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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매일이 조금은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나이에 숫자가 많아지고 있는중

by 문장 수집가

유퀴즈온더블럭 146화를 시청하고서 나의 40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세 번째 손님인 배우 윤여정 님께 했던 질문 중에 40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먹고 사느라 그때가 어땠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는 대답을 했는데, 50대를 넘기고 있는 나의 그때는 어떠했었는지 생각을 해 보았다. 나 역시 그때는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마무리하고 전업주부였던 나에게 운 좋게 30 중반에 아르바이트 제의와 함께 정식 직원까지 되어 2020년까지 직장 생활을 했다. 중간중간 이직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늦은 나이에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했던 나는 보폭을 맞추느라 남들보다 더 열심히 달려야 했다. 그런 나의 40대를 버티게 해 줬던 지원군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힘들 때마다 위로를 건네주었던 만화였다. 스트레스에서 잠시 도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가 되어 주었던 만화 사랑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나의 40대에는 세 가지 카테고리가 있는데 첫 번째가 아이들에게 남아있는 부채의식이다. 직장을 다녀야 했기에 그 당시 엄마의 빈자리에 대한 미안함은 아직도 다 풀지 못한 나의 숙제가 되었다. 두 번째는 도보여행이다. 시골이 고향이었던 나는 도시생활에서 멀미가 날 때마다 모임에 참여해서 운영진들이 안내하는 코스를 걸으면서 현실에서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다독이곤 했다. 나중에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포기했지만 그때 걸었던 문경새재의 풍경은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만화다. 만화는 나의 친구였고 스트레스를 달래주는 처방전이기도 했다. 첫 직장에서 내 나이가 많아 직원들이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한참 후에 반대를 했던 그 당사자들에게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젊은 친구들과 소통을 자연스럽게 했던 매개체는 바로 만화였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나는 다행히도 대화의 중심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런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그들과 즐거운 직장 생활을 했던 그때가 행복한 기억 중에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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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의 취미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바로 동네 책 대여점 주인이었다. 나중에 가게를 폐업할 때도 내가 좋아하던 작가의 책을 공짜로 주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책꽂이에는 나의 보물 중 하나인 원수연 작가의 '풀하우스'와 한승원 작가의 '열아홉의 메르헨', '노란 방 여자와 파란 방 남자'가 자리하고 있는 중이다. 풀하우스는 중간중간 번호에 이빨이 빠져있는데 친구들이 나 몰래 가져갔다고 양심 고백을 하기도 했다. 코로나가 찾아오기 전에는 만화카페에 가서 살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자의 반 타의 반 방문을 자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나에게 웹툰은 또 하나의 구세주이다. 드라마에서 방영되었던 웹툰은 신기하게도 다 한참 전에 읽었는데 가장 최근에 방영되었던 '그해 우리는'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한 경찰 작가의 웹툰이었다. 오래전에 스피릿 핑거스를 보다가 전작도 찾아보게 되고 모든 작품을 다 보게 되었다. 그림체도 이쁘고 채색이 수채화 같은 느낌이 들어 좋아했고 여전히 찾아보게 되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던 작품이 있는데 시니의 '죽음에 관하여'였다.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친구 딸내미와 한참을 열을 올리면서 공감대를 나누게 했던 작품이었다. 지금은 네이버의 구조가 더 편안하게 느껴져 다음 웹툰은 잘 찾아보지 않게 되었는데 다시 한번 도전을 해볼 예정이다. 다음 초창기에 보았던 '동물원에서 만나다'라는 웹툰은 만화책으로도 소장 중이다.


그리고 원피스 또한 열성 팬 중의 한 명이다. 그중에 루피 형인 '에이스'와 힌 수염 해적단 선장 '에드워드 뉴게이트'의 팬이기도 하다. '브룩'과 '쵸파' 또한 너무너무 좋아한다. 엄마의 원피스 사랑 덕분에 아이들의 여름방학은 원피스 시청을 위해 반납하기도 했는데 그런 아이들은 나에게 늘 고마운 존재들이다. 지금은 넷플릭스로 일본 애니를 많이 찾아서 보는 중인데 가장 최근에 '불꽃 소방대'를 보았다. 2015년에 시작해서 얼마 전에 완결이 났다는 자료를 보기도 했는데 애니로는 3기 제작 소식이 안 들린다. 그렇게 찾아보다가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까지 정주행 했는데 여주인공이 활기찬 캐릭터여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 '오다기리 조'와' 마즈시게 유타카' 등 익숙한 배우들도 보이고 일본에서의 만화가들의 일상을 조금 엿보기도 하고, 특유의 과장된 몸짓. 억양 등은 볼 때마다 신기하지만 적응을 하고 나니 그런가 보다 하면서 보게 되는 상황까지 되었다. 아마도 나의 만화 사랑은 나이를 떠나서 계속될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윤여정 배우의 40대에 대한 소재가 나의 만화 예찬론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50대의 지금이 좀 더 마음적으로 여유롭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마지막 직장을 퇴사하고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 시간이 지나니 모든 것이 즐거운 취미생활로 다가왔다. 4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시 치열했던 사회생활 안에서 그 에너지를 발산할 자신도 없다.


50대부터는 하나씩 정해놓았던 목표에 도전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올해 목표로 글 쓰는 플랫폼 '브런치' 승인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바람이 이루어졌다. 작년에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그 충격으로 아직도 헤매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그때의 기억이 그냥 슬픔으로 사라지는 게 싫어 '아버지는 부재중'이라는 투병일기로 첫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행히 글을 마무리했다. 잠시 동네 마실을 다녀오고 나서 글감을 얻어 올 예정이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 헛발질을 많이 하게 되지만 꾸준히 도전을 해보리라 조용히 다짐을 해본다. 이런 모습의 나, 평범한 매일이 조금은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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