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기
[제주일기]
2017. 7. 27.
중문관광단지를 걷는 법 2.
절벽을 따라 내려가 좁은 통로로 들어서니 모래사장이 나타났다. 드높은 절벽에 둘러싸여 찾아보기 어려운 곳에 숨어있는 이곳이 중문색달 해수욕장이었다. 절벽 아래 이렇게 큰 모래사장이 숨어있다니. 게다가 제주의 북, 서, 동쪽의 바다와 달리 깊고 파도도 높아 더욱 놀라웠다. 제주의 남쪽 바다는 자신이 태평양의 일부임을 과시하듯 거칠고 드셌다. 동해안에 있는 해수욕장 같았다.
황우지 해안처럼 중문색달 한편에도 일제가 뚫어놓은 무시무시한 동굴이 있었다. 이런 동굴이 앞에 있으면 마음 편히 물놀이하기는 힘들 것이다. 관리사무소가 동굴 앞에 서서 가렸지만 뒤편으로 빼꼼 보였다. 모래사장에 앉아 사람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바라봤다. 서핑 보드를 타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성공하면 나도 모르게 환호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래도록 바라봐도 지겹지 않았다.
마지막 목적지로 가기 위해 일어섰는데 좌우 양쪽이 중문색달 해수욕장으로 접근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왼쪽은 하얏트 리젠시 호텔을 통과해야 하고 오른쪽은 퍼시픽 랜드를 통과해야만 한다. 호텔과 유원지가 해수욕장을 자신들 것인 양 차지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입맛이 썼다.
중문색달에서 천제연 폭포까지 걸어서는 25분 거리지만 오르막길이라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지대가 가장 낮은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깔때기 모양의 지형이었던 것이다. 천제연 폭포를 먼저 보고 중문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100여 종의 자생 난대식물을 감상하는 것이 좋다는 설명문을 나중에 봤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상절리로 가려면 오르막길이니 같은 어려움에 처했으리라. 걸을 용기가 나지 않아 택시를 탔다.
폐장 한 시간 반 전에 도착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깊은 골짜기와 그를 둘러싼 울창한 숲에 마음을 빼앗겼다. 높이 솟은 선임교에서 계곡 전체를 내려다보며 바위와 식물들이 어우러진 모양새를 살폈다. 폭포가 없었더라도 남방의 숲은 그 자체로 훌륭한 수목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뭍과는 다른 분위기, 다른 냄새를 풍기는 제주의 숲이 낯설면서도 신비로웠다.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서식하는 곤충도 다르겠구나 싶었다.
천제연. 해 질 녘의 어둠이 깊은 못에 내려 검은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새카만 물빛을 드러냈다. 얕은 곳으로 오면서 오색찬란한 빛깔을 내는 것을 보니 투명하고 맑았다. 못의 가장자리를 바위가 기둥 모양으로 깎여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2폭포와 3폭포도 크기는 작지만 숲과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3폭포에서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을 만났다. 부모들은 폭포 구경은 뒷전이고 아이들을 챙기기 바빴다. 벌레 방지약을 뿌려주고 물병을 따주고. 챙겨야 할, 혹은 챙김 받을 사람들이 있다는 게 조금 부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혼자 있는 것이 더 좋다. 얼마나 지나야 사람이 그리워질까. 그때가 되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사랑을 구걸하게 될까. 나는 타인에게 사랑을 퍼주는 사람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것이 사랑이었을까 의심스럽다. 사랑의 탈을 쓴 인정욕이나 지배욕 아니었을까. 지금은 나를 돌아보고 나에게 물을 주는 시간이다. 제대로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을까. 두려움뿐이다.
2017. 7. 27.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