되어도 공모전에는 수정본 반영이 안 된다는 점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그분이 베낀 내 글은 공모전 마지막날 저녁에 올린 글이었고 베낀 것을 적용한 시점은 12시가 넘어 새벽으로 다음날이 되었기에 심사에는 적용이 안된다는 점이다. 둘째로 처음 썼던 글에서 독자들의 댓글이 많이 달려 있기에 추후에라도 그 글을 기억하고 다시 찾아볼 독자를 떠올리면 먼저 봤던 장문의 글은 사라지고 난데없는 글이 있어 황당하다고 느낄 것을 생각해서다. 셋째는 너무 티 나게 베낀 것이 눈에 띄고 처음 쓴 글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며 글을 되돌리기 한 거라 생각한다. 이번건 베낄 만한 글이 아닌데 왜 그랬을까? 카피캣은 내게서 뭔가 좋아 보이는 작은 부분만 보여도 그걸 갖고 가려는 듯했다. 그런데 나는 안다. 그분이 원래대로 복구한 그 글도 내 글에 있는 문장을 이용해 시작된 글임을.
새벽에 이 소동을 겪고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잘못을 깨닫기는커녕 실시간으로 표절과 도작을 일삼고 이후 나는 당당하다는 듯 다른 글을 쓸 때 표절에 관한 주제를 쓴 대담함에서. 마치 괴롭힐 대상 하나 제대로 잡은 것처럼 내가 쓴 글과 아이디어를 도용해 놀라운 속도로 여러 글을 발행했다. 그리고 내 글을 이용해 표절과 도작한 작품으로 이번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고 또 별도로 출판사에 투고 중이라 했다. 우선 나는 글 쓰기를 멈추고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데님. 시네마. 코믹= 월드>의 연재글을 브런치에서 모두 삭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방치한 브런치와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 할 때, 3년 전 한 독자님이 남겨주신 댓글에 답글을 쓴 것이 기억났다. 2025년 시작하는 글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완결할 것이며 독자님께서 그걸 봐주신다면 감사하겠다는 말씀을 드린 내용이었다. 나는 이 약속을 지키고 싶었고 그래서 매거진 연재를 중단하기 전에 원래 목차의 절반에 해당하는 편수를 채워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해 얼마 전 1권 발행을 마쳤다.
표절과 도작을 알면서도 나는 왜 그동안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내가 그분의 글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글로써 느껴지는 성심(誠心)이 대단하다고 여겼고 종교적 견해를 밝힌 글에서는 고결함마저 느껴 저 요즘 세상에는 보기 드문 사군자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 분이 설마 표절과 도작을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고 그 피해 대상이 나와 내 글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왜 이러는 걸까? 그동안 글에서 느낀 고결함과 정직함은 허상이었을까?라는 한탄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내 글과 아이디어를 도용한 글을 봤을 때는 애써 부정했다. 내가 작품을 리뷰하며 쓴 감상과 결론으로 도출된 내용을 다른 작품의 이미지를 첨부하며 바꿔 대입해 쓴 글은 우연의 일치라고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믿고 싶었다. 그동안 내가 봐온 그분의 글들은 정직을 말하고 있는데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면 안 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분은 나를 자신의 글과 아이디어가 도용당해도 못 알아보는 바보라고 여겼는지 이후 여러 글에서 내 아이디어 및 글과 문장을 녹여 자신의 글에 넣었고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노골적인 야욕을 확실히 드러낸 한 편의 글로 그 쐐기를 박았다. 도입부에 줄거리를 요약하고 영화 전체의 흐름과 내용을 담아 결말부엔 작품에서 느낀 핵심 결론으로 마무리하는 내 리뷰 글쓰기의 포맷까지 똑같이 따라한 카피캣.
내가 리뷰한 영화가 아닌 비슷한 내용의 다른 작품에 적용시켰지만 내 글을 어떻게 가져다 대입했는지 형광펜으로 표시가 가능할 정도로 다 보인다. 타인의 작품에서 문장과 요소요소를 다 가져다가 스크립트를 만들듯 기승전결의 뼈대를 구성하고 직접적인 표절을 피하고자 비슷한 내용의 다른 작품을 선정하여 적용해 글을 쓰는 것이 과연 자신의 감상과 해석을 논하는 리뷰와 평론의 진정한 의미인지 되묻고 싶다. 나는 이 일들을 겪고 앞서 본 표절과 도작이 엄청난 우연의 일치도 실수도 아닌 지극히 의도된 빼앗음의 결과임을 확인했다. <와야마 야마 작가로 보는 오리지널과 도작 및 표절>에서 내가 봉준호 감독님의 명언 "베낀 사람이랑 베껴진 사람은 텍스트만 보면 서로 압니다. 모를 수가 없습니다."를 인용한 것도 이점을 카피캣을 만든 이 가 알고 더는 그런 짓을 하면서 스스로 오점을 남길 행위를 하질 말길 바라서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행해진 표절과 도작으로 정직한 글을 쓴다고 생각했던 작가에 대한 깊은 실망이 이어지며 온라인 환경에서의 글쓰기에 대한 회의감 마저 들게 했다.
브런치라는 공간은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표절과 도작은 이곳에선 벌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터부시 될 뿐 오래전부터 이뤄지고 있었다. 표절과 도작 사례를 찾아보면서 놀랐던 것은 글을 잘 쓴다는 점을 이용해 더 교묘하게 비틀고 다른 것에 대입해 직접적인 표절의 시야를 벗어나려고 세심하게 기획한다는 점이다.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라는 브런치의 신성함이 실제론 표절과 도작이 판쳐 피해를 입은 작가가 수두룩 하지만 뭔가 이 공간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것 같다는 무언의 압박에 피해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또 내가 피해 당사자가 되면서 오히려 도작과 표절을 한 가해자가 훔친 글과 아이디어로 당당하게 활동하는 모습에 나부터라도 피해사실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피해를 받고도 바로 얘기하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양심에 먼저 기대하는 인간이기에 카피캣을 만든 사람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길 기다린 것이지 결코 표절과 도작을 해도 된다고 용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다려도 보고 글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절과 도작의 나쁜 점을 얘기해 봐도 소용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왜 뛰어난 글쓰기 실력을 타인의 아이디어와 글을 훔쳐 가공하는 것에 쓰냐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현명하다고 느낀 글을 쓰는 사람에게 표절과 도작이라는 행위를 하게 한 것일까? 굳이 왜 남의 것을 훔쳐 자신의 것처럼 만들며 스스로 오점을 만드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카피캣의 마음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출간'을 통해 무명의 글쓴이의 글과 아이디어를 빼앗아 자기가 먼저 책으로 선보이면 내 것이 된다라고 단단히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감독 봉준호, 소설가 한강, 야구선수 오오타니 쇼헤이 등의 한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루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는 분들이 지금의 위치에 있는 것은 남의 것을 탐하고 짓밟아 자신이 더 빛나기 위한 사람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은 내가 가진 것 만이 진짜라 여기고 능력을 갈고닦았으며 그 길 위에는 거짓 없는 정진이 있었다.
많은 창작자들이 표절과 도작을 하지 않은 것은 내 글이 귀한 만큼 남의 글도 소중함을 생각하며, 그 비윤리적 행위는 언젠가 반드시 드러날 것을 알고 세상에 밝혀졌을 때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만든 산물조차 순수성과 진위를 의심받게 됨을 죽기보다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번 매거진 연재로 명작들을 리뷰하면서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은 오리지널리티의 중요성이다. 오랫동안 기억되고 사랑받는 작품에는 누구의 것을 베껴낸 것이 아닌 자신만의 확고한 개성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창작자는 타인의 작품을 존중하고 자신의 것을 아끼며 발전시켜야 한다. 본래 내 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출처도 밝히지 않고 내 것처럼 보이게 거짓으로 꾸미는 것은 스스로 개성을 오염시켜 망하는 지름길이다. 당장 눈앞에 독자를 순간 속일 수 있다 해도 타인의 것을 훔쳐 유린한 행위는 세상에 의해 어떠한 경로로든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대가를 치른다.
힘든 시기, 신세타령에 가까운 내 서툰 글과 그 안의 슬픔을 같이 공감하며 위로해 준 브런치 안의 많은 분들이 있어 나는 이곳이 마냥 글을 사랑하고 또 좋은 사람만 모여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야누스의 얼굴로 고매한 인격자와 카피캣을 번갈아가며 타인의 아이디어와 글을 도용해 책을 내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카피캣이 어떻든 나는 나의 글을 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새로 발행한 내 글 역시 그분이 다시 자신의 글을 쓰는데 자양분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브런치의 응원하기와 멤버십을 신청했다. 글을 접하는데 문턱이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 해 예전에 응원하기 등록을 잠시 했다가 다시 철회했지만, 이번 카피캣 사건의 등장으로 마음을 바꿨다.
플랫폼 안에서 시행하는 제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리즘을 벗어나 노출의 빈도가 현저히 줄고 때문에 흑심을 갖은 카피캣에게 너무나 손쉬운 먹잇감으로 타깃이 될 확률을 높인다는 생각이다. 요즘 강세인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채널의 명의 도용이나 콘텐츠 카피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고맙게도 구독자들이 먼저 보고 피해사실을 알려주는 등 발 빠른 대처가 이뤄진다. 여기는 야만적인 카피캣이 산다. 그러니 구독자 수가 적거나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면 더욱더 플랫폼 안에서 시행하는 제도를 등록해 많은 사람의 눈에 띄게 알고리즘이라는 최소한의 보호장치 안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그저 내 글만 쓰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조용히 글을 써서 올리던 분들도 카피캣의 피해를 받는다면 그제야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을 격질 안길 바라며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위 두 가지 제도에 등록 안 하신 분이 계시다면 하나라도 꼭 등록하셨으면 좋겠다.
몇 년간 멈췄던 글을 다시 쓰며 표절과 도작의 피해를 받는 나쁜 일이 있었지만 좋은 일도 있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지 내 글쓰기의 원점을 떠올리게 된 것.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맨 처음 시작은 한풀이 해소의 장이었던 글쓰기였고 이후엔 내가 좋아하는 데님에 대한 찬미와 탐구로 이어지며 세상에 그 아름다움과 멋짐을 알리고 싶어 글을 썼다. 언젠가 청바지 생산에 관한 책을 쓰겠다는 포부는 잔뼈가 굵은 경력을 가져야 전문성을 더 키울 수 있고 그래야 독자들도 신뢰감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오랜 방황으로 경력이 단절된 뒤 복종을 바꿔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서 나와 데님을 하는 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던 곳에 나는 필요로 하는 인재가 아니었고 글을 쓰면서 꼭 현업이 데님과 관련한 일이어야 된다는 마음속 강박을 내려놓으며 명확히 정리됨을 느낀다. 애초의 나의 자리는 데님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반하고 사랑하는 데님의 이야기를 쓰면 된다는 원점. 전문적인 이야기는 실력이 뛰어난 분들께 맡기고 나는 소비자가 청바지를 대할 때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마당놀이의 바람잡이' 같은 글들을 써야겠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기쁘게 <데님. 시네마. 코믹= 월드>의 하권을 작업할 생각이다. 영화와 만화라는 다른 특징을 가진 장르의 작품을 월드라는 챕터를 통해 공통된 이야기를 최종적으로 풀며 연결성을 가지는 만큼 하권(2권)은 매거진 연재가 아닌 전체 완성 후 공개하려 한다. 표절과 도작의 피해를 받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 글을 이어가야겠다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부족한 글을 이따금 올려도 봐주셨던 독자님들이 계셔서 가능했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한다.
살면서 많은 이들에게 도움 받고 살았다. 하지만 정작 제대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준 적은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세상을 통해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기쁨을 다시 감사한 마음으로 돌려주고 싶어 좋아하는 대상이 꽃길을 걷도록 돕겠다. 누군가 정성을 들여 만든 데님이 소비자에게 선택되고 이야기를 가진 잊히지 않는 옷으로서 더 사랑받을 수 있도록 나는 미약하지만 글로써 각자의 분야에서 하나의 청바지를 만드는 모든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