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구원하라
회사를 그만둬도 매번 출근시간이면 눈이 떠졌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소주 병나발을 분 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아픈 강아지를 쓰다듬듯 내 머리를 쓰다듬고 출근을 했다. 눈이 번쩍 떠진 나는 물을 원샷하고 프로그래밍을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숙취로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퇴사를 하고 나면 회사에서 그동안 배운 능력이 죄다 쓸모없어 보인다. 조직에서 쓰이던 능력 대부분은 자연인인 나에게 그리 도움되지 않는다. 레스토랑에게 일하게 된 동물 조련사의 기분이랄까? 아니 조련사가 모두 떠난 버려진 동물원 물개의 기분일까? 그 어떤 것이든 다운그레이드가 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능력있고 큰 목소리를 내던 나는 빛바랜 옛날 영화 같았다.
나는 어제 마신 술을 후회하며 지난 과거를 되돌아봤다. 참회하듯 하나하나 기억에서 꺼냈다
그동안 내가 해웠던 일들은 각 포지션(자리)에 필요한 능력을 분석하고 정의하는 것, 직급이나 직위에 맞게 사람들의 역량(능력)을 성장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 일이었다. 대부분의 일이 남의 능력 업그레이드 시키기였다. 마침 아주 가까이에 무능력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모니터에 비치는 소주에 쩔은 장아찌 같은 남자 말이다. 그는 눈빛으로 간절한 도움 요청을 보냈다. 지금이 내 능력을 쓸 때였다.
서랍에서 A4 용지를 꺼내 나를 위한 커리어 플랜을 그렸다. 플랜에 따르면 가장 먼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책으로만 배우기 어렵다. 연애도 책으로 배웠다가는 끔찍한 일을 초래한다. 언제나 시작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만약 내가 기업에 있었다면 나 같은 사람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했을까?
평소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국가는 재직자나 구직자를 위해 교육을 제공한다. 즐거운 민방위 교육도 그중 하나다. 물론 모든 교육을 다 국가가 도맡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직원들에게 국가 대신 직업 훈련을 제공한다. 그리고 일정 금액을 환급/제공받는다. 회사 교육에서 인사팀 사람들이 그렇게 출석부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라에 서류를 제출해야 하니까.
그럼 나 같은 퇴직자는? 물론 일정 한도 금액 안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곳이 바로 HRD-NET(고용노동부 직업훈련포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여기에 보내기로 했다. 일할 때 접속했던 홈페이지를 백수가 되어 접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튼튼한 동아줄이었다.
HRD-NET에는 생각보다 많은 IT 교육들이 개설되어 있었다. 라디오 방송에서 많이 듣던 학원 이름도 눈에 띄었다. 여기에서는 국민내일배움카드라는 걸 만들 수 있는데, 매년 200~300만 원 한도 내에서 수업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 물론 더 비싼 장기 교육도 들을 수 있다. 이왕이면 비싼 게 좋아 보였다. 스파르타처럼 나를 마구 채찍질하는 곳이면 기쁘게 울면서 맞을 각오도 되어 있었다. 곧 눈을 사로잡은 타이틀이 등장했다
'파이썬을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과정'
‘최고급 새우를 사용한 지중해풍 그릴 요리’처럼 이국적인 멋이 흘러넘치는 타이틀이었다. 파이썬,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따로 읽어도 멋진데 한 문장에 있다니! 원래 화려한 문구는 빛 좋은 개살구인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개살구라도 먹을 만큼 배가 고팠다.
나는 포스트잇을 뜯어 교육기관 연락처를 적었다. 휴대폰을 꾹꾹 눌러 전화를 걸었다. 마치 첫 데이트 약속을 잡는 스무 살이 된 기분이었다.
"안녕하세요. 교육기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신청하기 전에 해야 하는 일들과 몇 장의 신청서가 필요했다. 전화를 바꿔 받은 담당자는 지원자가 많아 가벼운 면담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면접이었다. “취준생도 아닌데 면접이라니! 마! 내가 예전에 인턴도 뽑고! 걔들 면접도 보고! 마! 다 했어!!”라는 말 대신 “헤헤, 저는 아무 때가 괜찮으니 정해주신 날에 가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두 손으로 공손히 휴대폰을 드는 건 기본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면접자가 되었다. 열 살은 어린 친구들과 함께.
IT 공부를 위한 정보 나눔
https://www.hrd.go.kr/ : 구직자, 퇴직자, 프리랜서라면 꼭 들어가보세요. 내일배움카드라는 것만 만들면 쉽게 교육을 신청할 수 있고 절차도 어렵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