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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Oct 24. 2017

용수리에서 1박2일

제주일기

[제주일기]

2017. 08. 06. - 07. 

7. 용수리에서 1박2일 


제주의 서쪽에 위치한 용수리


 제주에 사는 친구가 집으로 초대했다. 정서쪽에 위치한 용수리. 차귀도를 앞에 두고 있는 곳이다. 두어 번 지내본 터라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바닷가와 조금 떨어진 내륙, 초원 한 가운데 있어 제주 서부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수월봉에서 바라본 차귀도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일주일하고 이틀 만이었다. 사실 외롭지 않았고 심지어 혼자라는 것도 잘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랜 친구이기 때문일까. 친구와 그의 남편, 그리고 그의 동생. 셋과 함께 하는 자리는 즐거웠다. 셋이 가족이기에 나를 빼고 이야기 하고 농담도 주고받았다. 이런 상황이 불편하지 않고 만족스럽고 편했다. 굳이 나서서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나의 존재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시키지 않아도 되었기에.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분위기에 떠가는 작은 조각배. 적응하고 나서는 신이 나서 이러저러하게 떠들기까지 했다.


  현지인들이라 제주의 가장 좋은 곳들을 알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야간개장을 한 금능 해수욕장을 갔다. 살랑거리는 밤바다에 발을 담그고 놀았다. 가족이라고 하면 항상 고루하고 답답한 족쇄라 생각했었는데, 내 또래의 사람들이 가족으로 엮여있는 모습은 신선하고도 에너지가 넘쳤다. 가족이 청춘일 수도 있구나. 나도 이들처럼 관계 맺기를 잘 할 수 있을까. 아직 자신이 없다.


금능 해수욕장에서 친구의 가족들
해가 지는 용수리 바다


  풍력발전기 옆 용수리 바다에서 흥에 맞춰 노래 부르고 춤을 췄다. 파도소리, 음악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바닷바람과 어둑어둑한 시야. 신나게 놀았다. 알 수 없는 힘이 솟았다. 우연히 벌어진 판이었는데 마치 기다려온 것 같았다.


아침 창 밖 풍경

  아침에 눈을 뜨니 바람을 타고 들어온 향긋한 풀과 흙 내음이 가득하고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는 검은 밭이 보였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창문 너머로 이런 풍경이 보인다니 얼마나 근사한지. 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내가 지금 땅에 있구나. 대지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구나. 바다와 초원, 중산간, 오름 등 각각의 자연이 주는 에너지는 다 다르다. 그 중 대지의 힘은 풍요롭고 포근하다. 넉넉하고 포용력이 넓은 친구의 성향도 한데 어우러져 용수리의 매력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개운하게 일어나 경쾌하게 움직였다. 스트레칭을 하고 과일을 깎아먹고 도시락을 쌌다. 수월봉과 안덕계곡에 가기로 한 것이다. 성산 일출봉, 산방산 용머리 해안과 함께 제주의 지질 구조를 볼 수 있는 엉알 해안 끝에 위치한 오름, 수월봉. 햇빛이 뜨거워 지질 트레킹은 하지 못했지만 수월봉 꼭대기에서 바라본 차귀도와 제주 서쪽 바다는 가슴이 뻥 뚫리도록 시원했다. 


수월봉에서 바라본 차귀도와 와도


  안덕계곡 가는 길에 해바라기 밭이 크게 있었는데 질 때가 되어서 인지 아니면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시들시들 말라있었다. 제주하면 성산의 유채꽃과 제주시의 벚꽃, 카멜리아힐의 동백, 수국만 떠올렸는데 해바라기도 있었다. 때를 잘 맞춰 구경하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안덕계곡은 서일주도로 바로 옆에 있었는데 어떻게 계곡이 도로변에 있는지 신기했다. 작고 아담해보이지만 중간중간 물이 깊어지는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충만했던 1박2일을 뒤로 다른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17. 08. 06. - 07.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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