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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omas Oct 29. 2016

Day 7. 그림 같은 풍경, 포지타노. 완전한 휴식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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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리에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아침이 밝았다. 어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Anna와 작별, 나폴리행 비행기, 최악의 엘리베이터, 총소리, 소르 빌로우 피자, 나폴리 항구의 야경. 침대에 누워 머릿속으로 어제 하루를 복기해본다. 정말 전쟁같은 하루였다. 오늘은 나폴리를 떠나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포지타노로 이동한다. 아말피 해안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1위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곳이라면 런던에서 쌓인 피로와 나폴리에서 받은 스트레스까지 완전히 해소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침 어제 같은 방에서 묵은 스위스에서 온 룸메이트가 나폴리에서 소렌토까지 간다고 해서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 이 스위스 친구는 독일어를 전공 중인데 이탈리아어랑 영어도 구사할 줄 알았다. 이런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유럽 여행이 참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지타노로 가려면 나폴리에서 소렌토까지 기차를 타고 소렌토에서 다시 SITA 버스를 타고 해안 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가야 했다. 호스텔에서 체크아웃을 한 다음 12시 쯤 스위스 친구와 함께 나폴리 거리로 나섰다.



유쾌한 호스텔오브더선 스태프. 나한테 '달링'이라고 함.



  바깥의 날씨는 굉장히 화창했다. 하늘색이 내 마음까지 들뜰 정도로 새파랬다. 문득, 한국의 올해 여름이 떠올랐다. 이번 여름은 다른 해와 비교해서 유난히 흐린 날이 많았었다.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거의 한달간 출근하면서 오늘은 제발 흐리멍텅한 하늘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하늘에 애원할 정도였다. 나는 그만큼 파란 하늘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게다가 런던에서도 흐린 날이 많아서 포지타노에 갈 때만큼은 날씨가 좋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내 소원대로 오늘 이탈리아 하늘의 청량함은 그 모든 갈증과 걱정을 말끔히 씻어내리고 있었다. 스위스 친구와 소렌토까지 함께 가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하철 타는 것부터 소렌토행 기차 타는 곳까지 척척 안내해주었다. 게다가 아까 말했듯, 이탈리아어를 잘해서 가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그냥 지나가던 사람한테 길을 물어봤다. 참 가는 길이 편했다.



나폴리 가리발디역 도착!



  나폴리 가리발디에서 소렌토까지 트랜이탈리아 열차를 함께 타고 가면서 스위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소개도 좀 해주고 서로의 여행담도 말했다. 스위스에 11월 초에 트래킹 할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좀 추울 거라고 했다. 스위스 여행은 날씨가 정말 중요한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한참 기차를 타고 가는데 승무원이 소렌토로 가는 사람은 여기서 내려서 다음 기차를 타고 가라고 했다. 10분 정도 플랫폼에 서서 잠시 바깥공기를 쐤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주변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이탈리아에서는 기차 플랫폼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런던도 흡연하기가 참 편했는데 이탈리아는 정말 흡연자들을 위한 나라인 것 같다. 정말 도시 곳곳에 재떨이가 달린 쓰레기통이 설치되어 있고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나는 길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리고 여성 흡연자가 정말 많이 보였다. 우리나라도 여성 흡연자가 많지만 숨어서 피거나 흡연자라는 걸 숨기려는 경향이 있는데 유럽에선 여성들도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는 것 같다.



여기는 건물벽 뿐만 아니라 기차도 색동옷을 입고 있다.



  소렌토 역에 도착했다. 스위스 친구는 여기서부터 스쿠터를 빌려서 여행한다고 했다. 아쉽지만 지구 어디에선가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나섰다. 소렌토 역으로 나오니 바로 SITA 버스 정류장에 나왔다. 포지 타노행 버스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지금이 유럽 여행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면 정말 여름철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지타노를 찾아갈까. 버스 캐비닛도, 좌석도 모두 가득 찬 상태라 버스 바닥에 앉아서 캐리어를 붙들고 포지타노까지 가야 했다. 이런 경험도 여행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나는 쓸데없이 긍정적이다. 해안 도로를 따라서 포지타노로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버스는 절벽을 끼고 좁은 도로 위를 잘도 지나다녔다. 30분 정도 달렸을까, 드디어 포지타노에 도착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풍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름이 걸린 높은 산, 비탈진 절벽 아래로 촘촘히 들어선 집들, 그리고 해변가.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캐리어를 끌고 숙소까지 가는 길마저도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구글 지도에 나와있는 주소로 가다가 잠깐 길을 헤맸는데 이탈리아 주민의 도움을 얻어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여기가 포지타노다.



  포지타노에서 2박을 보낼 숙소는 에어비앤비에서 뷰가 좋다고 평가된 곳이었다. 물론 1박에 12만원이라는 거금이 들었지만, 나는 휴양지에서는 정말 완벽한 휴양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다. 방은 굉장히 넓고 아늑했으며 단연 최고는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전망이었다. 이런 곳에서 이틀을 지내다니 정말 호강이 따로 없었다. 간단하게 짐을 풀고 마을을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포지타노는 절벽에 집들이 들어서있어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많았다. 골목에는 오래된 집들이 각자의 개성을 간직한채 옹기 종기 모여있었는데 무언가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계단을 타고 해변가까지 내려왔다. 백사장에는 10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해수욕을 즐기는 유러피언들이 보였다. 햇볕이 꽤 따듯해서 해수욕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수영복을 챙겨오는건데 젠장! 언제 다시 지중해에 몸을 담궈볼 기회가 있을런지. 해안가에서 올려다보는 포지타노의 모습은 위에서 보는 것만큼 아름다웠다. (사실 여기는 어디를 찍어도 모두 달력 사진이 돼버리는 곳이다.) 문득 이런 좋은 곳에 나 혼자 있으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가 지금 내 곁에서 내가 보는 걸 같이 바라본다면, 그리고 이 순간을 함께 보낸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혼자 있기에 적적하면 한국인 동행을 찾아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오후 4시, 저녁을 먹긴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을 거른 덕에 배고픔이 느껴졌다. 해안가에 위치한 레스토랑 중 한 군데를 골랐다.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해산물 파스타에 화이트 와인까지 주문하고 혼자서 한껏 분위기를 냈다. 느긋하게 해변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기니 혼자 여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아한 식사.



  숙소로 다시 돌아가는 길, 해안가에서 다시 산 중턱에 위치한 숙소까지 걸어갔다. 끝날 줄 모르는 계단을 계속 이어진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필시 헬스장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숨을 헉헉 거리며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보니 아까 먹은 저녁이 벌써 소화된 것 만 같았다. 그래서 저녁도 먹은김에 후식으로 젤라또를 사먹으러 갔다. 아까 해변으로 내려가면서 본 바다 전망이 이쁜 카페를 점찍어두길 잘했다. 바다가 탁 트인 카페에 도착했다. 나는 젤라또 하나를 시키고 자리에 앉아 브런치 여행기를 썼다. 원래 계획은 하루에 하나를 쓸 계획이었는데 영국에서 Anna와 매일 밤늦게까지 이야기하느라 일주일째 못쓰다가 나폴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브런치를 쓸 수 있었다. 열심히 글을 적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맛도 좋고 보기도 좋고


  나는 숙소로 돌아가서 테라스에 앉아서 쓰던 글을 마무리 지었다. 저녁을 일찍 먹은 탓에 또 출출해졌다. 멋진 야경이 보이는 테라스에서 컵라면 하나를 먹으니 꿀맛이었다. 슬슬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뭘 잘 못 먹었지. 아까 먹은 해산물 파스타가 잘못됐나? 나는 간밤에 화장실을 두 번이나 들락날락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일 때도 생수를 부어서 끓였는데 아무래도 커피포트가 문제였던 것 같다. 덕분에 변비 증상이 약간 있었던 나는 그날 밤 시원하게 장 청소를 했다. 정말이지 나는 쓸데없이 긍정적이다.


하루의 마무리는 테라스의 야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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