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무휴

4글자에 담긴 잔혹함

by Blue Duck

공휴일, 명절 휴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휴식의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다.

그 날들에는 의미와 상징이 있다. 가족과의 화합이라던지, 어린 아들과 딸을 챙기는 날이라던지.


그 날들에 일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 시간을 일에 할당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급해서 그렇구나, 라는 사정을 넘어서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냥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그 날들에 있는 의미, 즉 사람과의 교류와 친근감이라는 것에 대해

느끼는 중요성과 의미가 줄어들었고, 그 결과 돈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돈은 항상 중요하다. 돈은 생명과 직결되어있다.

즉, 돈이 각별히 더 중요해져서라기 보다는 인간이 덜 중요해져서 선택이 달라지는 것이다.

1년에 며칠 없는 그 날들에 조차 말이다.


너무 일반화일 수는 있으나, 내가 경험해본 바로는... 직접 그런 날들에 일을 해본 결과 그런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과 함께 있는 것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보다, 능력을 기르고 경제력을 쌓는 것이 오히려 길게 보면 나에 대한 존중과 호의를 늘리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과 보내는 시간이 덜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궁하지 않아도 그런 날에 나와서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에게서 점점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궁극적인 행복이 다른 인간에게, 어떤 깊은 연결에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흐려지기 때문에.


경험을 거듭할수록,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를 하고 좌절되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살아있는 인간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생긴다.




극적인 재회도 그 순간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감동의 눈물과 귀환의 놀라움의 카타르시스가 이어진다. 하지만 오랜 기간의 노력과 정성이 없다면 그런 기적적인 재회조차 점점 그 의미가 흐려지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흔한 관계처럼 흔한 갈등을 갖다가 흔한 끝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커다란 기대를 품고 고향으로 돌아간

모든 인간들에게 환영과 극적인 재회가 있진 않았다.

기적적으로 귀환하였을 때 돌아갈 자리가 없었던 경우도 있었으며,

오히려 추가적으로 할 일을 늘리는 귀찮은 대상 취급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약 생존자에게 남겨진 돈과 어떤 힘이 있었다면 과연 그런 취급을 받았을까?


경험이 누적될수록 점점 살아있는 인간에게 기대를 갖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연중 무휴.

돈의 양과 객관적인 유능함, 실적만이 타인의 일관적인 존중, 배려, 환대의 조건임을 느끼게 된다.


연중 무휴.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돈을 선택하는 것이 더 오랫동안 타인에게 존중받는, 나와 나에게 소중한 존재와 가치관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연중 무휴.

무능한 인간은 옆에 오래 있어도 귀찮은 짐덩이 취급을 받을 뿐이다.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은 여유가 있고 기분이 좋을 때 뿐이다. 하루라도 모두가 굶는 일이 생기면 무능함에 대해서 욕을 먹고, 입을 줄이기 위해 버려질 뿐이다. 무능한 인간은 늘 눈치를 보고 비위나 기분을 맞추고 아부를 떠는 것이 직업이다. 그것조차 못하면 정말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


연중 무휴.

인간에게 편히 쉬어도 되는 날은 오지 않는다.

쉼은 도태이자 게으름과 무책임이다.

미루고 회피한 것들과 고통은 나중에 몰아서, 이자까지 붙여서 한번에 받게 되어있다.




과연 이 짓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연중 무휴.

사실 일부 가게의 간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이마에 각인된 글자아닐까.



작가의 이전글언젠간 고통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