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저는 두고 가지 마세요.
세상에는 언제나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500년 전, 영국에는 유독 눈치 빠르고 셈이 밝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젠트리’라고 불렀다. 돈 좀 있은 젠트리들은 농사보다 양을 키워 양모를 파는 게 더 이득이란 것을 빨리 깨달았다. 곧 농부들은 땅에서 쫓겨났다. 젠트리들의 땅은 양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울타리도 세워졌다. 그 땅에 남은 건, 양과 양치기, 그리고 양치기 개뿐이었다.
쫓겨난 사람들은 분통했다. 하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시대는 변했고 시골에는 더 이상 일자리가 없었다. 백수가 된 사람들은 도시로 올라왔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마침 공장들이 성황리에 돌아가고 있었다. 공장은 양모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만들어냈고, 사람은 항상 부족했다. 농부들은 이제 도시 노동자가 되었다. 젠트리와 공장장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고, 양 떼 목장과 공장은 점점 늘어만 갔다.
토마스 모어라는 당대 작가는 이를 보고 “전에는 인간이 양을 잡아먹었지만, 이제는 양이 인간을 잡아먹는다!”라고 이야기했다. 역사가들은 이를 인클로저(울타리 치기)라고 불렀다.
국가지원 IT교육을 받기 위해 면접장에 앉아 있는 나는 퇴출을 기다리는 농부의 심정이었다. 적어도 양치기가, 아니 양치기 개라도 되어야 했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어딘가로 쫓겨나 다시 도시 노동자가 될 순 없었다.
TV에는 너도나도 4차 산업혁명과 그린 뉴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대부분의 기업 IT가 전산실이나 외주업체 관리팀 수준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따라잡을 것이다. 그게 대한민국 기업의 저력이니까. 언젠가는 인클로저(울타리 치기)를 할 것이다. “자자 여러분 4차 산업이 이제 중요합니다. 쓸모없는 분들은 나가주세요.” 쫓겨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간략한 코딩을 배워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하는 저임금 코딩 몽키가 되지 않을까..
끔찍한 생각을 하는 사이에 코딩 몽키도 되지 못하는 내 차례가 왔다. 왠지 떨리는 기분이었다.
면접은 간단했다. 국가가 IT를 전폭 지원해주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번 차수에 못 들어가도 다른 기회가 있었다. 방문해보니 IT교육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강남에는 비슷한 국가지원 IT학원들이 가득했다. 이곳이 바로 양치기들의 성지였다!
면접을 본 부원장님은 내 나이를 듣고 흠칫 놀랐지만 이내 진정을 찾았다. 30대 후반이지만 무엇보다 취업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교육업체의 선정과 평가가 취업률로 정해지기 때문에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취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게다가 참가자가 대부분 20대인 까닭에 교육뿐만 아니라 면접스킬, 취업알선도 제공된다고 했다. "신입으로도 경력직으로도 갈 수 있으니 이전하던 일과 결합하면 유리하지 않겠냐"는 희망적인 말도 잊지 않았다. 재취업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일이 어찌 될 줄 알겠는가? 지금 다들 4차 산업혁명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괜히 티켓을 찢어버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짝이는 눈빛을 보냈다. “취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집에 돌아와 교육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전혀 모르는 분야니까 최대한 기본기를 쌓고 가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대학교 홈페이지부터 시작했다. 컴퓨터공학과, 전산학부, 빅데이터 관련 대학원들 홈페이지도 찾았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체 어떤 과목을 배우고 있는지 확인했다.
각양각색의 과목이 있었지만 크게 네 가지 정도로 구분이 되는 듯했다.
- 컴퓨터 기초(+하드웨어 구조)
- 프로그래밍 원리와 언어
- 수학과 알고리즘
- 네트워크 (데이터 통신, 보안)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지만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전공 서적을 읽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혜안을 주세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외치자 어디선가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크...무크...가 있노라..
한동안 교육계에는 MOOC(온라인 공개수업) 열풍이 불었다. 하버드, 스탠퍼드와 같은 대학들이 앞다퉈서 전 세계에 일부 강의를 공개한 것이다. 무료 또는 약간의 비용으로 명품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시험에도 응시할 수 있었으며, 수료증도 발급했다. 사람들은 이를 MOOC(무크)라고 불렀다.
한국에도 비슷한 게 있었다. 바로 K-MOOC다.
KMOOC에 가입하자마자 나는 마트의 할인 초밥을 담듯 허겁지겁 강의들을 담았다. 마트 초밥처럼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무료라는 게 만족스러웠다. 강의는 몇 년째 업데이트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공짜다 공짜!! 마구 담아보자!!
탐욕스럽게 쇼핑하고 마치고 나니 벌써부터 똑똑해진 기분이었다.
쇼핑은 KMOOC에서 끝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의 열풍을 타고 각 교육재단과 IT회사들이 무료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중 IT초록 공룡 네이버의 edwith는 퀄리티가 굉장히 좋았다. 왜 이런 호의를 베푸는지 모르겠지만, 친절한 사람이 준 소시지를 먹는 길냥이처럼 의심 반 감사 반으로 강의를 담았다.
2주가 지나자 풍월을 읊는 서당개처럼 제법 IT스러운 말들을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 왜 진작에 컴공과를 가지 않았는지, 드디어 내 천직을 찾은 것은 아닌지 오만한 자신감에 휩싸였다. 문과 친구들에게는 자애로운 부처님 미소를 지으면 어디서 주워들은 IT 지식을 뽐냈다. 이제 함께 이야기 나눌 동료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교육이 시작되고 나는 매일 강남행 지옥철에 몸을 싣었다. 퇴사 전과 다른 점은 지옥철이 나를 다른 지옥으로 데려다준다는 점이었다. 몇 달 사이에 바뀌어버린 출근 풍경은 생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반쯤 자는 상태로 지하철에 매달려가는 내 모습은 마찬가지였다.
매일 출근하는 곳은 병원을 개조한 학원이거나 학원을 개조한 병원 같았다. 인테리어는 하얗고 세련됐으며, 어디선가 소독약 냄새가 났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10살은 어린 친구들 사이에 숨어들었다. 양 떼에 숨은 기분이었다. 강단으로 나온 양치기의 지시에 따라 양 떼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몸을 숨겼다.
"여러분, 저를 두고 가지 마세요."
IT 공부를 위해 나누는 정보
http://www.kmooc.kr/ : 대학교 수업을 무료를 들을 수 있습니다. 좋은 퀄리티의 교육이 많아요.
https://www.edwith.org/ : 보다 실용적인 IT 콘텐츠가 많습니다. 해외 콘텐츠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