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모 웹 에디터' 세대다

HTML 좀 하면 코딩하는 거죠?

by 잇문학도

HTML 좀 하면 코딩하는 거죠?

아내와 함께 탄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거대한 학원 홍보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코딩 학원이었다. 아직 한국말도 어색해 보이는 아이들이 노트북에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외계어들을 타이핑하는 사진도 함께였다. 지역 코딩 대회에서 우승한 중학생 아이의 웃는 사진도 걸려있었다. 코딩 열풍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 났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절도 이와 비슷했다. 당시 대한민국과 학교는 컴퓨터에 빠져있었다. 컴퓨터는 공식 과목으로 채택되었다.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네트워크, 하드디스크, 램(RAM)의 정의를 배우고 학교에는 컴퓨터실이 생겼다. 부모님들은 한 달치 월급을 투자해서 자녀들에게 거액의 컴퓨터를 사줬다.


그 시절엔 199만원이면 중고 자동차 가격아닐까


"한 번 주인이면 평생 주인"이라며 진돗개가 주인을 찾는 감동의 영상 끝에는 '평생 애프터서비스' 문구가 등장했다. 세진에서 만든 세종대왕 컴퓨터 CF였다. 세종대왕께서는 문맹 없는 나라를 만들었으니, 세종대왕 컴퓨터가 컴맹 없는 나라를 만들 차례였다. 컴퓨터를 모르는 컴맹(컴퓨터 맹인)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우리 부모님께서도 '윈도우 길라잡이'라는 책을 구입하셨다. 윈도우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예전 컴퓨터 열풍을 생각하면 지금의 코딩 열풍은 우스운 수준이었다.


지금도 평생 에프터서비스 해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부모님께서 거액을 투자해 사주신 컴퓨터로 나는 열심히 게임을 즐겼다. 90년대는 게임의 르네상스였다. 프린세스 메이커, 영웅전설, 삼국지와 같은 PC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대의 명작,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었다. 당시 친구들의 장래희망 1위는 게임 개발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게임을 개발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지만 말이다.


컴퓨터는 청소년기의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용돈을 모아 램(RAM)을 사거나,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서 오버클럭(CPU 속도 높이기) 따위를 연구했다. 물론 더 편하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관심은 모뎀 통신으로 넘어갔고, 인터넷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인터넷을 즐기게 되자 나와 친구들은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당시는 이메일을 만들면 일정 용량의 서버를 공짜로 주던 시기라서(지금의 구글 드라이브와 비슷하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개인 페이지를 가질 수 있었다. 시대에 맞춰 나모 웹에디터라고 하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이 출시되었다. 이것을 쓰면 파워포인트를 만들 듯 홈페이지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제대로 만들려면 html 언어를 알아야 했다. 컴퓨터 언어와의 첫 만남은 html이었다.


html 과 전설의 나모웹에디터





도서관에 도착해 프로그래밍 코너를 뒤적거렸을 때,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html과 관련된 책은 프로그래밍 책과 포토샵 책 사이에 애매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정확히는 웹 디자인 코너에 있었다.

웹 디자인은 프로그래밍이 아닌 건가?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어차피 컴퓨터 언어로 써져있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하루 종일 망부석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거리고 나서야 조금 이해가 됐다. 코딩은 무슨 말이고 프로그래밍은 무엇인지, html이 왜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닌지, 대체 JAVA(자바)는 뭐고 Javascript(자바스크립트)는 무엇인지..


알 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좀 쉽게 설명해보자면..


1)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언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영어로 쓰여있다. 단, 언어에 따라 규칙이나 사용되는 단어가 다르다. 한국어나 스페인어로 코딩하는 경우는 당연히..없다.


2) Web 페이지에서 이미지를 배치하고, 글을 꾸미고, 효과를 줄 때 사용하는 html, css, Javascript 같은 언어는 웹 페이지를 디자인한다. 그래서 프로그래밍 언어라고 하지 않는다. (Javascript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html은 마크업 언어라고 한다. 마크업은... 그게....구글이 알려줄 것이다..


3) 프로그래밍이란 프로그램을 만드는 활동인데 논리에 따라 입력과 출력이 되고 특정 기능을 구현 한다. html, css, Javascript가 사람의 겉모습을 만들고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하는 거라면, 프로그래밍은 뇌와 장기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로는 JAVA(자바), Python(파이썬), C, C++, (그리고 Javascript?) 등이 있다.


나는 여전히 자바, 파이썬, 씨쁠쁠(C++)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스파게티, 링귀네, 부가티니, 페투치네, 라쟈냐.. 같이 파스타면 종류를 듣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걸 다 배울 자신은 없었다. 한 가지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 프로그래밍 책들을 쭉 훑어보자 번뜩이는 인사이트가 머리를 스쳐갔다. 마트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상품이 눈높이에 진열되지 않는가? 프로그래밍 로열석에는 파이썬 책들이 쭉 꼳혀있었다. 나는 드디어 내가 배울 언어를 정했다.


"그래! 영혼의 동반자는 이제 파이썬이다."

뱀 두 마리가 꼬여있는 파이썬의 상징도 마음에 들었다. 마치 해리포터의 슬리데린 같지 않은가!


퇴사한 나의 마음은 슬리데린과 다를 바 없었다


집에 돌아와 파이썬이 무엇인지 나무위키부터 뒤져보기 시작했다. 열심히 읽어보았지만 1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할수록 자신감은 떨어졌다. 사람들이 적어놓은 설명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공돌이들은 어려운 걸 어렵게 설명하는 걸까?! 신이시여, 왜 문과인 저를 버리시나이까?

첫 단추부터 잘못 낀 느낌이 진하게 들었다. 프로그래밍은 감히 내가 발을 들일 수 없는 신성한 곳처럼 느껴졌다. html은 알고 있다는 자부심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는 결국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냉장고에서 초록병을 꺼냈다. 알콜 냄새나는 꿈에서는 파이썬 전문가가 되길..




IT 공부를 위한 정보 나눔

생활코딩 Https://www.opentutorials.org/course/3084 : 대한민국을 이끄는 IT 교육 공공재입니다. 웹 페이지를 만들거나 코딩의 기본이 궁금하신 분들은 쉽게 배울 수 있어요. 웹 페이지 강의 시간은 약 4시간 정도랍니다. (물론 직접 해보면 시간은 더 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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