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다고 잘 쓰는 게 아니더라

쓰기,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버리기

by 서작가

한동안 배우에 관한 트레일러 영상 원고를 쓴 적이 있다. 매월 배우를 한 명 선정해서 그 배우에 대한 짧은 소개와 차기작 예고 등을 담은 짧은 영상물이었다. 선정되는 배우는 그 채널에서 새로 방송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결국 배우 소개를 표방한 드라마 예고라고 할 수 있다.


2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영상물이어서 내용은 거의 정해진 편이었다.


배우의 필모그래피와 연기 철학

차기작 준비 소식

차기작에 대한 기대와 시청 당부


이렇게 이어지는 꽤나 뻔한 구성이었다. 그런데 이 뻔하고 짧은 영상물을 쓰는데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언제 데뷔했고, 어떤 작품을 했고, 수상 경력은 있는지와 같은 기본 조사

평소 연기나 작품을 대한 태도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인터뷰 조사

대표작에서 영상에 활용할 수 있는 하이라이트 장면 조사 등등


겨우 2분짜리를 만들기 위해 며칠 동안 자료조사를 하는 건 기본이다.

그렇게 조사를 하고 나면 결과물은 고작 A4 1장 남짓. 영상물이라서 글은 더 짧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때만큼은 누구보다 그 배우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중 하나가 된다. 2분짜리를 만들었지만 1시간짜리 다큐를 만들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걸리기도 한다. 그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조사 안 해도 이미 다 알고 있고 연기 철학이니 대표작의 명장면 명대사까지 이미 줄줄 꿰고 있다. 자료조사 따위 필요 없이 나 스스로가 '위키백과사전'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 아는 이 배우에 대해 쓰고 싶은 것이 넘쳐 난다.


이렇게 잘 알고 있고 좋아하는 배우, 과연 나는 잘 썼을까?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나는 평소보다 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과물이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였다. 애정을 듬뿍 가진 대상에 대해 쓰려고 하니 무엇 하나 버리기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이 배우는 이 작품을 빼고 말할 수 없지. 그때 인터뷰에서 이 말을 했는데 빠뜨리면 안 돼. 그 드라마에서 이 장면, 이 대사를 꼭 넣어줘야지...... 이러다 보니 2분짜리 하나 만드려다가 2시간짜리 인간극장을 만들게 생겼다.


잘 안다고 반드시 잘 쓰는 건 아니다.


때문에 '아는 것이 없어서' 쓰기가 두렵다면 잘 안다고 잘 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좀 마음이 편해지려나. 강준만 교수도 <글쓰기가 뭐라고>에서 "뭘 알아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알게 된다"라고 했다.

20여 년간 분야와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쓰고 있는 나도 이 말에 크게 공감한다. 뭘 알아야만 쓸 수 있다면 나는 모르는 게 없는 최고의 척척박사가 되었을 것이다.


혹시 글을 쓰기 위한 전제조건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쓰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때부터 알아가면 된다. 쓰기부터 시작하면 어차피 공부를 할 수밖에 없으니 일단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글을 마무리할 때쯤엔 이미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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