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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문자 시대로 다시 돌아갔다

이모티콘은 상형문자인가?

by 초마실

5,000년 전쯤부터 사용한 문자

구술문화시대에는 말과 몸짓이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이었다. BC 3,100년경 수메르에서 상형문자가 발명되었다. BC 1,500년경에는 중국에서 표의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크레타와 그리스에서는 선형문자를 사용했다. 또 아나톨리아에서는 히타이트인이 설형문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BC 1,100년경에는 페니키아에서 표음문자가 개발되어 모든 현대 유럽 문자의 기초가 되었다. 급기야 1446년 9월에 조선에서는 훈민정음이라는 글자가 개발되어 반포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보면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여 서로 소통한 것이 약 5,000년쯤 되었다.

다시 출현한 상형문자

20세기말, 대한민국에도 PC통신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모티콘이라는 상형(?)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이모티콘은 UNICODE에서 허용하는 문자에 한정됐다. 요즘처럼 그래픽에 기반한 이모티콘은 꿈도꾸기 어려웠다. 지금 키보드에서 어느 한글키 초성을 선택하고 한자를 누르면 나오는 '★', '■' 것들이 그것이다. 물론 "ㅋㅋ" 같은 초성으로 하는 소통방식도 시작되었다. 21세기로 넘어갈 무렵, 모바일 소통의 시대로 급격히 전환되면서 그래픽에 기반한 이모티콘이 출현한다. 현란하고 기발한 이모티콘은 모바일 소통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이모티콘만 개발하는 직업도 등장하기에 이른다.


소통이 더 원활해진 것일까?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사용하는 문자의 장벽을 넘어야 소통할 수 있다. 물론 이종 문자를 서로 번역해 주는 도구가 잘 등장했다고는 하지만 장벽임은 틀림없다. 문득, 이모티콘 사용량이 문자를 넘어선다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다. 다시 상형문자 시대로 돌아가는 셈이 되는 것일까? 이모티콘만으로도 번역이 필요 없이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간의 소통이 더 쉬워질까?

최고의 압축률을 자랑하는 줄임말들이 외계의 언어처럼 매일 등장한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줄임말의 기록이 있고, 공공기관명도 줄임말이 많기는 하다. 언어라는 것은 '길'과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면 일상어로 굳어지는 특성이 있어 그런 줄임말들이 결국 표준어로 굳어질 수도 있다. 이모티콘이 국어사전에 등재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인류 역사에서 구술이 문자로 기록되면서 소통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이제는 좁은 스마트폰 자판에 문자를 일일이 타이핑하는 번거로움을 덜어보고자 이모티콘이 문자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 시대 소통방식의 표상

말은 말 그 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행간의 의미까지 파악해야 하는 고도의 소통이다. 그리고 문자는 문맥을 통해 글쓴이의 의사를 표명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의미를 단번에 전달하는 이모티콘만의 소통은 자칫 겉으로 만의 소통이 아닐지 우려된다. 지금의 이모티콘은 모바일시대 소통방식을 함축하는 표상이 아닐까.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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