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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omas Oct 27. 2016

Day 6. Goodbye Anna. 나폴리 피자.

인생 피자를 맛보러 나폴리로 가다.




  런던에서 먹는 Anna와의 마지막 아침. 밖에는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영국을 떠나 저가 항공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 나폴리로 간다. 오후 1시 30분 이지젯 비행편이었는데 다행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Anna와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떠나려니 너무 아쉽다. Anna는 메모지에다가 스텐스터드 공항까지 가는 길을 그려가며 나에게 가는 길을 설명해줬다. 사실 City Mapper 어플로 검색하면 다 나오는 내용이지만 나는 조용히 그녀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저번에 한 번 런던 시내 지리를 물어보다가 'I have City Mapper application.'이라고 했더니 Anna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City map!'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잠자코 Anna의 설명을 들으며 그날의 동선을 확인하곤 했다. 캐리어에 짐을 쑤셔 넣고 빠진 물건이 있는지 살폈다. 이제 새로운 여행을 떠날 준비가 다 된 것 같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한국식으로 악수를 청했는데 Anna는 나를 안아주며 왼뺨에 뽀뽀까지 해주었다. 아, 여긴 영국이구나. 정말 친할머니같이 잘 챙겨준 Anna에게 진심으로 고마움 담아 작별 인사를 했다. Anna은 지금까지 만난 게스트 중에서 내가 특별한 게스트였다고 했다.

  "Yes. I am always special, everywhere!."

  Anna가 웃음을 지었다. 나는 문 밖으로 나가 이탈리아로 향하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Anna의 집이 점점 멀어진다. 내가 영국에 다시 올 때까지 건강히 잘 계세요. Good bye Anna!




Anna는 살아있는 City Mapper다.


 
  3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나폴리 공항에 도착했다. 런던과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일단 입국심사부터 확연히 달랐는데 여권을 보여줬더니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장부터 쿵 찍어줬다. 두 번째는 런던에 비해 기온이 높아서 입고 있는 옷이 너무 두꺼워 땀이 줄줄 흘렀다. 마지막으로 나폴리에 마피아가 많고 치안이 안좋다는 이야기 때문에 왠지 모를 긴장감이 엄습했다. 아무래도 낯선 이탈리아에서 갑자기 핸드폰 3g도 터지지 않아 프린트한 지도만 보고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휴대폰 옵션에 데이터 로밍을 켜야 이탈리아 3g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근데 방정맞게도 화장실까지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공항 1층에 화장실이 없어서 지하로 내려가야 하질 않나, 인쇄된 숙소 위치는 부실하게 설명되어있어서 지도에 보이지 않고... 머리가 아파온다. 갑자기 Anna의 얼굴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다시 짐 싸 들고 런던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일단 공항 밖으로 나와 경찰한테 물어 물어 겨우 버스 타는 곳을 찾아갔다.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지도를 보여주었더니 나에게 숙소까지 가는 길을 알려줬다. 역시 연륜이 있는 사람 자체가 바로 City Map이다. 20여 분 정도 버스를 타고 나폴리 시내로 들어갔다. 도시는 건물 외벽에 칠해진 수많은 그라피티들, 지저분한 거리, 보이는 불량스러워 보이는 흑형들, 노숙자들이 어우러져있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자 기사 아저씨는 저 멀리 있는 표지판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사인 보이지? 노란 간판에 그려진 개. 저기 골목으로 들어가." 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는데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나폴리 골목을 홀로 걷고 있다는 묘한 긴장감 때문인 것 같다. 노란 간판에 그려진 개를 지나 드디어 숙소 문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직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1층에서 숙소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다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멘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호스텔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는 성인 1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고 디스플레이는 커녕 투박한 버튼 두 개가 전부였다. 마침 호스텔에서 벽에 붙여 놓은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가 생긴 건 이래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당장 오늘이라도 실망을 안겨줄 것 만 같았다. 캐리어를 들고 올라가기엔 7층까지 가야 해서 무리였다. 그래서 나는 이 안내문을 믿고 엘리베이터를 타기로 결심했다. 나폴리 길거리보다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30초의 시간이 더욱 긴장됐다. 호스텔이 3층 정도였으면 고민 없이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탔을 것이다.


문틈이 벌어져있다. 심지어 돈까지 받고 운영하는 시간대도 있다.



 호스텔 카운터 직원은 정말 유쾌했다. 멘붕한 나의 얼굴을 보더니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나폴리 시내 지도를 주면서 형광펜으로 숙소 주변 관광지를 설명해줬다. 사실 관광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이 고생을 하면서까지 나폴리에 1박을 머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폴리 피자'. 직원은 '소르 빌로'라는 피자집을 형광색으로 칠해줬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나폴리 3대 피자집 중 한 곳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방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곧바로 피자를 먹으러 나갔다. 밖은 해가 기울어져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나폴리의 밤거리로 들어서자 몸이 다시 긴장 모드로 돌아갔다. 길을 걷다가 골목 어디선가 총소리가 '탕!!'하고 들렸는데 간담이 서늘해졌다. 군필자의 직감으로 말하건대 이건 분명 폭죽 소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단발이었을까? 저항도 못하고 죽은 건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별로 놀란 기색 없이 그냥 각자 가던 길을 가고 있었다. 나도 조금 더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했다. 나는 소르빌로로 가는 길에 카스텔 누우보나 플레비시토 광장 등 나폴리 명소를 지나칠 수 있었다. 잠깐 들렀다가 소르빌로에 도착하니 8시가 남았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기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3대 피자집이니 당연히 사람이 몰릴 수밖에. 나도 내 이름을 적고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우연치 않게 가게 바로 앞이 나폴리 항구라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항구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해안가를 따라 들어선 가로등, 산 능선의 수많은 불빛들이 나폴리 항구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나폴리가 3대 미항 중 하나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뭐 이리 3대가 많은지. 소르빌로로 다시 돌아가서 자리를 안내받고 자리에 앉았다.
  

나폴리 항구의 야경



  이탈리아어로 가득 찬 메뉴판을 보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직원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한국과는 다르게 유럽에서는 손을 조심히 들어서 눈빛으로 서버를 불러야 한다고 들어서 직원이 나의 애타는 신호를 알아챌 때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나를 발견한 서버가 다가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메뉴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신 있게 수많은 메뉴 중에 하나의 피자를 골라줬다. 바로 '마르게리타'였다. 마르게리타는 피자 도우에 토마토소스, 치즈만 올려 화덕에 구워내는 피자다. 마치 파스타집의 알리 올리오, 스시집의 계란 초밥과 같이 피자집의 가장 베이직한 메뉴이면서 그 가게의 수준을 말해주는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마르게리타 한 판과 맥주 한 병을 시켰다. 소르 밀로의 마르게리타는 나폴리 항구처럼 감탄을 자아냈다. 단연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라고 말할 수 있었다. 쫄깃한 도우와 고소한 치즈, 신선한 토마토소스의 풍미가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어 더 이상의 재료가 필요 없을정도로 완벽했다. 나는 연신 감탄하며 혼자 마르게리타 한 판을 다 먹어치웠다.



잊을 수 없는 맛....


  흡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폴리 항구를 따라 숙소까지 거닐었다. 오늘 런던에서 나폴리 숙소까지 고생했던 일이 스쳐 지나갔다. 지나가다 젤라또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들고 나왔다. '아 이게 젤라또구나!' 한국에서도 먹어본 적 없는 젤라또를 본고장에서 처음 맛보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로 넘어온 뒤로 지금까지 정신이 없다 보니 이탈리아의 정취를 여유롭게 즐기지 못 했다. 젤라또를 먹으며 카스텔 데로 보의 밤바다를 바라보니 무언가 런던에서의 여유를 되찾은 느낌이 들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 동안 받은 긴장과 스트레스가 완전히 풀려 누우면 바로 잠이 들 것 같은 상태가 됐다. 내일 이탈리아 남부의 포지타노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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