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9.
시작은 동기의 집 구하기였다. 나보다 1년 반은 늦게 입사한 동기가 자취를 시작하려 했다. 단톡방에는 엄청난 양의 카톡이 쌓여 있었다. 환자 얘기, 수선생님 얘기, 소개팅 얘기, 콘서트 얘기. 이것저것. 그리고 지역과 매물과 집주인과 계약과 대출 이야기. 금액이 잊히지 않았다.
아. 얘는 나보다 더 모았구나. 나보다 얼마나 늦게 들어왔더라, 얘가? 1년 반. 엄마아빠에게 차라리 보관을 맡긴 금액과 내가 저축하고 있는 금액, 어쩌면 이 오피스텔 보증금까지 더해도 압도적으로 많을 액수.
열등감이나 우위 의식에서 비롯한 패배감이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한 일. 내가 견딘 것. 견딘다고 생각하지 못했으나 돌아보니 견딘 것. 다른 직장인들이 일하는 양상. 오프 날들, 그 속은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점심 시간이면 몰려서 점심을 먹으러 다니던 그들이 신기했다. 저러고 힘들다고들 하는구나.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를 그들이 얄미웠고, 그들이 힘듦과 내 힘듦이 같은 단어로 표현되는 게 몹시 기분이 나빴다. 내가 내 손으로 지원서를 쓰고 들어와 내 얼굴이 박힌 사원증을 달고서 하는 노동. 어디 붙잡혀 있던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싫었다.
나는 내 삶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변명하지 않으려 했고, 탓하지 않으려 했다. 취업률? 학과? 경쟁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모든 것을 피해 안전하고 더러운 선택을 스스로 했으니까. 역겹게도 이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내게 남은 유일한 깡이었고 바닥이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게 아니면. 나 대신 출근해 줄 게 아니라면.
나는 이 일이 싫었다. 몹시 싫었다. 좋아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별달리 능력이 없는 주제에 그 월급과 복지를 주며 나를 써줄 곳은 없어 보여서 감사하게 일했다. 정말이었고, 정말이다. 나는 아직도 퇴사하는 꿈은 못 꾼다.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에.
끊이지 않는 전화벨 소리도 싫었고, 데일밴드를 찾아서 꺼내주는 것부터 1단위라도 틀리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터지는 약물을 주입하는 것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와중에, 검사실에서, 의사들이, 영양실 직원이 나를 이리저리 찾아대는 게 질릴 정도로 싫었다. 정말 너무 싫었다. 도량이 작은 내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똑같이 번 돈, 그 동기는 나의 배는 되는 금액을 모았다.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었다.
아이돌 콘서트를 가고, 쓸데없는 것을 사면서 스트레스를 돈 쓰는 걸로 풀었다고. 하지만 그 비용을 대강 더해 봐도, 그 차이를 메우지는 못했다.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까.
2천만원. 내가 내 손으로 인출해 보이스피싱범에게 건넨 2천만원. 6개월이 지났고 이제서야 역풍이 오나 생각했다. 큰 금액이라는 걸 알았다. 정말 큰 금액이었다. 슬프지 않았고 아팠다. 나는 이 일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버거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서 온 더께를 빨리 떨쳐내지도 못했다. 오래 끌고, 오래 품는 스스로를 다른 동기들과 비교하며 자책했다. 한심했거든. 세상에서 나만 이 일을 하는 사람인 것처럼 구는 스스로가 싫었다. 어찌되었건 그렇게 번 돈이었다. 이런저런 사연을 붙이지 않아도 큰 돈이었다.
3년 반 가량을 일해서 모은 돈이 이 정도라는 사실이 나를 아프게 했다. 이제야 충격이었다. 작은 인형들? 아이돌 덕질? 공항이며 해외 스케줄을 비싼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닌 것도, 똑같은 앨범 몇백 장을 주문해 팬사인회를 다닌 것도 아니었다. 키링들? 많아 봐야 거기서 거기였다. 나는 수납박스를 가득 채운 그것들을 보며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정작 구멍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
병원은 특이한 곳이었다. 죽고 싶어 하는 멀쩡한 인간들과, 멀쩡히 살길 바라는 비참한 몰골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전자는 주로 청소년들이었다. 내가 일하는 부서가 그랬으므로. 중요한 일이 있다며 부라린 눈을 한 채, 집에 가겠다며 반 협박조로 말을 하던 남자애를 보며 생각했다. 니 중요한 일이 뭔지 아무도 관심 없는데 혼자 왜 이렇게 열을 내니. 정말이었다. 그 용건이 뭐건 간에 그 친구는 입원해 검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손목을 그은 자국, 가방에서 나오는 수상한 주사기들, 구태여 긁어 염증을 더 만들어낸 상처들. 나는 그들이 못내 한심했다. 죽을 거면 제대로 했어야지. 쌩쇼였다. 세상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다. 개개인의 사연들을 다 들어줄 정도로.
그리고 나는, 엉망이 되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살았다. 어디서나 그랬다. 멀쩡하게 걷는, 주말이나 한가로운 오후의 사람들을 보면 안 아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연령대를 가리지 않았다. 애, 노인, 중년, 젊은 사람들, 갓난애들. 저렇게 웃다가도, 언제 다시 기저귀를 차고, 내장이나 신경에 문제가 생겨 바보 또는 불수가 될지 모르는 게 삶이었다. 나는 그런 게 두려워 조금이라도 멀쩡할 때 멀쩡히 살고 싶었다. 실상은 출퇴근밖에 없었지만. 그래서 매일이 극한이었다.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피곤해도, 졸려도, 아파도, 나는 상대적으로 멀쩡하고 건강했으니까 가만히 있을 여유는 없었다. 언제 저렇게 될 지 몰랐으니까.
오프라인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글을 쓰는, 그러니까 별 것도 아닌 일을 부풀려 기록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그런 것인지,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글을 쓰게 되는 것인지, 1년간 본 브런치에는 죽음과 우울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글이 참 많이도 보였다. 다들 꽤나 죽고 싶어 했거나, 죽고 싶어 하는구나, 생각했다. 아니면 그게, 또는 그런 걸 암시하는 제목이 이목을 끌 거라는 걸 얕게나마 계산한 건지도 몰랐다.
나는 그 중 다수가 우스웠다. 뭘 좋아하려고, 애착을 가지려 애써 보기나 한 건가 싶어서. 울기만 하고 있는 글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정말 웃기게도. 원래 남의 웃음보다는 눈물이 소비하기 쉬운 거잖아. 이걸 쓴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마음을 붙이려면 좋아할 것들이, 미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 역시 알고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 마음을 꺼버리는 순간 그 무대는 그냥 사라진다는 거니까. 나는 내가 비웃어 오던 그 절대 다수를 이해하게 될까봐 무서웠다. 삶의 의미가 어쩌고 하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 이대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가 아니었다. 못해도 3년. 모은 돈. 사라진 금액. 나에게 남은 것? 그러면, 앞으로도 이렇게 살면 나한테는 뭐가 주어지는 걸까. 그러자 그만 살고 싶어졌다. 내게 한심했던 그들처럼.
내가 아프다는 것, 힘들다는 걸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정말 문제였다. 그만 살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기대되는 게 없었고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세상엔 공짜가 없는걸.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다 내가 가진 선에서 내보여야 하는 거였다. 언제나 한계가 있었고 얻으려면 잃는 게 있어야 했다. 그리고 돈. 한계선 자체가 푹 꺼져 사라진 거였다. 왜 이제야 이렇게 보였을까. 어쩌면 그 반 년간은 내가 또다른 방식으로 외면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늘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었으므로. 그리고 이건 괜찮지 않았다. 어쩌면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그냥 그런 사실이었다. 없어졌다는 것. 그 고생을 해서, 억하심정과 분노가 남은 정신과 등가교환한 그 금액이 숭덩 사라진 것. 똑같은 고생을 한 남들보다 훨씬 뒷자리로 밀려난 것. 경쟁심이 많았던 적이 없었고 내가 가지려 노력하지 않은 것을 비교하려 들지 않았다. 이를테면 부모나 환경을 진지하게 부러워한 적은 없었다. 나는 그것을 가지려고 노력한 적 없었으므로. 그러나, 내가 내 것을 내주고 돌려받은, 남들도 똑같이 환산해 받은 그게 사라졌다는 것을 이제야 인지했다. 그러자 죽고 싶었다. 그런 고통을 원했다기보다 이 삶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방법이 필요했다. 초반에 나는 공연을 보고 돈을 쓰고 바쁜 일상에 그 일의 충격을 잊었다. 그러나 잊는다고 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반말과 모멸감과 무시의 카오스 속에서 돈 때문에 앉아 있었으며, 퇴근해서는 이래저래 더 의지가 강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며 살고 있었으니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더 만들어낼 힘이 없었다. 이유는, 의미는 언제나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였다. 이제는 없었다.
유튜브에 검색했다. 이런저런 명사들이 해 놓은 강연들이 많겠지. 죽고 싶을 때 해야 하는 행동. 그러자 혼자가 아니니 어딘가로 도움을 요청하라는 문구가 떴다. 아, 이런 거군. 나는 정말 해결책을 찾은 건데, 이런 게 아닌데. 그리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아, 나는 죽고 싶어 하는 인간들 중 하나가 되었구나. 그들이 한심한 이유는 명확했다.
한 개인의 인생은 스스로 죽고 살고를 논할 만큼 중요한 적이 없었다. 구태여 그걸 그렇게 손에 쥐고 흔들고 싶나 생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의식으로만 가득찬 그 선택이 우스웠다. 그렇게나 본인의 아픔이 소중했고, 무거웠구나. 그냥 털고 잊으면 될 것을 그렇게나 끌어안고 있었구나. 한심하군.
그리고 내가 그러고 있었다. 슬펐다. 사실을 잊지 못하는, 아직도 못 받아들인 것 같은 스스로가 몹시 싫은 동시에 그 사실이 아팠다. 이래서 다들 그랬나 생각했다. 그 청소년 환자들이 떠올랐다. 제대로 죽을 방법은 모르면서 그만큼 열심히 살 의지도, 용기도 없어 보인, 땡깡을 부리는 몸만 큰 어린애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은 차갑다고 느꼈거든. 그런 시위 아닌 시위를 품어 줄 세상 같은 덴 아무데도 없었다. 그들은 절대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렇게나 들어맞을 수 있는지, 사직 의사를 밝히고, 수간호사부터 이어질 줄줄이의 면담을 진행하는 동안 퇴사 의지를 굳히고, 집을 정리하고, 다른 것을 개척할 용기? 나한테도 없었다. 그들 앞에서 돌아서 삼켰던 말들이 모조리 떠올랐다. 너도 귀찮구나. 그러게, 삶이 그냥 귀찮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방법을 꽤나 잘 알았다. 생각보다 더 자세하고 교묘한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