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리뷰
*아래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2년 10월. 포스터가 재밌어 보여서 예매했다. 쉬는 날이면 집에서도 꼭 영화를 하나를 봐야 하루가 알찬 느낌이다. 그래서 주말이지만 굳이 밖으로 나왔다. 울산엔 아직 상영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루에 두세 개 정도 상영이 잡혀 있는데, 내가 예매할 때는 좌석이 텅텅 비어 있었다. 원래는 복도 쪽에 앉는데 이번엔 영화관 한가운데 정중앙을 예매했다.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예상처럼 사람이 없었다. 내가 즐겨가는 영화관이 예전만큼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직 이 영화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인지 한 20명도 안 되는 사람들뿐이었다. 덕분에 조용하고 좋았지 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우선 다른 멀티버스 영화처럼 일단 눈이 너무 즐겁다. 여러 차원을 오가면서 바뀌는 주인공들의 모습들이 신선하면서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그 즐거움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1) 조이와 에블린; 모든 것을 베이글 위에 올리다
'Just be a rock'
돌이 된 조이와 에블린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그저 돌이 되는 거다. 우리는 어떤 차원에서 바라보면 한없이 작고 멍청하니까. 돌이 되어 보는 것이다.
여러 상황 속에서 우리가 느낀 회의감과 공허감은 어떻게 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인간은 하찮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베이글 위에 올리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조이. 조이는 엄마로부터 상처를 받고 모두와의 단절을 택했다. 그러면서 베이글 홀로 들어가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조부 투바키로 흑화 해버린 조이의 마음은 오직 에블린의 다정함을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그 베이글홀은 타인을 파괴시키려는 것이 아닌, 상처받은 자신을 파괴하려는 최종 목적지였던 셈이다. 아마 조이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모든 차원으로 흩어진 조이는 그 어떤 타인에게서도 다정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까 조금은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 자신의 엄마와 함께 베이글홀로 들어가는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로부터 무언가를 원했던 조이는 어쩌면 모두와의 단절이 아닌 연결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여러 차원을 넘나들며 주인공들은 계속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면서 '원하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라는 대사가 자주 등장한다. 이런 점은 상당히 낙관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느낌을 주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전부 가능하다면 지금의 차원에서의 삶이 무슨 의미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 이런 낙관적인 전개를 뒤집는 일들이 일어난다.
2) 웨이먼드가 세상과 싸우는 방식
여러 차원 중 가장 자주 나오는 차원은 에블린이 쿵푸의 대가가 되어 톱스타가 된 차원이다.
'나의 인생은 이렇게 성공했어요. 그때 당신을 따라갔다면 난 지루한 삶을 살았겠죠. 세탁소를 운영하며 가게에 딸린 작은 집에서 살고, 세금을 내면서 살았겠죠.'
이 차원에선 에블린이 웨이먼드를 따라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웨이먼드는 말한다.
'당신의 아버지는 내게 말했죠. 내가 너무 순진하다고. 하지만 난 그 순진함과 다정함이 싫지 않아요. 그것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고, 내가 세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죠. 나는 그래도 다음 생에는 당신과 세탁소를 운영하며 세금을 내고 살고 싶어요.'
웨이먼드는 영화 내내 바보 같고 멍청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엔 그 순진함이 모든 것을 구하게 되는 스토리로 이어진다.
이 대목이 와닿았던 이유는 웨이먼드의 순진함이 어쩌면 세상을 상대하는 가장 강한 힘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해서다. 뭐든 힘이 세고, 권력을 가지고, 누군가를 이겨야만 하는 것이 강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웨이먼드는 달랐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세탁소에 오는 손님들에게 늘 친절했으며 그들에게 웃어주었다. 세탁소의 세탁기, 야구 방망이, 세탁물 여기저기에 눈알 스티커를 붙여놓은 웨이먼드. 이런 웨이먼드가 못마땅한 에블린은 늘 그에게 질책을 하며 따진다. 그럼에도 웨이먼드는 화내지 않는다.
한심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에블린에게 웨이먼드는 말한다. '내가 세상을 밝게 보는 건 순진한 게 아냐. 그런 전략이 필요했을 뿐이야.'
"제발 다정함을 보여 줘. 특히나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땐."
마지막엔 에블린 역시 그 눈알 스티커를 자신에게 붙임으로써 웨이먼드가 가진 순진함이라는 무기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이 영화는 세상을 살아갈 가장 연약한, 하지만 가장 강한 무기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3) 디어드리와 에블린;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다
흑화 된 다른 차원의 디어드리와 맞서는 에블린
'우리같이 아룸다움이라곤 없는 여성들이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지'
'아니 그렇지 않아.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어. 핫도그가 손인 세상에선 발이.'
웨이먼드에게서 느낀 다정함으로 드어드리씨의 마음을 녹인 에블린.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와 마음을 만져주는 것이 가장 필요했을 것이다. 모두들 온몸에 힘을 주며 적과 싸우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은 아주 작고 따뜻한 무언가, 딱 그 하나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영화 초반에 나오는 세금에 대한 갈등은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웨이먼드가 이런저런 상황을 디어드리에게 설명한 후, 에블린과의 대화에서 디어드리는 그들의 상황을 이해한다. 초반에 그렇게 그들에게 트집을 잡아 깐깐하게 영수증을 검사하던 디어드리는 어느샌가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웨이먼드의 다정함과 순진함이 통한 부분인 것 같다.
5) 그리고 다시 조이와 에블린
영화 전체의 이야기는 조이와 에블린, 즉 딸과 엄마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이다. 에블린은 웨이먼드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갔고, 세탁방을 운영하며, 딸 조이를 낳았다. 하지만 조이가 커 가면서 조이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갈등은 점점 깊어져만 간다. 다른 차원의 조이와 에블린도 마친가지다. 각자 나름의 이유들로 엄마와 딸의 관계는 상처만 가득한 채 남아있다.
베이글 홀로 혼자서라도 들어가려는 조이를 안간힘으로 붙잡는 에블린. 그녀는 아마 딸을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이미 상처받은 딸을 이제부터라도 혼자 두지 않기 위해 조이를 베이글 속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세탁방을 뛰쳐나가는 조이를 붙잡은 에블린도 같은 마음이다. 이제부터라도 딸을 혼자 외롭게 두지 않으려고.
에블린도 어쩌다 보니 엄마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 타국에서 어렵게 세탁방을 운영하며 힘겹게 살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보니 '엄마'라는 역할을 가지게 된 에블린. 그녀 역시 엄마가 처음이라 조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툴렀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며칠 전, 문득 티비를 보다가 엄마가 저기 나오는 애들처럼 너도 상처받은 게 있냐고 물었다.
어쩌다 보니 엄마에 대한 마음을 말하게 되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내가 상처받았던 것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상처를 받았었는지, 힘들 땐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엄마가 미안하다며, 몰랐다고 그랬다. 나도 내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는데, 당연히 엄마가 내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어떨 땐 서로 상처를 주고 속상한 마음을 가지게 되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내가 가장 어두운 곳에 있을 때 나와 함께 있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조이와 에블린의 모습은 어쩌면 특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가지는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흔한 이야기를 멀티버스를 이용해 재밌고 신선하게 풀어냈다.
6) 다른 차원의 나
다른 차원의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너는 그 어떤 차원의 에블린보다 별로라며, 가장 최악의 에블린이라 한다. 그러면서 아무런 능력도 없는 에블린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러 차원의 나를 보며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는 어딘가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다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주제로 영화가 끝났으면 너무 낙관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지막에 조이와 에블린 그리고 웨이먼드가 세탁방 앞에서 끌어안는 모습을 보며 느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결국 하나로 유일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유일함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다른 차원의 나도 결국엔 지금 차원의 나의 일부일 뿐이라고.
그렇기에
우리의 지금의 삶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