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도시 골목 여행
벽화 마을과 다른 특이한 점은 골목마다 살아 있는 동네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놓고 벽화를 함께 그려 놓았다는 점이다.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벽에 기록으로 남겨 놓은 이야기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한 동네다.
벽화가 재미있다.
버스 정류장.
하루에 몇 대 안 다니는 버스를 기다리며 학생들이 모둠 모둠 서 있다. 그때 갑자기 총알처럼 한 남학생이 정류장 앞을 지나가고 그 모습을 본 남학생들이 어떻게든 같이 타고 가자고 소리를 치며 잡으려 하고 있다.
자전거가 귀하던 시절. 교통수단이 부족했기에 학생들은 주로 걷거나 아니면 뛰거나 했다.
버스가 와도 이미 늘 만원이어서 기다려도 버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때가 빈번했기 때문에 그냥 이른 시간에 걸어가거나 뛰어갔다.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은 가끔 자전거를 타고 멋지게 학교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지나가는 친구는 많아야 동네마다 한 두 명도 안 되었다.
택시부
1970년 초 김형식 님 외 택시 네다섯 대가 대기하던 장소였다. 70년대 관인은 1만 3천여 명의 주민이 있었으며 대기시간이 없을 정도로 택시들이 바삐 움직였다.
80년대 말 대한민국이 마이카 시대로 접어들면서 관인의 인구감소와 함께 내리 막 길을 걷게 되었다.
택시영업이 점차 줄어들며 마지막 운전기사님의 건강 악화로 인해 2020년을 끝으로 운행이 종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관인은 고령화에 의한 택시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발의 본좌. 이발 면도 명장.
본좌는 일반적으로 높은 권위나 위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어떤 분야에서 특별한 업적을 이룬 사람을 칭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발의 지존.
이발 면도의 명장. 간판이 눈에 확 띄었다.
관인 마을
궁예의 폭점에 못 이긴 어진 관리들이 관직을 버리고, 이 지역에 모여 살았다고 하여 관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궁예 (?~918년)
후삼국시대의 군웅이자 후고구려, 마진, 태봉의
유일한 국왕. 또한 한반도사에서 유일한 승려
출신의 군주다.
일개 떠돌이 승려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무력적 소양과 인심을 끌어들여 점차 세력을 불려 당시 한반도의 2/3를 평정하는 등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재위 말년에 가혹한 폭정을 실시했는데 오늘날의 정신건강의학으로 볼 때 각종 전쟁들과 정치들을 시행하면서 편집성 성격장애와 같은 정신병이 발병하였다.
망상, 환각, 의심 등의 행동 이상이 악화되면서 무자비한 폭군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잔인한 숙청과 독선적인 정치 철학에 염증을 느낀 왕건의 혁명으로 축출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