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본즈 앤 올 리뷰
*아래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1.
메런과 킴
첫 시작은 베이비시터랬다. 메런의 아버지는 메런을 떠나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메런이 처음 사람을 먹기 시작했던 기억을 말이다. 식인영화라고 해서 조금 긴장을 하고 갔지만 초반에 긴장을 너무 놓고 있었다가 메런이 킴의 집에서 친구의 손가락을 물어뜯는 장면이 시작되는 순간 급격하게 긴장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잔인하다는 영화를 꽤 봤었지만 사람을 그냥 앉은자리에서 뜯어먹는(?) 그런 영화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피가 별로 나오지 않은 장면인데도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영화는 초반에 집중도를 확 올리면서 끝까지 그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130분이라는 러닝타임 속에 전혀 지루할 틈이 없고, 긴장감 역시 내내 가져간다는 면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의 특성상 위험한 사람들이 주변에서 접근해오기도 하고, 그들 스스로가 위험한 사람이라고 여겨 본인들을 숨겨야 하는 상황들이 계속되면서 나도 함께 불안감을 가진 채로 감상했다. 처음 봤을 때는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몰라 긴장감이 가득한 상태로 봤었는데, 2번째로 봤을 때는 영화 전개와 연출의 탄탄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사람을 먹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영화 자체가 주고자 하는 것들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했다.
02.
메런과 설리
어쩐지 처음 나올 때부터 느낌이 안 좋다 했다. 이 아저씨 나오는 부분에선 손에 땀날 정도로 긴장했다. 친절해 보이는데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모든 영화는 이런 사람이 제일 결정적인 사건을 터뜨리는 거 아니던가. 자신이 먹은 사람들의 머리를 엮어서 다닌다던 설리. 자신을 설리라고 부르는 설리. 설리와 메런은 어쩌면 서로에게 조금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메런은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잠시나마 설리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평생을 외롭게 혼자 떠돌던 설리는 메런을 보면 진정한'둘'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초반에 설리를 만난 후, 메런은 식인의 습성과 본능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메런은 설리가 샤워를 하는 틈을 타 그에게서 도망쳐 나오는데 그 후의 장면은 좀 섬뜩했다. 버스 안에서 메런은 도로에 우뚝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설리와 눈이 마주친다. 아마 어린아이의 시선에서도 그는 가까이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을 것이다. 한참 후에 리와 헤어진 뒤에도 설리가 등장하는데, 그 장면에서도 놀랐다. 설리는 그녀를 향한 집착으로 첫 시점부터 그녀를 따라온 것이었다. 첫 설리의 등장에서는 그저 아, 메런이 이런저런 비슷한 습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서 여러 위기를 겪게 되는 로드무비구나 했지만 설리의 재등장으로 확실히 그 뒤에 큰일이 더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설리는 평생을 혼자 지냈기 때문에 아마 너무나도 외로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습성 때문에 일반적인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평생을 배회하면서 지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비슷한 메런에게 동료 이상의 감정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잘못된 집념 때문에 설리는 메런을 몇주를 몰래 따라다녔던 것 아닐까. 결국 영화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설리가 재등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설리의 광기는 잘못된 선택을 저지르게 되고 결말에서 비극을 가져오는 장치가 된다. 주인공들의 행복을 빌었던 나 같은 관객의 입장에선 설리는 어쩌면 지독한 악역이다.
03.
카니발리즘
카니발리즘 (cannibalism) ; 동족 포식 문화
카니발리즘이란 소재를 가진 영화는 여러 개가 있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보통 식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의 레퍼토리는 비슷하다. 조난이 되거나 난파가 되거나 극심한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극한의 상황에서 식인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본즈 앤 올은 그런 극한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을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들은 태생이 본능적으로 사람을 먹도록 태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본능을 더 가까이 느끼고 원하게 된다. 이는 상황에 의한 식인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욕구를 의미한다. 그래서 더 새롭고 신선한 영화가 아닐까. 영화에는 식인을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 장면 자체는 조금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고어영화라고 분류할 만큼의 잔인함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불편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리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이야기의 독특한 소재를 넘어서는 아주 보편적인 주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반부까지 영화의 자극적인 부분만 기억에 남아서 아, 이것도 별로 다르지 않은 건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후반부에는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을 만큼 명확하고 따뜻한 것들을 말해주고 있다. 결국 남들과 다른 습성을 가진 무리일지라도, 그들도 똑같이 외로움을 느끼며 사랑을 할 때엔 그 누구보다 평범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요약하자면, 식인이라는 소재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점과 주제를 말하고자 하는 방식이 신선하면서 즐거운 영화였다.
04.
감독과 배우, 그리고 음악
티모시는 구아다니노 감독의 확실한 뮤즈가 된 것 같다. 몰랐는데, 티모시가 나온 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듄 빼고. (조만간 볼 듯) 구아다니노 감독과 할 때, 레이디버드나 작은아씨들과는 완전 다른 느낌이 살아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역시 티모시의 매력이 완전하게 담겨 있는 작품이고, 이 작품 역시 그렇다. 티모시는 구아다니노 감독의 작품에서 유독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이번 역할 역시 마치 실존 인물처럼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생생함이 담겨있었다.
성장영화이면서 로드무비라 보는 내내 그들을 관찰자 시점에서 따라가게 된다. 여러 주를 다니면서 리와 메런이 보내는 시간이 위태롭지만 그 모든 과정이 뻔하지가 않아서 좋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마다 달라지는 풍경과 분위기를 느끼기도 좋은 영화였다. 그 사이에 음악과 연출도 환상적이다. 부분 부분 빛을 최소화한 듯한 장면들이 많은데, 오롯하게 그 분위기와 차분함을 전달하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의 화면들이 긴장감을 더 갖게 해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한 기분을 들기도 하게 해 주었다. 촬영감독이 아르세니 카차투란인데 영상이 예술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나 배우의 연기를 떠나서 그 이상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화면 자체가 담담하면서도 긴장감을 주는 듯해서 보는 내내 감탄이 나왔다.
특히 사운드트랙이 매력적이다. I'm with you가 대표곡인 듯하다. 노래가 장르답게 기이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띈 선율도 많다. 전체적으로 기타를 이용한 것 같은데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냥 들어도 좋다.
05.
명장면
물론 명장면 탑은 마지막 장면이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분위기나 연출, 대사 등이 많았다. 가장 먼저, 트럭에서 둘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처음으로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더 가까워진 계기가 된 장면이다. 그러면서 리가 장난스럽게 하는 대사들이 인물을 사랑스럽게 보이게 만든다.
Meren : What was it like?
Lee : A rush. I could feel every bllod vessel like spider webbing through me. I felt like some kind of weird new superhero.
Meren : What about afterward? What did you feel about it? What did you think?
Lee : I don't remember after.
Meren : That's bullshit.
Lee : Hey, I'm not just going to tell you what you want to hear. You ask me s question, I got to answer it.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네가 듣고 싶은 걸 다 말해주진 않아. 네가 질문을 했으니까, 난 대답을 할 뿐이지.라고 말하는 티모시가 진짜 매력적이다.
주유소에서도 별 대화를 나누지 않지만, 그냥 이 둘이 완전히 다시 하나가 되고 떠나는 여행이라 그런지 이전과는 표정부터가 달랐다. 서로 이제 안정적인 관계가 되었다고 느꼈는지 뭘 해도 행복해 보였다. 늘 외로웠던 이 둘이 이제는 완전히 하나가 된 듯 자연스러웠다.
Meren : I learned how to drive in that truck.
Lee : You learned how to kiss in that truck.
Meren : I knew how to kiss before you, Mr. Kentucky.
.
.
Lee : You don't think I'm a bad person?
Meren : All I think is that I love you.
마지막 메런의 대사가 환상적이다. 리가 아버지에게 저지른 일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쓰레기 같냐고 물어보니까 오직 널 사랑한다는 생각밖에 없다니. 그러면서 마지막에 차가 멈출 때까지 달려가 거기서 평범한 사람들처럼 잠시 지내보자는 그들의 말이 슬펐다. 평범한 사랑을 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그들에겐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사랑함과 동시에 평범함을 원하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할지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06.
풀본 그리고 본즈 앤 올
본즈 앤 올 이라는 영화의 뜻을 이해하고 나면 조금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제목에 대해서 한참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이는 결말의 여운이 오래 남아서가 아닐까. 마지막 결론이 이런 영화는 아마 전무후무 할 것이다. 본즈 앤 올. 숲 속에서 제이크 일행을 만난 후 알게 된다. '풀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풀본을 하기 전과 후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에 메런과 리는 충격을 받으며 놀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말도 안 돼.라는 표정으로. 하지만 이 말이 처음 딱 나온 순간 우리는 유추해 볼 수 있다. 제목이 본즈 앤 올인 이유와 주인공의 미래를. 마지막 리의 말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괴상할 것이다. '나를 먹어줘'라니. 거의 마지막 10분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제목의 의미가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었지만, 엔딩 장면을 통하여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아마 올해 본 영화의 엔딩 중 가장 기이하고 가장 슬픈 결말이 아닐까 싶다. 메런은 영화 초반부터 쭉 아버지, 설리, 리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메런이 혼자 있는 장면에선 무조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고, 사고를 당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난 이후엔 메런이 결국엔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메런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더 외롭고 두렵겠지만, 리와의 시간이 그녀에게 큰 힘이 되어줄 듯하다.
이 영화는 낭만 그 자체이다. 이렇게 기이한 낭만을 본 적이 없지만, 새로운 형태의 낭만이라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리와 메런은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공유하며 그 누구보다 의지했다. 마지막까지 리는 메런을 위해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준 것이 아닐까.
Lee : I wnat you to do it, Meren. I'm done here.
Meren : No. No. No.
Lee : I wnat you to do it, Meren.
Meren : Lee, stop. No. No. I can't.
Lee : Bones and all.
Meren : I can't. Stop.
Lee : It's beautiful. It's the easiest thing, Meren, love.
Meren : No. No. No.
Lee : Just love me and eat.
07.
절대적으로 기이하지만,
본즈 앤 올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다. 완벽한 묘사다. 말 그대로 기이하지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