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통해 성장하기
흔히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은 무조건 피해야 상책이라는 상식이 있다.
다가오면 견디고 뭔가를 배울 수 있으면 좋지만, 굳이 찾아서 겪을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고통을 겪는 시기는 보통 무언가 잘 못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이다.
예를 들면 낯을 가리는 사람이 알바를 구하는 것부터 해서, 대학을 마치고 직장을 찾을 때처럼 말이다.
면접, 자기소개서, 스펙 쌓기 등등 전부 살면서 그렇게 본격적으로 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분명 그것들을 통과하고 잘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른다. 왜냐하면 잘 못하기 때문이다.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보이는데 나의 능력은 너무 미천해보이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
아예 일자리를 구하려고 생각도 안하는 사람들은 그런 류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고통을 미루고 쌓아서 그들이 원치 않는 시점에 더 잔인하게 겪게된다.
구직을 하지 않고 쉬고 있으면 몸은 편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늘 찜찜함이 있다.
그러다 갑자기 부모님이 아파서 돈이 필요하게 된다던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던지 하면
직장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당히 거대한 고통을 겪게 된다.
문제는 그 시점에서 깨달아도 구직 등이 하루이틀만에 빠르게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거나, 부모님을 잃는다.
자신의 게으름과 미룸, 무능이 시간의 흐름과 더해져서 비극을 낳은 것이다.
그렇기에 고통이라는 것은 가능한 회복력이 빠른 젊은 시기에 많이 겪는 것이 이득이라 생각이 든다.
고통에 대한 인내력도 기르고, 대처하는 방법과 회복하는 방법도 일찍 터득할 수록 길게 보면 당연히 더 이롭다.
나중에 머리도 잘 안 굴러가고, 부모님처럼 뒤를 봐줄 사람도 없고, 잃은 것과 책임질 것이 많아졌을 때
혼자서 온전히 그 모든 고통을 한번에 겪게된다면, 그대로 인생이 끝나거나 정신과 몸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라는 말이 비열한 꼰대들이 하급자를 착취할 때 쓰는 전형적인 말로 변모되었지만,
사실상 회복력이 빠를 때 여러 종류의 고통들에 대한 내성을 기르라는 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