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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는 숨겨진 각주 시스템이 있었구나

[구독자께 고합니다] 왜 이제야 알았는지..

by 푸른알약


1. 글을 쉽게 쓰는 재주가 없습니다. 쉽게 쓰려고 하면 독자를 오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꾸역꾸역 설명을 해봅니다. 그러면 간결한 학술용어를 두고 글을 이렇게까지 늘어지게 만들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정작 학술용어를 등장시켜 보면 글이 무미건조해집니다. 퇴고를 하다보면, 제가 쓴 글인데도 마른 오징어를 씹는 기분이 듭니다.


2. 이래저래 문장을 고치다 보면 결국에는 본문은 쉽게 적고 부연을 각주로 빼자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브런치에는 각주시스템이 없습니다. 본문 하단에 각주를 달아두는 것 말고는 따로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부연설명을 읽고 싶은 독자들이 스크롤해서 내려갔다가 다시 스크롤해서 올라와야 합니다.


3. “뭐 손가락 하나 움직여서 마우스 휠 돌리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각주가 10개가 넘어가거나 본문이 길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흐름이 끊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손가락이 뻐근합니다. 손가락에 통증이 느껴지면 내려가기가 싫어집니다. 우뇌에 똬리 틀고 있는 ‘편히 살자’ 천사가 ‘그냥 본문을 주욱 읽고 각주는 나중에 따로 읽자’고 속삭입니다.


4. 그리고 그 유혹에 곧 넘어갑니다. 제가 제 글을 퇴고하는 동안에도 말이죠. 그럼 다른 사람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본문을 읽으면서 동시에 각주를 참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건 브런치글이지 논문이 아니니까요. 굳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합니다.


5. 간만에 지난 글을 읽다가 만약 내가 아니라면 이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나 하는 자문을 해봤습니다. 자신이 없더군요. 그래서 이건 읽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어 ‘각주를 좀 충실하게 달아보자’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새 글에 각주를 좀 충실히 달았습니다. 각주가 본문 정도의 분량이 나오더군요.


6. 끝까지 달아두기는 했지만 스크롤을 해가며 테스트를 해보니, 아마 본문을 참조하며 읽는 분은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댓글 작성 시스템이 참 좋은 각주 시스템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댓글 버튼을 한번 누르면 댓글이 올라오고, 다시 누르면 본문의 읽고 있던 부분이 다시 나오니까요. 댓글이 잘 달리지 않는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7. 참 유용한 무용함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댓글 시스템과 같은 방식으로 각주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브런치팀이 굳이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은 것은 왜인가 고민하다가, 어차피 댓글이 달리지 않을거 작가들이 알아서 전용하라는 깊은 뜻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어 무릎을 쳤습니다. 자고로 사람이란 깊이 생각해야 하는구나 다시금 깨닫습니다.


8. 하여, 앞으로 읽으시는 분들이 우연히(분명 의도하지 않은 경우일 겁니다) 댓글창을 열었는데, 각주가 우르르 달려있어도 놀라지 마시라는 공지였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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