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디딤돌에서 발견한 잃어버린 시간
나의 시골 서재의 출입문에는 납작하고 평평한 돌판 하나가 놓여 있다. 문을 열 때마다 덜커덩 소리와 함께 내 발이 먼저 닿는 곳, 바로 그곳이 이 돌판이다. 지금은 그저 흙 묻은 신발을 털어내는 평범한 발판에 불과하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우물가에 놓여 할머니가 그 위에서 빨래를 두들기던 모습도 기억난다. 나는 이 돌판을 볼 때마다 늘 먼 옛날의 시간을 떠올린다.
내 서재가 있는 마을의 이름은 '섬암'이다. 오래전 할아버지께서 물을 찾기 위해 땅을 깊이 파 내려갔을 때 모래가 섞인 지층을 발견했다고 들었다. 불과 100여 미터 인근에 서해안에 이르는 '와탄천'이라는 제법 큰 하천이 있는 것으로 봐서 오래전에 얕은 하천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이 돌판을 마당 한편에서 발견했을 때, 나는 그 크기와 모양이 맘에 쏙 들었다. 가로 세로가 서너 뼘씩은 족히 넘는 널찍한 크기에, 마치 누군가 정성껏 갈아낸 듯 매끄러운 표면은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돌을 만져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까마득한 선사시대의 풍경이 그려졌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하천변 주거지에 놓여있었을 이 돌판은 아마도 한 가족의 삶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한 가장은 돌판 위에 막 잡은 들짐승을 올려놓고 날카로운 돌칼로 식재료를 손질했을 테다. 굵은 핏줄이 선명한 두꺼운 팔뚝에 의해 털이 제거되고 뼈와 살이 분리되는 역동적인 장면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했다. 석양빛에 퍼지는 비릿한 내음 속에서 신기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봤을 아이들이 그려진다. 그들의 굶주린 배는 곧 채워질 맛있는 고기 냄새에 잔뜩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또 어떤 날에는, 이 돌판이 여인들의 땀과 웃음으로 젖었을지도 모른다. 하천에서 바가지로 퍼올린 물을 끼얹어 빨래를 두드리는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퐁당, 퐁당"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나 또 다른 돌멩이로 옷감을 두들기는 손놀림은 바빴을 것이다. 빨래를 끝낸 후에는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는 얼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돌판은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게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디고 흘러, 이 돌판은 엉뚱하게도 내 시골 서재의 발판이 되었다. 닳아서 더욱 평평해진 세월의 흔적을 안고서. 나는 매일같이 이 돌 위를 밟고 지나가며 생각한다. 내가 매일 무심코 딛고 서 있는 이 돌판이야말로, 그 옛날 누군가의 고된 삶과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공간이었음을. 그리고 나 또한 이 돌판 위에서 지적 호기심을 채워가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을.
비록 이제는 발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 돌판은 여전히 내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하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니? 너의 삶의 흔적을 이곳에 남겨보렴." 하고. 어쩌면 이 돌판은 훗날 또 다른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저 평범한 돌덩이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 돌판은 끊임없이 우리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