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을 정의하기 전에, 평범한 인간이란, 정상적인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정의해야 그것에서 벗어난 광기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속성을 나열해보겠다.
정상인들 속에 있으며, 비슷한 특성을 공유한다. 유행, 선호하는 가치, 안정적인 것 등등
그것이 프레임인지, 그냥 자연스러운 것들인 지는 잘 모르겠다. 정상인은 그것에서 벗어날 것 같으면 스스로 회귀하게 된다.
정상, 비정상을 가르는 유일한 척도는 ‘나는 다수와 엇비슷하게 하고 있는가? 특이한 것을 해도 그 허용된 세계 안에 있는가? 다수가 그것을 인정해주는가?’ 이다.
늘 정상인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과 비슷해지려, 다르게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 타인의 허락과 허용이 그 핵심적인 기준이다. 인스타의 좋아요, 말을 거는 것, 다수와 어울리는 것, 무리 속에서 같이 노는 것, 다른 인간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것… 그 평가는 근원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심지어 처음보는 사람에게 조차 눈치를 보게된다. 왜냐면 그 인간도 일종의 무리 속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회라는 무리 말이다.
그렇다면 정상인은 필연적으로 약점을 갖게 된다. ‘타인의 평가’라는 기준말이다. 그것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벗어나면 미치광이로 낙인이 찍힐 것이며, 그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미지의 공포이다. 그것이 ‘인정 욕구’이며, 데일 카네기가 인간에게 평생 써먹던 무기이다. 즉,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여는 열쇠이자, 틈을 벌려서 손실을 일으키는 약점이라는 것이다. 또한 절대 사고를 깊게 파고 들어갈 수 없게 된다. 그것에는 정상에서 자신을 뜯어내는 무언가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몸의 근육은 있다. 외로움을 파고드는 요령이 있어서 생식기를 여러 여자에게 쓴 경력이 있을 지도 모른다. 술을 3병 마실 수도 있으며 그게 자랑스러울 수도 있다. 명성이 있어서 돈만을 위해 다수가 모여 조작된 연극을 하는 방송에 자신과 타인을 배제하며 거기까지 올라간 인간이 온갖 명언이니 철학이니를 설파할 수도 있다. 게임 중독자일 수도 있다. 기업 총수일 수도 있다. 재산이 좀 많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결정사 사이트나 ‘좋은 어른이 되는 법' 따위를 읽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좋은 어른’이라는 것 자체도 정상인 속의 좋은 어른이며, 다수가 인정해주는 형태의 좋음이다.
그럼 광인은 무엇인가? 정상과 비정상, 비정상 속에 광기가 있다면 비정상의 속성을 상속받을 것이다. 비정상인의 속성은 정상인의 속성을 뒤집은 것이겠지.
정상인들 속에 있지 않으며, 비슷한 특성이 없다. 유행에 가치를 못 느끼고, 선호하는 것도 다르다. 안정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레임에서 나와있다. 절대 그것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수와 다르게 한다. 특이해보일 수 있으며 허용된 범위 밖일 수도 있다. 다수가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이질감을 느낀다.
정상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들과 비슷해질 생각이 없으며, 자신의 안을 따라가 무언가를 하다 보니 다르게 하게 한다.
그럼 광인은 안 좋은 것인가? 광인의 기준이 정상적 타인들에게 크게 불편치않은 인식이라면, 그것에 얽매이는 것은 오히려 관습, 각본, 도덕 등의 거미줄에 엮여있는 열등한 형태의 무언가가 아닌가? 그러고서는 죽기 전에 징징거나, 고전 소설의 도구적 유행에 휩쓸려서 마치 유행하는 과자처럼 소비하거나, 신나게 즐기고 와서 혼자 방에 있을 때 가식적인 눈물을 흘리며 삶이 공허하다며 이야기 하거나, 일면식도 없는 종교인들을 스승이랍시고 찾아가서 모든 세세한 것을 털어놓고는 재산을 헌납하는가?
열등한 형태이다. 평소에 고통을 피하고, 다수로 도피하며, 그 외의 방법은 생각하기도 싫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의미적인 고통을 나중에 몰아서 받는다.
마치 그런 것이 유치한 것인 것 마냥, 너무 진지하다며, 너무 심각하게 군다며, 사회성이 없냐며, 그냥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다, 라며 서로가 서로를 일정 구간으로 끌어내린다. 그리고 혼자가 되는 시간이 되면 그런 철학과 가치관,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와 무리와 술, 담배에서 오는 마취 효과의 하락으로 인한 현실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온다. 그러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견디는 근육이 없으니까. 다시 술, 게임, 담배, 여자, 친구 등 다양한 형태의 마취제로 도피한다. 미룬다. 나중으로.
미치고 있는 인간, 미친 인간은 그렇다면 무엇으로 사는가? 광인은 혼자서 살 수 있나? 고독함 속에서 살 수 있나? 다른 인간이 없이 살 수 있나? 이것이 가장 큰 모순이다. 미친 인간도 인간이다. 이성 이전의 생물적인 본능으로 누군가와 교류를 할 때 우울이나 고통이 완화된다. 사실 그것도 애매하다. 우울은 고독 그 자체에서 오는 지, 아니면 정상인이라는 것에 맞춰야하며 그것에 회귀하지 못했다는 인식에서 오는 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을 만나서 표면적이고 한시적인 관계를 만들면 수월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비록 그것에서 얻는 가치있는 것이 크게 없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것일까? 그저 정상인이 되어야하며, 그것에서 벗어나면 평생 손해를 보고 미지의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인식이 우울의 원인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혼자 고독하게 있을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가? 늘 무리 속에 있어야 하며, 한 명 이상의 정상인과 어울려야 하는가?
그렇다면 가정을 두고도 다수에게 그것을 얻기 위해 늘 쏘다녀야 하는가? 여자 하나를 옆에 두고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친구나 모임 등으로 도피해야하는가? 여자가 엄청나게 예쁘고 아름답고 모두가 바라면 그러면 안 그러는가? 정말로? 그러면 방황을 멈추나? 만약 그 마취에 익숙해지면? 더 예쁜 여자? 더 몸의 굴곡이 큰 여자? 아니면 술? 마약? 아니면 돈? 더 많은 돈? 그것으로 더 아름다운 여자를 돈으로 매수하면 되나? 그러면 다수가 늙은 나이에 예쁜 여자를 얻었다고 부러워 하며 역시 사람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정상적인 범위 속의 부러움’을 드러내는가? 모를 일이다. 끝이 없다. 이 길에는 끝이 없다. 파멸 뿐이다.
정상에 환멸이 난다. 모든게 기만이다. 어떻게든 본인들의 틀에 끼워맞추려고 한다. 정작 그 틀로 큰 것을 이룬 적도 없으면서. 어휘도 비슷비슷하다.
비범한 성공은 열정과 목적으로
아름다운 여자는 근육과 돈, 명품과 비싼 차로 증명된 능력과 성별적 시장성으로
그러다 문학가가 보이면 낭만, 아름다움, 고향, 사랑 등의 스크립트 속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 얕은 어휘로
헌신하고 평생 다른 여자를 안 보는 남자를 호구, 퐁퐁남 혹은 낭만가, 사랑꾼 등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인간은 애주가, 주당 등의 칭호로 ( 그러고 나중에는 건강이니 금주니 뭐니 한다 )
여자에 대한 추악한 욕망을 젊을 때는 혈기왕성으로, 나이 들어서는 추잡한 주접으로 취급하며, ( 정상인은 나이대 별 정상과 비정상도 나뉘어져 있다. )
그러다 나이많은 인간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열정, 젊게 산다, 멋있다 등으로.
가정에 충실한 여자를 보면 어떤 집단의 정상인은 여자로 살아야한다, 어떤 집단의 정상인은 아이가 세상이다… ( 정상의 기준은 집단마다도 다르다. 인간이라는 큰 틀 안에서 공통된 것들이 있을 뿐 )
돈이 많거나 잘생기거나 예쁘면 그래도 된다는 기괴한 정상 기준도 있다. 돈이 많으니 10살 어린 여자랑 결혼해도 정상이다. 아니 꼬우면 돈 많이 벌던가. 잘생겼으니 15살 어린 여자랑 사귀어도 된다. 예쁘니까 나이 많아도 본인이라도 좋을 것 같다 등등. 욕망과 정상과 돈, 성욕이 엉켜있는 기괴한 모양새이다. 그게 가장 위화감이 들고 가장 불쾌하다. 너무 복합적이고 악취가 심하다. 그러한 문장들에는 위선과 포장질이 너무 떡칠이 되어있다. 하나하나 까보면 가관이다. 썩은 양파같다. 깔 때마다 비린내나는 진액이 끈적하게 떨어지는 겹겹이 쌓인 양파말이다. 오히려 어린 인간이 그런 것에서 더하다.
그런 수 많은 나이대별, 집단별 어휘로 타인을 연어 암수를 가르듯이 가르고, 본인과 배우자, 본인의 자식조차 가른다. 그렇게 선택해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나서, 후회를 하기도 한다. 정상적인 후회이다. 왜냐면 정상인들은 후회나 가치조차 공유를 하니까. 그리고 정상적인 것들 중 본인에게 가장 기분이 좋고 이득이 되는 것을 고른다. ‘20대에 안 하면 후회하는 것들’이라는 상품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상품은 유튜브 컨텐츠로 구독자를 모으기 위해 우후죽순 늘어났고, 책도 나오고, 칼럼도 나온다. 상품으로서. 정상인들의 지갑을 겨냥한.
그러면서 공허하니, 괴롭니, 이유를 모르겠니…
TV를 안 본지 오래되었다. 이제 매체를 보는 것이 괴롭다. 정상, 정상, 정상. 정상적이게 되어라. 정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니 지갑을 열지. 정상이 되어서 정상 상품을 구매해라. 안 그러면 너 비정상이다.
그렇다고 광인도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고독하고, 늘 불안하지 않은가.
그냥 다리를 휘저어서 물 위에 떠다니다가 풀을 개걸스럽게 뜯어먹고 잠수해서 벌레를 먹는 오리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단순한 오리 정도가 좋다. 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