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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업계에서는 저도 꽤 유명한 사람입니다

회사를 다니지 않고도 유명해질 수 있다고요

by 잇문학도
디지털 유목민, 혼자 정착하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노마드(유목민)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은 낙타 대신 비행기를 타고, 물주머니와 칼 대신에 노트북을 들고 다녔죠. 싱가포르의 한적한 카페에 앉아 한국으로부터 외주 받은 프로그래밍을 하기도 하고, 프랑스 에어비엔비에서 영상 작업을 하거나, 늦은 새벽 미국에서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들은 대부분 비대면 세상에서 살아남은 프리랜서들이었습니다. 재택과 업무 외주화가 이들의 쓸모를 높였고, 프로그래밍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가 개발자들을 독립시켰죠. 사실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많은 이들이 조직으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세상 밖을 맛본 이들은 이전과 다른 사람들이 되었죠.


많은 이들이 진정한 노마드가 되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선지자처럼 “인간은 본래 자유롭고, 스스로 먹고살 수 있다"며 독립 선언을 했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 외쳤습니다. 가라사대 솔리프러너의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디지털 노마드의 세대는 짧게 끝났지만, ‘조직 밖에서도 혼자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시대’는 영원할 것이라며 추종자들은 외쳤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 질병 앞에서 생명의 가냘픔,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길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처럼 강인함을 느꼈습니다. 반면 서로에 대한 불신도 혐오도 심해졌습니다. 기존의 연대가 깨졌죠. 사람들은 혼자임에 익숙해졌습니다.


공간의 중요함보다 시간의 중요함도 느꼈습니다. 좋은 것만 하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는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음을요. 꼭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는지,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국가와 기업을 위해 쓰는 게 맞는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세시대 어느 누구도 '신을 왜 믿어야 하는지' 묻지 않았던 것처럼 현대사회는 꽤 오랫동안 '왜 우리는 국가나 조직에 소속되어 일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질문은 대답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개인주의 시대가 탄생했습니다. 어느 시대보다도 이토록 사람들이 조직과 단체에서 자유롭고 싶어 했던 적은 없었거든요. 그 첫 번째 발걸음이 바로 '내 손으로 벌어먹고사는 것', 즉 '내돈내살'이었습니다.


솔로프리너(Solo + Entrepreneur)라는 1인 스타가 탄생하다

예전부터 스스로 생계를 꾸리는 이들은 많았습니다. 수많은 자영업자들도 그중 하나죠. 지금 스스로의 힘으로 먹고산다는 건 좀 다른 개념입니다. 전문성과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즉, 조직 안에서의 직함이 아니라 개인의 실력과 네트워크로 자신의 강인함을 증명하는 겁니다. 알고리즘을 타고 날아가는 인플루언서들의 진검승부처럼요.


평생 노를 젓고 있었던 멋진 궤도


어느 조직이나 서로 더 끌리는 사람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조직 안 성공의 자리는 한계가 있죠. 한정된 자리를 나누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하고 자연스럽게 무리가 생깁니다. 무리끼리 힘을 얻기 위해 경쟁을 하면 우리는 그것을 정치라고 하죠. 공공기관이든 사기업이든 자리와 사람이 있는 곳에는 정치가 있습니다.


솔로프리너(Solo + Entrepreneur / 1인 창업가, 기업가)들은 이러한 사내 정치에서 자유롭습니다. 이들은 자리나 힘을 쟁취하지 않고 협업으로 명성을 쌓습니다. 일하는 플랫폼이 다르고 게임의 법칙이 다릅니다.


그래서 솔로프리너들의 무리는 기존의 경쟁과 다릅니다. 우선 온라인을 기반으로 서로 연대합니다. 출신 성분(?)을 전혀 따지지 않죠. 필요한 것은 능력입니다. 이런 면에서 장인들의 조합인 길드와 같습니다. 서로 약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뭉치는 거죠. 유명한 크리에이터들도 서로의 채널에 출연하면서 분야별로 연대하고 있는 걸 알고 계신가요?


자신의 것에 엄격해야 장인입니다..


실제로도 이들은 스스로 디지털 장인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공유하면서 영향력을 더욱 넓혀나가죠. 우리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 디지털 장인들이 뿌리고 있는 지식과 기술을 접할 수 있습니다. 영상 편집을 배우기 위해 책을 사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졌죠.


유튜버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디지털 장인들은 크리에이터인 유튜버와 조금 다릅니다. 물론 이들도 유튜브를 통해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는 합니다. 하지만 영상 콘텐츠 제작 말고도 글쓰기와 강의, 컨설팅, 뉴스레터 등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자신이 공유할 수 있는 노하우를 무료 또는 유료로 나누는 게 핵심입니다. 핵심이 전문성이니까요.


때로는 알고리즘의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플랫폼을 만들기도 합니다. 커뮤니티를 통해 노하우를 나눈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팟캐스트나 뉴스레터를 통해 진지한 정보를 공유합니다. 이들은 스타와 팬의 관계보다 선생과 제자의 관계처럼 보입니다.


표면적인 인기보다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고자 하는 이들 덕분에 뉴스레터, 팟캐스트, 전자책이라는 올드한 플랫폼은 신흥 강자가 되었습니다. 수익과 명성이 이곳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아졌고요. 대단한 직위가 아니더라도,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쳐주는 것만으로도 직업이 되고 돈이 되고 있습니다.


자, 이제 누가 진짜 초보지?
나는 자연ㅇ, 아니 자유인이다

솔로프리너의 세상이 마냥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정해진 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성실, 노력, 생산성이라는 고루한 단어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예로부터 혼자 일하던 직업이 있습니다. 바로 작가인데요. 움베르토 에코, 밀란 쿤데라, 헤밍웨이, 무라카미 하루키 등 대작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작가란 무엇인가'를 보면 이들이 얼마나 루틴화된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10시간 가까이 하루 종일 쓰고,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냅니다. 심지어 옷을 입고 출근을 하듯 나간 뒤, 커피와 함께 돌아와 외출복 상태로 자기 방에서 글을 쓰기도 하죠. 그들은 자유롭지만 스스로 만든 규범 안에서 삽니다. 생산성을 위해서요. 자유인에게 성실함은 선택이 아닙니다.


게다가 AI시대가 시작되면서 개인이 가진 기술은 인공지능 기반 플랫폼으로 많이 대체되었습니다. 이미 디자인, 편집, 코딩의 분야는 몇 만 원이면 수준급 결과물을 만들죠. 어설픈 기술에 성실함도 없는 사람을 보호해 줄 조직이나 협회는 없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정하는 시스템까지 없다면 그저 '자연인'일뿐이죠.


쳇지피티가 그린 네컷만화. 인공지능이라 카카오에 고소당할 일도 없겠군요


스스로 경제적 주체가 되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서 이전보다 더욱 창의성과 감성 지능을 요구받습니다. 예전엔 포토샵 배우면 독립할 수 있다는 말도 있었는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하나만 배워서 해결이 되나요. 혼자 먹고살려는 개인은 종합격투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불안정한 수입과 불안감뿐만 아니라, 혼자 일할 때 생기는 외로움, 법적, 사회적 취약함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습니다. 배달앱 점수처럼 만드는 생산물마다 별점을 받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지 않고요. 그럼에도 이들을 부러워하고, 이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주체적인 자유인의 삶이라.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지금의 내가 아니라 미래의 나를 브랜딩 하세요

결국 우리는 이들을 통해 어떤 곳이라도 내가 빛나야 함을 깨닫습니다. 언젠가 회사 로고와 직함이 사라지고 개인의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송길영 작가는 '호명사회'에서 삶에 고려해야 하는 '변수'가 많아지고 함수가 복잡해진다고 말합니다. 머릿속에 '새로운 계산기'가 생겼다면서요. 그러니 한 명의 개인은 그저 조직에만 목 멜 수 없고 결국 나의 이름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서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재준씨..퍼스널 브랜딩인가 브랜딩이 아닌가


내가 유명하지 않다면 유명인에 기대어 활동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개인의 평판은 점점 불어나는 새로운 화폐와 같습니다. 나눠줄수록 점점 늘어나는 자산이죠. 그러니 나의 전문성과 평판을 관리하는 것은 홀로서기의 기본이고, 자신의 유명세를 나눠주는 것은 전략이 됩니다.


결국 지속적인 자기계발만큼 관계도 중요합니다. 각자도생의 시대는 반만 맞았습니다.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이들은 동료를 찾아 나섭니다. 각자도생 하던 사람들이 비슷한 이들이 만나 연대를 이룹니다. 종합격투기가 어려우니 함께 싸워보자 외칩니다. 역시 싸움은 혼자 하는 게 아니죠.


조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들의 길드는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면에서 탈출한 점들은 좀 떠돌기는 하지만 언젠가 다른 곳에서 연결되거든요. 연결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점들도 있지만 혼자 빛이 나는 별도 있을 겁니다. 그들의 중심으로 모이겠지만 모두가 그려낸 그림은 지금과는 분명 다를 걸 생각합니다.



어쩌면 미래의 일자리는 조직이 아니라 개인의 전문성에서 나올지도 모릅니다. 개인이 주인공이 되는 시대가 온다면요. 그런 시대에는 전문성뿐만 아니라 개성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같은 능력이라도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창조하고, 자기만의 축적을 보여주는 사람. 그리고 그 과정이 탁월하기보다 공감 가는 사람이 더욱 각광받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온다면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아니 그전에 스스로 유명해질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그래서 무슨 말인데요? 3줄 요약


코로나19로 등장한 디지털 노마드는 조직 밖에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솔로프리너 시대로 이어졌으며, 개인의 전문성과 독립적 삶을 강조하는 문화로 발전했습니다.

AI와 플랫폼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려면 성실함과 창의성 등 인간만의 역량이 중요해졌고, 개인들은 스스로 브랜딩하며 자신의 평판과 전문성을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조직이 아닌 개인의 이름과 이야기가 더 중요해졌으며, 각자도생 하던 사람들이 디지털 길드 형태로 연대하며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개인주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https://economist.co.kr/article/view/ecn202501220025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032810215087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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