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국비교육을 마치며

이제 곧 마흔이다

by 잇문학도

국비 교육을 마치자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선택지를 앞두게 되었다. 이제 막 통계와 빅데이터 이론, R과 파이썬을 공부한 나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아마 나처럼 국비교육을 하고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에 맞닿뜨리게 될 것이다.


선택 1. 빅데이터를 더욱 공부하기 위해 빅데이터 대학원을 간다.

혼자서 빅데이터를 공부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일단, 빅데이터는 어디 있는가? 그리고 어떤 분석을 할 것인가? 목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빅데이터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료도 없었다. 술자리에서 빅데이터의 '빅'자만 꺼내도 친구들의 눈빛에서 '그만 좀 해. 그래서 어쩌라구?'라는 레이저가 쏟아져 나왔다. 나에게 가르쳐 줄 사람과 함께 공부할 사람이 필요했다.

당시만 해도 빅데이터 대학원은 크게 일반대학원,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 으로 설립되어 있었다. 가방 끈 긴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찾아보니 특수대학원은 탈락, 대부분 회사원들이 주말에 참여하는 명예 학위 수준의 커리큘럼이었다. 빅데이터는 대부분 전문대학원이 많았는데, 과목만으로는 수준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마침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의 합격자 명단을 보게 되었다. 외국..국내 명문대 컴공과 석박사들이 합격자구나.. 짜고 치는 고스톱인가..


선택 2.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 취업을 한다.


인사팀에 일했던 경험과 기업의 생리를 생각해볼 때, 불가능하다. 신입은 가능하겠지만 전공도 아닌 과장급 나이를 신입으로 뽑을 이유가 없다. 나 같은 사람마저 아쉬운 조직(아마도 스타트업?)에서는 적은 급여로 채용할 수도 있겠지만 빅데이터보다 SI/SM(시스템 유지보수)에 채용될 확률이 더 높다. 왜냐고? 나라도 그렇게 인력배치를 할테니까. 결국 제대로 빅데이터 업계에서 일하기 위해선 석사 학위라도 필요했다. 아니면 캐글이나 공모전 같은 곳에서 빛나는 성과를 보여주거나. 마흔이 다 되어가는 경력자의 현실을 고려할 때, 2번은 선택지가 아니다.


선택 3. IT 맛을 봤으니 새로운 일에 도전해본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맛봤으니, 새로운 언어를 배우든 아니면 파이썬을 활용해서 웹페이지를 개발하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방법이 있다. 이제 검은 화면에 써진 코드들과 친해지지 않았는가?

말은 멋지지만 한참 배를 몰고 가던 중, 갑자기 항로를 바꾸는 격이다.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높아보인다. 40대를 죽은 경력으로 보내고 싶진 않았다. 어리석은 선택으로 시간낭비 하는 것이 아닐까?




한동안 선택 1을 마음에 두고 열심히 대학원을 알아봤다.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진 단기 석사과정을 모두 지우고 나니 몇 개 대학원이 남지 않았다. 서울대(Teps가 필요함, 이전 합격자가 죄다 박사급이다), 카이스트(시험을 본다. 전산학, 통계학 등 선택),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국민대, 과기대 정도가 내 눈엔 가장 괜찮아 보였다. 그중 국민대는 꽤 이른 시기부터 데이터사이언스나 빅데이터 분석에 대해 투자를 하고 있었다. 과기대도 신흥 강자였다. 물론 여기서 나를 뽑아준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나의 선택은?


나는 클래스101에서 '안드로이드 앱 개발' 강좌를 결재했다.

대체 무엇을 하는 짓이냐고?


대학원을 고민하던 무렵, 이전 회사 팀장님과 연락이 닿아 함께 식사를 했다. 팀장님께서는 본인도 퇴직을 준비 중이라고 하셨다. (지금은 퇴직을 하셨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그분께서는 나에게 물었다


대학원 나와서 다시 취업하려고?


그분의 질문은 IT공부 시작 전 스스로에게 던졌던 첫 번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나는 왜 공부를 시작했을까? 빅데이터 박사학위를 받고 학문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인가? 배운 것을 활용해서 취업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연구소에서라도 일하고 싶은 걸까?


나이를 먹고 무엇인가를 배운 것은 것은 생계를 떠나서 생각하면 안 됨을 알고 있었다. 당시 나는 온라인 판매를 통해 생업을 이어나가고 있었고, 공부를 하면서 이를 거의 내팽개친 상황이었다. 제대로 대학원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모두 접어야 할 것이다. 그럴 이유와 각오가 필요했다.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대답은 '나는 취업을 하지 않겠다'였다. 나는 분명 알고 있었다. 요즘 같은 대퇴사 시대에 정규직이란 20년짜리 계약직에 불과하다는 것을. 퇴직한 선후배들이 돌도끼 하나 없이 밀림에 니오는 것을 보며, 나를 지킬 수 있는 쇳꼬챙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했다는 것을.


1년 전, 2020년 12월. 아내와 가족들, 주변 사람들에게 선언을 했다. 제대로 사업을 해보겠노라, 앱을 개발해서 나와 같은 퇴직자, 은퇴자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겠노라.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그렇게 나는 아주 소수의 지지자와 다수의 반대자들, 그리고 적당한 수의 비아냥쟁이들을 얻게 되었다.

이제 밤이면 안드로이드 스튜디오를 켜놓고, 코틀린 코드를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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