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기
[제주일기]
2017. 08. 17 - 18.
16. 한여름 밤의 우도
우도를 떠나온 지 일주일. 제주 어느 곳에 있든 우도가 떠올랐다. 제주 아니고 우도가 좋다던 그 사람. 그의 마음에 닿으려고 ‘그래, 우도가 가장 좋아’ 라고 답하지 않았던 나. 차라리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도 천진항에 도착해서 북서쪽으로 돌면서 여행을 시작했다. 넓게 펼쳐진 평야에 검은 흙과 파릇파릇 한창 자라고 있는 땅콩들.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밭. 사이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 담장에 올레길 표지가 달려있었다. 투박함 그대로 집 앞까지 연결되어있는 길. 나무로 엉성히 걸어둔 대문을 보니, 이것이 진정한 올레길 임을 알았다.
홍조단괴로 이루어진 새하얀 모래사장과 바다색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제주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바다. 참을 수가 없어 얼른 뛰어들었다. 구름 그림자가 물결에 떠가고 햇살이 반짝반짝 부서졌다. 물안경만으로도 잔뜩 보이는 물고기. 잡으려고 손을 뻗어봤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바닥에 깔린 홍조단괴들이 너무 예뻐서 해녀가 된 것처럼 줍기 시작했다. 엄청 커보였는데 손으로 건지니 작았다. 물속에 있어서 커보였던 것이다. 청명한 하늘과 흰 구름들. 보고도 믿기지 않는 풍경 속에 있었다. 하고수동 해변도 쪽빛 바다인데 좀 더 파랬다. 미묘하게 다른 바다색. 색의 이름을 너무도 모른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제주의 서쪽에만 비양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도의 동쪽에도 작은 섬 비양도가 있다. 두 섬이 만나 큰 만을 이루고 있는데 흰 모래가 만 가득히 깔려있다. 아쉬워야 또 온다는 생각으로 바다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원래는 들어가면 안 되는데.”
자정 무렵, 그가 가장 좋은 데를 보여준다며 우도등대로 데리고 갔다. 화산폭발로 솟아올라 깎아지는 단면으로 이루어진 검은 절벽. 검은 바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우도의 가장 높은 곳에 서니 세상 모든 것을 버리고 한 마리 새처럼 훌쩍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옆에 선 그의 눈에 해방감과 짜릿함 그리고 두려움이 일렁였다. 그의 감정일까 내 감정일까.
“이게 진짜 절벽이지.”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등대에 올라오기 전, 제주 남쪽의 박수기정과 외돌개 등등 절벽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그러게. 섬이 만들어낸 절벽의 높이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반대쪽으로는 우도 전경과 제주 본토가 보였다. 우도와 제주의 불빛들이 띠를 이루고 있었다. 우도의 불빛들, 바다 너머의 불빛들. 머리 위로 등대의 광선이 지나가고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지나갔다. 우도의 모든 아름다움을 집대성한 이곳. 음악을 들으며 오래도록 잠겨 있었다.
그가 처한 상황, 내가 처한 상황. 내가 우도에서 살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이상,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 그 사실을 둘 다 알아 그는 우도가 아름답다고 열심히 말했고 나는 말없이 웃었다. 알 수 없는 미래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 제주 어느 곳에 있든 우도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2017. 08. 17 - 18.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