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소멸과 기술의 가속 사이에서
미국과 이란이 전쟁 중이다. 전쟁의 명분은 불분명하지만, 그 피해는 두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의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 중이던 학생 181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의 AI 시스템 ‘메이븐’이 지목되고 있다. 팔란티어가 미국 국방부와 체결한 ‘프로젝트 메이븐’을 통해 개발된 이 시스템은 이미 지난 1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에도 활용된 바 있다.
영국 신문 가디언에 따르면, 폭격 대상이 된 해당 건물은 미 국방정보국에 의해 군사 시설로 분류되어 있었지만, 2016년 학교로 용도가 변경된 사실이 시스템에 반영되지 않았다. 여기에 시간당 1,000건의 표적을 설정하는 메이븐의 속도까지 더해지며 참사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메이븐 도입 이전에는 표적 설정 과정에서 다층적인 교차 검증이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단일 시스템이 전 과정을 통합하며 과거 2,000명이 맡던 일을 20명이 처리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처럼 전쟁의 양상은 달라지고 있다. 인간의 판단에 의존하던 전쟁은 이제 AI가 표적을 선택하고 분석하며 판단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숙고와 망설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술은 인간과 세계 사이에 개입해, 때로는 우리가 결코 원치 않았던 결과를 만들어낸다.
기술이 인간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수록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그래서 오늘은 기술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을 담은 두 권의 책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책은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은 역사학자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이다. 이 책은 기술에 의해 매개된 일상 속에서 ‘직접 경험’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다. 기술은 편리함을 제공하는 대신 우리의 신체적 경험을 줄이고, 한계에 직면할 기회를 빼앗는다. 그 결과 집중력과 인내심은 약해지고, 기억력 역시 둔화된다.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어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기술을 ‘양의 탈을 쓴 디지털 늑대’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면 두 번째 책,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알렉스 카프의 <기술 공화국 선언>은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기술 예찬론자인 저자는 점진적인 기술 발전이 아니라, 국가 주도의 급진적인 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지체하지 말고 새로운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해, 궁극적으로 전장에서 활용될 가장 정교한 AI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엔지니어링 중심의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기술 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 그의 최종 결론이다.
이 두 권의 책이 보여주듯, 기술은 상반된 얼굴을 지니고 있다. 기술은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직접 경험을 약화시키는 도구일까, 아니면 기존 질서를 재편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핵심 동력일까. 우리는 그 사이에서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술의 발전은 피할 수 없으며 그에 따른 인간의 변화 역시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기술은 해방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억압의 도구다. 즉,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최근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GPT-5.2, 클로드, 제미나이를 가상의 국가 지도자로 설정해 전쟁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이들은 21번 중 20번, 무려 95%의 확률로 핵 사용을 선택했다. 두려움, 망설임, 지연, 불안, 고뇌와 같은 인간의 비효율적인 감정은 어쩌면 우리가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장치일지도 모른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과학과 기술이 언제나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이렇게 경고했다.
“과학은 미덕의 대체물이 아니다. 바람직한 삶에는 머리만큼이나 마음도 필요하다.”
기술과 함께 살아가야 할 지금,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우리에게 오래 남을 질문이다. 우리는 더 빠르고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선택이 언제나 더 나은 방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효율성과 편리함 뒤에 가려진 인간다움의 자리를 끊임없이 되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점점 지워가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그 속도를 따라가는 우리의 태도와 기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