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가치 있는 것이 있어도 그것을 너무 자주 드러내거나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인정을 받기 위해서 아무에게나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한번 봤던 것이 되어 버리고, 인정을 많이 받고 싶을수록 그것을 더 자주 드러내서 지겨움을 느끼게 만들게 된다.
애정을 담은 노래라는 것은 아주 가끔씩 한 사람에게만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여러 여자한테 하는 순간 그 가치는 퇴색해버린다. 그때는 그저 가창력이나 폐활량 등의 물리적인 것 만으로 평가가 되는 수준의 상품이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진심과 순수함, 개인과 개인 사이의 그 고유한 스토리를 빼면 일반인의 노래에서 볼만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상품성 자체로 따지면 떠리도 못된다.
관심, 칭찬, 사랑과 같은 귀한 어휘, 돈을 쓰는 것, 기억을 해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여러 군데에 쓰면 분산이 되며 의미가 퇴색이 된다. 그것은 한번 하는 순간 과거로 남아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주 무서운 것이다. 그 행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돈으로도, 명성으로도 지울 수 없다. 의미의 파산. 가치의 영구적인 증발이다.
그래서 사랑을 파는 배우나, 사랑을 전국에 노래하는 가수는 그 근원적인 특성상 그런 가치를 갖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명성과 유명함, 돈과 외모, 그것만을 보는 남자와 여자는 덤이다.
어떤 것이 돈벌이와 엮이면, 대중성, 상품성, ‘잘 팔리는 템플릿의 적용을 통한 잘 팔리는 상품화의 과정’을 거치면 그것은 아이러니하게 전달하려는 의미를 잃는 것 같다. 내 느낌에 좀 기괴하고 비틀려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TV나 가치를 노래하는 책, 공익 광고, 그냥 유명한 모든 인간의 말에서는 그저 잘 다듬어진 상품이라는 느낌 말고는 느낄 수가 없다.
사랑을 강조하는 책을 쓴 작가는 인세를 더 끌어모으기 위해 시장을 조사해서 적절한 가격을 책정한다. 그리고 가장 잘 팔리는 형태를 찾아서 똑같이 구축한다.
사랑과 조화를 노래하는 가수는 콘서트로 돈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똑같은 노래를 몇 백번, 몇 천번 부르며 지겨움을 느끼기도 한다.
사랑을 연기하는 배우는 ‘시청률이 피크가 되기 위한 시점을 겨냥’하고선 눈물연기와 사랑스러운 표정을 연기한다. 또한 그 주연 자리를 꿰어차기 위해 다른 인간을 밀쳐내고 배제시켜서 거기에 올라갔다.
또한 인정을 받으려 하면 어색하고 꼴불견이며, 누가봐도 티가 난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이성을 찾고,
자신이 하는 ‘대단한’ 일을 봐줄 사람을 아닌 척 하면서 간절히 찾고,
사람이 오면 하던 일이 갑자기 잘 안되고, 꼬인다.
아이러니하게 본인의 인정 욕구로 부터오는 모순감, 환멸감, 약점을 느끼고 그것을 최대한 피하려 하는 인간이 인정을 더 받는 것 같다. 그것은 흉내낼 수 없다. 그냥… 흉내낼 것도 못된다. 삶이 매우 텁텁해지기에… 다만 그게 더 나은 형태의 삶일 지도 모르고, 잘 모르겠다.
그럼 결국 다 혼자서 해야하나. 혼자 간직하는 것이 최고인가. 가끔씩만 소중한 사람에게 흘리고…
누군가가 인정받으려고 본질을 팽겨치고선 훌륭한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춤을 추다, 이후 잠적을 하니 그 껍데기만을 그리워하는 인간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