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것보다 찌질한 게 낫다

쓰기, 공감은 솔직함에서 나온다

by 서작가

나는 '의외로' 일기를 쓰지 않는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내면을 면밀하게 기록하여 내 삶 자체를 글감 삼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참 어려운 일이다.


나를 드러내라고?
진짜 나의 모습을 알면 깜짝 놀랄 텐데?


거의 20년 가까이 남들이 보는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독자(혹은 시청자)가 있는 글이 되었다. 개인적인 글이 아닌 직업적으로 쓴 글들이었기에 나를 굳이 드러낼 일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버릇이 되어 마음먹고 내밀한 글쓰기,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글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일기를 안(못)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부끄럽거나, 윤리적이지 않다거나, 혹은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내 주변인들의 반응까지 생각하게 되어 도저히 나를 까발리는 글을 쓸 수 없었다.

이걸 읽고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지?
비웃으면 어쩌지?
상처 받으면 어쩌지?
굳이 이런 것까지 써야 하나?


글을 쓰는 내내 이렇게 내 마음속 편집자가 끊임없이 물어대서 결국 포기하고야 만다.


멋진 글을 쓰고 싶다.

세련미가 줄줄 흐르는 문장으로 휘감아진 글을 써서 읽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다.

글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인 나를 부러워하게 하고 싶다.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솔직하게 바닥을 드러내며 나를 까발리는 글을 읽을 때의 희열을 좋아한다. 그것이 바로 공감이다.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한데 멋지기만 한 글은 공감의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도 이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멋지기보다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한 노력 말이다.


아이와 여행 다니는 나를 누군가는 돈 많고 시간 많은 자유부인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기억도 못할 어린아이에게 조기교육을 시키는 열혈 엄마라고도 했다. 여행 다니며 좋았던 것만 썼다면 어쩌면 나는 그런 오해를 받으며 공감받지 못할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글 쓰는 마음 한편에 그런 유혹이 없지 않았다.


그냥 '돈 많고 우아한 작가 엄마'로 설정해볼까?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니까 글을 쓰는데 한계가 있고 또 무엇보다 쓰는 내가 재미가 없었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 카드빚을 내서 여행 가는 무모한 사람,

아이를 데려가고 싶어 데려가는 게 아니라 봐줄 사람이 없어 데려가는 대책 없는 엄마,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라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서툰 여행가.


사실은 이게 나인데, 어떻게 '돈 많고 우아한 작가 엄마' 코스프레를 한단 말인가. 아이와의 여행이 늘 아름답게 써진 글만 본 탓에 쓰면서도 너무 거친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재미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못난 엄마인 나를 적나라게 드러냈던 용기가 공감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글쓰기의 기본은 역시 솔직함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유려한 문장과 스킬보다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마음가짐이 먼저 필요하다. 글쓰기에서는 멋진 것보다 찌질한 게 백번 낫다.

이런 거 써도 될까,라고 묻는 마음속 편집자는 과감히 해고하고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첫 문장을 시작해보자.


가장 솔직한 이야기가 나를 작가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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