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노란 햇빛.

by 이븐도





스킨 앤 본, 스킨 앤 본. 무슨 노래일까 조금만 생각하면서 앉아 있었다. 옐로우였다. 콜드플레이 노래. 목소리가 패신저스와 제임스 블런트를 닮아 있었다. 긁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 공명이 있는 목소리.


해가 지는 일곱 시 반,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갈색으로 스치며 빛났다. 엄마가 여자애를 잡으러 뛰며 지나갔고 앉아 있던 커플이 일어나 떠났다. 가수는 노래가 끝나고 러시아인지 동유럽인지 모르겠는 억양으로 몇 마디를 더 했다. 사람들은 그 말에는 박수를 안 쳤다. 한 곡 더 하라는 뜻이지.






그의 노랫소리에는 사실 내내 그 맞은편 보도에서 예수님과 대한민국 영생구원을 외치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걸어가는 방향에는 사주 인 당 만원 푯말을 세워둔 아저씨가 한 커플 앞에 진지하게 앉아 있었다. 하얀 치마를 입은 사람들을 보는 게 좋았다.




투명하고 여린 양말, 은색 단화, 머리집게, 유니클로 콜라보 티셔츠, 포터 가방, 아티잔 베이커리 종이백, 외국인들. 붙는 상의, 긴 청바지, 주황색 쫀디기, 내가 이어폰을 찾으러 되짚어 걸어간 길에 있던 군것질거리 가게들.


감자칩, 고구마칩, 제니가 크게 걸린 탬버린즈, 진짜 미술관 옆 돈까스집인 미술관 옆 돈까스. 수박 주스, 그 안에서 정말 수박을 잔뜩 썰고 있는 부부, 알러지가 올라올 것 같이 진한 그 수박 냄새. 따뜻하게 뿌연 노을이 지는 길을 돌아 오설록, 현대미술관, 런던 베이글 뮤지엄 비닐백.

집에 가서 먹어도 그 맛일까. 아마 친구와 거기서 떨었던 수다와 웨이팅을 걸어 놓은 채 찍었던 포토이즘과 야, 저기 잘생긴 사람. 하던 이야기의 감칠맛은 빠져 있겠지.


기름진 호떡, 친구가 정말 맛있다며 좋아한 떡볶이집. 오래 됐다던 그 가게는 폐업해 있었고 주인이 들어가자마자 싫은 티를 냈던 특이한 옷가게는 아직 안 망하고 있었다. 8년 전에, 저런 데는 장사가 될까 생각했던 그 액세서리 가게는 그대로였다. 사람이 꽤 있었다. 한옥 배스킨라빈스에는 내가 두 번을 지나치는 내내 똑같은 애들이 앉아 있었다.




걸쳤던 셔츠를 벗어 들고 다녔다. 그 길거리 가수의 노래를 듣고 햇빛 속의 사람들과 가게를 보며 걸었다. 이어폰을 끼려고 했는데 그걸 남방 주머니에 넣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당연히 없었다. 이십 만원. 이십 만원도 이십 만원인데 왜 나는 늘 이런 식인지 알 수 없어 짜증이 났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랬다. 딴생각에 이렇게나 깊게 몰입하다니. 이십 만원이라.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짚어 걸었다. 차가 사람들 사이로 몇 대 지나갔다. 떨어져 있었더라도 아그작 박살났을 것 같았다. 두 개 중 한 쪽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신발을 사러 향한 루트에 앉아 있던, 석양에 노랗게 빛나는 사람들을 그대로 다시 지나쳤다. 없었다. 내가 그렇지, 뭐.




또다시 도착한 리 초입에 앉아 그 국적을 알 수 없는 가수의 노래를 들었다. 백 명이 지나가면 아마 열 명은 노을 앞의 그가 선 풍경을 찍고 지나갔고, 스무 명은 한 번쯤 앉았으며, 다섯 명은 오 분을 채 앉아 있지 않고 떠났다. 저 사람은 노래가 좋아서 할까. 마나 좋은 걸까.

아무 동행이 없던 나는 그대로 오랜 관객이 되었다. 이건 이십 만원짜리 공연이다, 하면서. 는 농담이고, 그냥 앉아 있었다. 근데 반은 농담이고 반은 찐이지. 내 이십 만원.






윗팔, 겨드랑이, 얼굴, 상체, 발등으로 바람이 불었다. 이 정도면 금빛 바람인가. 해는 생각보다 오래 졌다. 즐거운 사람들이 많았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사실 더 있었다. 노부부가 뽀뽀하는 벽화 앞에 선 그는 한국인이었다. 들리는 가사가 별로 반갑지 않아서 그 앞은 그냥 지나쳤다. 그래도 그 앞에도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광장으로 나왔을 때는 저편에서 재즈 공연을 하고 있었다. 딱 일 년 전처럼, 알록달록하게 작은 구슬이 가득 들었을 커다란 쿠션들이 모여 있었다. 핑크, 하늘색, 또 핑크, 보라색의 빈백에 사람들이 눕거나 앉아 있었다. 그보다 더 강하게 기억났던 건 진행 요원들이 테니스 라켓 같은 전기 모기채로 벌레들을 끊임없이 타닥거리며 처리하는 소리였다. 올해도 그랬다. 날개가 엄청 큰 나방들이 듬성듬성 비치되어 있던 책장의 책만큼이나 많았다.


거기서도 노래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작년에는 거기 서서 어떤 여자 가수가 샹송을 부르는 걸 들었다. 라따뚜이에 나온 노래였던 것 같았는데 좋아서 영상을 찍었던 게 떠올랐다.





당연하게도 이어폰을 찾지 못한 채 돌아왔다. 6월은 생각보다 예쁜 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햇빛이 강했고, 지나치게 습하지는 않은 것 같았고, 사람들이 그래도 웃으면서 돌아다녔다. 일 년에 한 번인 6월이 지나려고 했다. 내년에도 6월이 오겠지? 나는 꽤 햇빛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잃어버려도 하필 그걸 잃어버려서. 집에는 미처 가방에 넣지 못한 이어폰 크래들만 남아 있다. 대체 이런 식으로 몇 개의 이어폰들을 다시 샀던가. 장마라고 설레발을 쳐댔지만 사실은 장마가 아니었던 비가 며칠 전에 와서인지, 밤이 되어도 시원했다. 매년 돌아오는 계절이고 달이었고 매번 갔던 곳이지만 다르게 예쁘구나.




병원이 아니라도,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이런 걸 보고 평안을 느끼며 살 수 있을까, 하는 뻔한 질문을 했다. 그 정도로 좋았나 보다. 이어폰을 그렇게 다 떨구고 잃어버렸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