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종료

언제까지 / 이렇게 / 살아

by 이븐도






진짜 여행이 끝났다.

집에도 갔다오고 빨래도 하고 캐리어도 닦고 쓰레기도 버리고. 더 할 게 없다. 다음 달 카드값 결제만 빼면.





솔직히 여행이라는 단어가 싫었다. 기만이잖아. 그 뒤에 붙는 수식어나 설명은 다 불필요했다. 이미 여행,이라는 단어며 활동 자체가 럭셔리인걸. 의무도 책임도 없는 이방인으로 돈만 쓰면서 떠도는 게 즐겁지 않으면 어떡해. 뭘 발견하고, 찾고, 느끼고.. 당연히 그래야지. 들인 게 얼만데.


상거지꼴로 다니며 최소한의 비용만을 쓰겠다는 계획은 인천공항에서부터 깨졌다. 그 이후로 소비를 붙들어 맸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해독도 못 하는 책을 몇 권씩에 그 나라 캐릭터도 아닌 인형 키링을 사느라 이십 만원은 썼다. 기분에 취해 오는 길 면세점에서 엄마 가방까지 결제한 것도 추가.




본가에 갔다. 별 거 아닌 과자들을 좀 풀어놓은 다음에 그 주전부리들만큼이나 별 거 아닌 이야기들을 떠들다가 뭘 먹고 먹고 낮잠을 자고 또 먹은 다음에 방탄소년단 무대를 넷플릭스로 봤다. 화문 한복판.

왜, 팬이야? 했더니 트렌드니까 봐야 한다고 했다. 엄마, 이미 정점 찍었는데 저게 어떻게 트렌드야. 라고 해도 씨알도 안 먹혔다. 대학생 때 그들의 팬이었다. 6개월쯤. 이 곡은 이 무대가 쩌는데, 하는 오지랖을 못 버리고 유튜브로 그들의 레전드 무대를 몇 개 나란히 관람했다.


80개 공연이 다 매진됐대, 라고 아빠가 그랬다. 그럼 대체 앞으로 돈을 얼마나 더 번다는 거지. 이미 존재하지 않는 돈까지도 다 끌어모아서 버는 거야? 감도 안 왔다. 그들 재산을 다 합치면 서울 한 동 땅 정도는 우습게 살 수 있을까.




아빠는 그들의 무대를 보고 댄서들 쫙 깔리는 게 마이클잭슨 거랑 비슷하다고 했다. 그 사람 얼굴이 원래 저렇게 생겼던가 싶었던 빌리진과 빗잇에 이어 뭔 괴물이 등장한 스릴러를 거쳐 사이먼 앤 가펑클 라이브 영상까지 보며 때 아닌 추억 소환을 했다. 아빠가 이를 닦으러 들어가서 에드 시런의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얼굴에 허연 칠을 한 뱀파이어가 된 그를 보다가 노엘 갤러거 라이브 영상을 검색한 후 결국 하이라이트 무대 영상으로 회귀했다. 큰 화면으로 보니 너무 좋았다.


아빠 아빠 저 사람 노래 진짜 잘하지 어? 진짜 잘하지 않아? 하는 나를 보고 아빠는 저런 티비 얼마 안 하니까 하나 사서 놓고 봐,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즐겁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여권과 항공권의 영문 이름이 달랐던 탓에 입국 날에도 공항에 일찍 가야 했다. 생각보다는 시간이 얼마 안 걸렸다. 카페 앞에 앉아서 사 온 책들 중 하나를 폈다. 내가 20대 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의 대만 버전. 아마 좀 매운맛. 다른 나라 애들은 어떤 잔소리를 듣고 사나 궁금했다. 얼마나 꼰대 같은 말들이 적혀 있을지 삐뚠 마음으로 쳐다본 페이지의 영문.


인생은 같은 교훈을 다른 모습으로 계속해서 가져온다고, 내가 그 뜻을 진짜로 알아먹을 때까지.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코가 좀 찡했다. 무슨 교훈? 교훈?






며칠간 나는 해결하고 무마해 주던 사람에서 과제를 던져 주는 사람이 되었다. 항공사 말단 서비스직들의 얼굴에서 지겨움과 피로를 느꼈다. 출국 전, 아직은 공항이 붐비지 않던 시간대. 그들의 표정에서 긴장과 환멸 같은 걸 읽었다. 읽기만 했다. 그러니까 그냥 내 해석.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거기서도 생각했다. 난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답 없는 미래, 지겨운 컴플레인, 쳐내야만 하는 일들.

어떤 성과도 지표도 안 되는 의미 없는 과제들. 아우성을 잠재우고 표정을 살핀 후에 넙죽 사과도 하고 이런저런 상대의 톤에 힘껏 맞추는 데 쓰는 에너지. 캐리어를 끌고 여권을 손에 들었는데도 그 질문을 떠올렸다. 떠오르는 걸 어떡해.




굳이 남의 나라 병원까지 가본 건, 내가 느끼는 게 보편적인 건지 유난인지 알고 싶어서. 알 수 없었다. 아마 그들도 비슷하게 시간에 쪼들리고 힘들겠지만 역시 바깥에서는 그래 보이지 않았다. 한 환자가 그랬었다. 간호사 언니들 하는 일이 많으시네, 하고. 나는 그 말이 그 때 엄청나게 짜증이 났지만 바빴고 사실은 딱히 대거리를 할 건덕지도 못 됐다. 그래도 종종 생각났다. 그럼 내가 놀고먹으며 돈을 벌진 않을 텐데 이 일은 대체 뭘까 싶었다. 그런 날들이 쌓였다.


원래도 못된 성질에 그랬지만 갈수록 내가 어그러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넘길 만한 말들을 곱씹어 생각했고 장면들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인데 자꾸만 두려워졌다. 이렇게 해서, 얼마나, 언제까지, 왜, 또 왜, 왜 나한테만, 왜 이 일만, 또 다시 언제까지, 같은 생각의 굴레를 도느라. 왜 나한테만 그러냐며 빽빽 우는 일곱 살 애처럼.




비행기. 세 시였던 휴대폰 시계가 네 시로 바뀌고, 상단에 원래의 통신사 로고가 보이자 제일 먼저 받은 카톡. 하루 전 친구와 하던 카톡의 답장. 환자 바이탈이 처져서 바쁜 거? 괜찮아. 근데, 이전 입원 초진기록에 의사 코사인이 안 들어가 보호자가 난리친 거? 그게 왜 내가 바쁠 이유가 되냐는 말. 뭐가 널 또 괴롭히냐는 말에 하루를 꽉 채워 온 답이었다.


비행기 창문 바깥의 대한항공 여객기며 아직은 황량한 한국 풍경보다 더 현실감이 들었다. 아. 그렇지. 간호사. 그러게. 굳이 대학씩이나 나와서 학위를 받을 필요보다는 그냥 인간방패가 되는 훈련이나 좀 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아니면 교대근무에 약 없이도 잠을 훌떡훌떡 자는 트레이닝이나.






그러니까 사실은 여행을 다녀와서 감회를 새로이 하고 뭐 다짐을 굳히고 하는 것만큼 촌스러운 일이 없는데. 나는 가족들과 저녁을 먹다가 울었고 아빠는 나를 지하철역으로 데려다 주면서 다시 말했다. 어제 했던 얘기 잘 생각해 보라고.

그렇다고 너보고 짐 싸서 대전으로 내려오라고 할 수도 없잖아, 라면서. 왜? 나 나이가 너무 많아? 했더니 그게 아니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 한두 달이나 여기 와서 쉬면 좋지, 너 지겨워서 살겠냐?


너 이십 대, 삼십 대 지나가면 다시 안 돌아와. 돈 몇십 만원 더 그렇게 해서 버는 거 나중에 좋을 것 같냐? 다 부질없어. 너 많이 봤잖아. 그렇게까지 하면서 해야 할 일은 없어. 그리고 그만하면 됐어. 나는 엄마와 아빠가 그렇게 낭만적인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인지 몰랐다.




일주일. 일단 확실한 건 잠을 상대적으로 일정한 시간에 잤다. 세상에 쉬운 밥벌이는 없다. 그래서 항상 알 수 없어 질문을 밀쳐 뒀다. 어차피 쉬운 일은 없다고. 그런데, 그러고 살았더니 억하심정만 늘었다. 더러운 거 보고, 슬픈 거 보고, 성질에 맞춰 주고, 장엄함 앞에서 감정을 누르고, 또 징징대는 거 듣고, 오만 데서 울리는 알림에 뛰어가고, 잠은 이 때 잤다가 저 때 잤다가. 신규도 아닌데 왜 이럴까 스스로에게도 푸념만 했다. 지나갈 줄 알았는데 지나가지를 않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그 문제를 공항에서의 낯선 문장이 때렸다.


내가 만약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면, 돌아오자마자 맞은편 오피스텔 아래아랫층의 고양이를 다시 보며 나는 대체 언제쯤 냥집사가 될 수 있을지 재차 떠올렸을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이런저런 애완동물들과 함께 거니는 사람들을 보며 또 그 로망을 아프게 확인했겠지.

나는 그 질문을 계속 상기했다. 천지가 다른 환경은 그냥 배경일 뿐이었고 뭘 잡아채 남기는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에서 주인공은 대머리 직장 상사에게 넌 지금 징징대는 거라는 소리를 듣는다. 넌 지금 걔가 당장 널 보고 왜 잘했다고 칭찬하고 뽀뽀해주지 않는 건지 징징대고 있는 거라면서. 이 일을 하려는 사람은 널렸으니 하기 싫으면 관둬라, 라는 거지. 다시 봤을 때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그녀는 그러고 있던 게 맞았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아리송했다. 내가 얼마나 징징대고 있는 건지, 여기서 이탈하고 나면 나는 어떤 존재가 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알 수 없었던 걸까? 패배고 탈락인 건 맞지. 하지만 그렇게 판단한 기준은 뭘까. 뭐에서 패배고 탈락일까.






5년. 내년 10월이면 이 병원에서의 경력만 5년 반이 된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가닥을 하나는 정해야 한다. 교대근무를 계속할 건지, 아니면 형태라도 바꿀 건지. 아무 계획 없이 지금처럼 살면 나는 십 년 후에도 이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나쁘지는 않다. 사학연금이 나오며 복지와 연봉은 더 오르긴 할 거고 나이를 먹은 만큼 나를 눈치 보게 만드는 인간들도 적을 거니까. 돈이 얼마나 중요한데. 달에 몇십만원? 크다. 작은 돈 아닌데. 근데 그건 그건 지금처럼 살아도 가능한 일이잖아. 나는 이 일에서 뭐가 가장 싫었을까.





앞으로 그걸 찾아야지. 뭉뚱그리지 말고.

5년보다 더 넘어가면 정말 이직도 쉽지 않을 테니까.


나를 낯선 환경에 시간과 재화를 주고서 던져놓는 실험. 종결인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만들어야지, 내가.

뭐, 이상형 리스트 만든다고 꼭 이상형 만나는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어쨌든 10년 후에는 안 된다.

이렇게? 뭐가 이렇게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살아? 사는 거. 그래, 그건 됐다 치고.


사실은 멀리 갈 것도 없고 잠을 언제 자는게 나은지부터 살펴야 한다. 제때 자는 건 너무 행복한 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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