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처음을 기억해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 아니고
우리 놀아요.
내가 그에게 처음 보낸 메시지였다. 이건 사실 데이트 신청이었지만 그때 나는 좀 세련되어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남자에게 먼저 데이트 신청하는) 일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하고 싶었다. 썼다 지웠다를 수십 번 하고는 우리 놀아요, 로 문구를 정했지만 전송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했다. 한 3초쯤이었지만.
좋아요.
답장은 2분 만에 왔다. 그리고 30분 후 나는 그와 만났다.
놀자고 호기롭게 먼저 말해놓고는 막상 마주 앉고 보니 어쩐지 쑥스러웠다. 거울을 한번 봤어야 했는데. 립스틱도 지워지고 눈 밑에 마스카라 자국이 번진 건 아닐까? 사실 눈 밑에 마스카라 자국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화장으로 커버한 기미였다. 문자를 보내기 전에 거울을 먼저 봤어야 했다. 세련된 문구를 생각하느라 내 모습은 전혀 세련되지 않은 채 그를 만나고 말았다.
오늘 우리 데이트 맞죠?
굳이 확인하는 그가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내 마음을 눈치챈 걸까? 놀자고 보낸 내 문자에 담긴 뜻을 이미 알아버린 거 같아서 얼굴이 달아오른다. 세련은 무슨. 오랜만에 연애하는 티를 내며 나는 허둥대고 있었다.
능숙한 척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정말로 이런 일들이 익숙한 그런 남자일지도 모른다. 허둥대는 나를 놀리는 건 아닌지 궁금해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진짜를 알게 될까 봐 그러지 못하고 자꾸 먼 곳을 바라보게 된다. 못 들은 척해보려고. 내가 그때 겁냈던 건 무엇일까.
같이 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의 들뜬 목소리에서 그만 나는 마음이 말랑해져 버렸다. 굳이 확인까지 했던 '첫 데이트'에서 같이 하고 싶은 게 있다니. 같이라니.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의 손등에 손가락을 대고 가만히 두드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건 우리의 첫 데이트가 맞는 거 같아요.
그와 함께 했던 많은 날 중 유독 그날을 자주 생각한다. 어린아이 같이 들뜬 목소리로 '같이'를 말하던 그 날의 그와 그런 그를 바라보던 나. 한걸음 다가간 내게 두 걸음 다가와 처음을 시작했던 그날의 우리.
이미 끝이 난 지금 자꾸만 처음을 생각하는 나는, 어쩌자고 이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