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결혼 준비에 필요한 거?

X and Y

by 이븐도




CASE / X


일단 만나야 할 거 아니야.


모 화장품 회사의 유튜브 촬영이 화요일마다 있는 것 같았다.

10월에는 나주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한다고 기사가 났다. 일단은 두 가지가 확실하다.




1. 납치


좀더 돈을 쓴다면 당장 남아 있는 해외투어 일정이 있다. 어디더라, 아직 일본 거 남았나? 방콕이었나? 음. 그런데 한국어 쓰는 여기도 아닌 마당에 외국까지 가서.. 뭐라 해야 해, 이걸? 납치? 흠. 납치라.


그분은 정말 얼굴이 작고 정말 마른 사람 같았지만 그 때 공연장에서 지나가듯 말했던 몸무게로 미루어 보아 섣불리 납치를 시도했다가는 내가 메치기부터 당할 확률이 높았다. 거기다 아마 체지방률이 미친듯이 낮은 근육질의 몸. 애초에 계산을 하고 말 것도 없이 안 될 게임이었다. 팔씨름도 내가 못 이길 것 같은데. 아무리 삐쩍 마른 아이돌이라지만, 사진에서 보이던 알통과 복근을 떠올려 보라고. 그거 폼 아닐걸? 무릎 봤지, 장난 아냐. 안 돼, 이건.


그러니까 납치는 제껴야 한다.

가장 쉬운 방식이긴 하지만. 내가 서장훈 최홍만이라면.





2. 근접한 접근 - 팬으로서?


멤버들은 한 달에 한 번은 유튜브 등지에서 단체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다. 그 때가 아니더라도 예정된 라이브 방송을 할 때면 간혹 '언제끝나 빨리끝내' 같은 댓글이 달릴 때가 있었다. 왜지? 간간이 의아했었다. 외국인인가? 그거 다 사생들이잖아요, 하고 언니가 알려줬다. 네? 사생요? 왜요? 그게 끝나야 자기들이 보니까. 회사 밖에서 엄청 기다려요. 어어 사옥에 모여서 하는 거라서. 아, 아니. 그 정도로 사생이 있어요? 네. 엄청 있어요. 이번에 공항에서도 엄청 붙었어요. 멤버들이 티를 안 내서 그렇지.


이 연차에도요? 이 계정, 그 사람 엄청 사생이예요. 어라운드어스에서 팬클럽 퇴출시키는 거 처음 봤는데 아마 명단에 이 아이디가 이 사람일걸요? 헐. 대단하다, 진짜.




그는 종종, 아니. 꽤 자주 맨날 똑같은 대교에서 찍은 것 같은 하늘 사진과 정말 그보다 더 똑같은 것 같은 한강 어딘가의 구름이나 노을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다. 개인 팬이 극성인 것으로 꼽히는 다른 멤버는 그런 사진을 올렸다가 러닝을 하는 코스가 전부 털렸다. 당연히 나는 그의 지인도 동네 주민도 아니니 알 길이 없지.


다만, 손 흔드시는 것도 사진 찍으시는 것도 좋은데 갑자기 튀어나오시거나, 사진 요청을 하시는 건 자제해 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이 적힌 게시물이 SNS에 올라왔다. 본인이 그런 몰골로 사진을 찍어 드릴 수는 없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당황스러웠다. 그렇게까지 한다고? 그건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야. 한강에 뛸 만한 데가 한두 곳도 아니고. 아니지. 집이랑 동네 다 아니까 그건 어렵지도 않겠구나. 근데, 그럼 혼자 달리기하는 걸 계속 기다리다가 거기서 뛰쳐나가는 거야? 저기 멀리서 오고 있으면? 하참, 나.


그러니까 어떤 동선들은 추측하기 쉬웠고 조금만 더 알고자 한다면 모를 것도 없었다. 아마 어떤 팬들은 개인 승용차 번호며 사는 아파트 동호수마저 애저녁에 알고 있을 거였다. 흠. 그렇게 대기하다가 마주치는 거..? 근데 그건 마주치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뭐랄까. 음.


아무튼 아니었다. 결혼은 이런 루트로는 좀 그랬다.

그렇잖아? 이건 스토킹이라고. 범죄.





3. 정상적인 팬 / 근접한 접근 - 팬이 아닌 새로운.. 인연?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숨 한 번 참고 쓴다. 그러니까, 팬사인회라 쓰고 똑같은앨범수백장사서오빠얼굴한번보는뽑기, 라 읽는 것. 후하.


컴백이 다가오자 정작 노래는 들어보기도 전부터 트위터에 올라오는, 그 박스째로 도착한 예약구매 앨범 사진들. 저걸 대체 왜 저만큼? 아. 팬싸. 근데 저렇게 사면 가요? 사람들 엄청 사네요, 의외로? 가는 사람만 가요. 완전 고인물 밭. 그래서 새로운 팬 오면 다 알아본다잖아요. 아.. 하긴 월급이든 빚이든 그냥 재산이든 저 정도를 매번 부을 수 있을 정도라면 보통은 아닐 것 같긴 했다. 와, 근데 몇 장이야. 저게 다. 이번에 컷 올랐어요오 누구 그룹이 몇 장이고 어디가 몇 장인데 이 연차에 이 정도인 팀 없을걸요. 근데 산다고 백퍼 당첨도 아니고. 아하. 그렇네요.


놀라운 세계였다. CD. 요즘 세상에 아직도 씨디 버전? 생각해 보니 요즘도 아니다. 나 대학 간다고 샀던 노트북에도 씨디롬은 없었다. 사봤자 들을 데도 없다고. 저거 다 어디다 어떻게 버리냐. 말이 처분이지 버려야 할 거 아냐. 사람 얼굴 저렇게 잔뜩 찍힌 거 길바닥에 그냥 버리기도 좀 뭐할 텐데, 아닌가. 하여간 이런저런 종류의 팬싸인회, 어쩌면 가장 정상적으로 스타를 만날 수 있는 자리였으나, 과연 나한테 정상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잔고에 비정상이야. 그래서 기각.




새로운 인연-그런데 팬이 아닌 버전으로? 승영언니는 소속사 하는 꼬라지를 항상 못미더워했다. 어어 일 안 해요, 진짜 안 해요. 큐브에서 고인물들 데려와서. 저 어어 취직이 꿈이잖아용, 했다.


소속사가 일을 얼마나 대충 하는지 실상은 알 수 없었으나 이상하게 나는 언제부턴가 거기서 갈려나갈 말단 직원들이 안타까웠다. 자막을 틀리게 달든, 공지에 오타가 있든 뭐 그게 그리 큰일인가. 대충 하십쇼, 아니. 대충은 아니고 그게 최선이셨겠지만 그냥 돈 받으시는 만큼 하는 거지 뭐.. 그런 거 아닐까? 주는 만큼 하는거지. 하하. 꼬우면 지들이 사람 더 쓰든가 돈을 더 줄 거라고. 그게 아니니까 애초에 두 명 세 명이 해야 했을 일 한 명이 하고 그러는 거잖아. 뭐하러 더 해.



아무튼, 결혼해야 한다고. 일단 거기 취직해서 그냥 수선생님 방에 박스째로 쌓인 네임펜 갖다 쓰는 빈도만큼 그들의 맨얼굴을 보고 뭐 피곤하고 귀찮은 일들을 떠안다 보면 연이 생길까? 엔터사 취직? 근데 누가 취직시켜 준대?

음. 어떻게 된다고 하자. 그냥 이런거 저런거 다 어떻게 커버쳐서, 아예 다른 업계에서 이직하느라 경력도 경험도 일천한 건.. 음. 3교대 근무를 하며 웬만한 업무강도와 스트레스에는 타격을 입지 않는 내구성을 단련했다,는 식으로 어필해 보는 거야. 그렇게 취직?


하면, 만에 하나 그러다가, 정말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들이 은퇴해 버리면? 그리고 이렇게 취직하려면 당장 내일 사직서 써야 해. 이 사람들.. 말로는 90살 먹어도 쇼크 춘다고 했지만 그게 가능하냐고. 올해 당장 서른 여섯, 일곱이라니까? 아, 쉽지 않은데. 흠.


대체 어떻게 만나냐.






CASE / Y


퇴원을 당일에 하는 경우가 있다. 당일에 한다기보다는 아침에 처방이 우다다다다 나서 외래를 잡고 필요서류를 준비하고 퇴원약을 올려받고 처방이 나 있었지만 시행 안 하거나 못 한 검사를 전산으로 반납하고, 그 모든 처리를 심사팀에서 완료한 후 정말로 집에 가버리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오전 서너 시간 또는 오후까지 대여섯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많다. 혈액종양내과에서 그렇게 자주 시킨다. 왜들 그러는지 알 수 없다. 일단 집에 잠깐이라도 다녀오라는 은혜 같은 것으로 추측은 하지만 그냥 결론은 교수 맘이겠지.


하여간 그러다 보면 정말 부득이하게,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미처 반납을 못 넣는 약이 생긴다. 있는지도 몰랐는데 일주일쯤 지나서 어, 얘 집 갔죠? 하면서 카트 밑 어디선가 나오는 약들. 그러면 안 되지만 그런 일들이 생긴다. 진료과 특성상 전해질 관련 약도 많다.




앰플에 든 A 약물을 주사기에 그대로 옮겨 혈관에 그대로 주입하면 의료사고다. 병원에서는 그걸 적신호 사고라고 분류할 것이다. 실제로 사람은 사망하거나 사망에 준하는 상태가 될 거고 온 병원이 들썩이겠지. 꼭 필요한 약물이지만 그런 방법으로 줬다가는 치명적이라는 뜻이다. 뭐, 들리는 말로는 혈관이 타는 듯이 아프다고 한다. 안 맞아봐서 모른다.


약은 도처에 굴러니지만 혼자 정맥주사 루트를 확보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 IV 좀 잡아줘, 속 메스꺼워. 하고 누가 술을 잔뜩 먹고 온 다음날인가 수액을 달고 일한 적이 있다. 서당개 3년.. 아니지. 요샛말로는 뭐라 해야 하냐, 돈룩업 3년이면 천장에 붙어서도 사진을? 아니야. 아무튼 병동 짬 3년이면 내가 내 몸에 정맥주입로 확보는 못 해도 그걸 해 줄 동료는 생긴다.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러고 그냥 집에 와버리는 거지.




아플 게 걱정되면? 역시나, 흔해빠져 남아도는 B약을 가져온다. 그거 콧구멍으로 주입하는 기구를 지하 어딘가에서 어떻게 구매해 오시라는 건 내가 일주일에 스무 번은 더 하는 안내인걸. 그 정도야 내 돈으로 사면 된다. 그리고 집으로 와. 팔에는, 아니면 뭐. 굳이 그렇다면 다리에는 정맥주입로와 두 가지 약물. 내 몸무게를 고려한 적정 용량을 솔찬히 계산해서. 그러면? A는 서맥을 유도할 거고, B는 산소포화도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그 두 가지가 합해진다면? 잘은 모른다. 상상하는 거지. 꽤 정확한 상상. 데이터는 구글에도 약학정보원에도 내가 보고 들어온 것에도 넘치는걸.






X의 경우? 그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를 만나야 했다.

Y의 경우. 그만 살기 위해서는 일단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또 허겁지겁 퇴원을 할 테니까. 정말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X의 경우 준비가 곧 과정이었고 실행이나 다름없었다. 진로, 항로 뭐 하여간 길 자를 갖다붙일 수 있는 모든 인생의 루트를 다 틀어야 했다. 항공료? 사생들이 흘리는 정보? 정말 병원 때려치우고 지원서 써? 화요일 촬영? 블라인드 가입해서 한국콜마 이름 달고 있는 사람 아무나한테 다음 촬영지 아냐고 말 걸어봐?

아니면, 당장 될 때마다 그 한강 러닝 코스까지 원정이라도 가? 사생 말고 진짜 그냥 시민인 것처럼. 근데 잘도 되겠다. 5킬로미터 20분 안에 뛰는 사람인데. 말이나 붙이겠냐.


아니면 정말 그 나주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라도 해? 42km짜리 풀코스면 뭐 어떡하게? 홍보대사로 나오는지 진짜 출전인지는 알아?어떻게 보나 손실뿐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성공한다면 뭐.. 해피엔딩이긴 해. 물론 그와 내가 한 프레임 안에 있는 좀, 꽤나, 다분히 불경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아무튼 결혼이잖아? 어떻게든 결혼했다는 건 좋은 거야. 정말 엄청난 우여곡절 끝에 한 거겠지.




Y의 준비는 어렵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성공했어도, 실패했어도 뒤탈이 컸다. 성공할 경우, 나의 엄마와 아빠는 어떡해. 동생은 어떡해. 뒤집어질 병동과 공범 또는 범죄 방조자가 될 그 누군가는? 알아서 산다 치자. 어쨌든 부모님이 남는다. 어떻게 살아, 둘은.


실패의 경우? 우주대폭망이지. 2천만원을 잃은 것보다 더 무거운 인생이 남아 있었다. 쑥대밭이 될 직장. 아니, 잘릴 테니 직장은 아닐 거고, 덮으려 애쓰겠지만 병원은 뉴스에 잔뜩 오르내릴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늘상 보며 두려워하던 모습의 누군가들처럼 변한 내가 엄마나 아빠의 병간호를 받으며 대전 어딘가의 병원에 누워 있겠지. 씨발. 뭐, 좀 생생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더니, 성공도, 실패도 그냥 입이 쓰다.




그만 산다는 것도, 최애와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얼마든지 더 세세하게 짤 수 있었다. 의지랑 시간 있으면 뭐 못할 건 없지. 결과는 어느 쪽도 보장할 수 없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실현 가능성이 0에 수렴하다는 것.

손에 칼을 쥔 채 머릿속으로 엉터리 칼춤을 췄다. 배가 고파 나자빠졌지만 직 흉기는 남아 있다. 이건 특수폐기물인가? 의료폐기물은 따로 버려야 되는데. 하핫.






브런치 연재는 30회를 채우도록 되어 있다.

나는 최애와 결혼할 것이다. 그만 살거나. 어차피 이뤄지지 않을 일들. 지겨운 인생. 언제나 자생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자생이 아니고, 그냥 생이다.

28가지의 즐거운 일들을 찾을 것이다. 스타와의 결혼도 자살도 아닌 어떤 일들을. 죽을 각오로 살라고 그 애들에게 속으로 떠든 내게 온 역풍이다.


결혼? 죽음? 사실 나는 늘 똑같은 일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살며 똑같은 방식으로 기록했다.

이 연재는 이름만 바꾼 나의 또다른 일기장이다. 다만 더 별 것 아니고, 반드시 즐거워야 하는 일들만 기록될 수 있는.



마치 그 아이돌과의 결혼을 위한 대장정처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