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때, 분위기 갖추기
두 번째 책 '체크인 러시아'를 쓸 때 나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오전 9시까지 아이 학교 보내기와 집안일 등 마무리
-오전 10시까지 씻고, 아침 식사 등 개인적인 일
-오후 2시까지 쓰기
-오후 3시까지 러시아에 살고 있는 공저자와 내용 확인 및 조율 (러시아와 시차 때문)
-이후 아이가 하교하면 다시 주부 복귀
지금 생각해도 이렇게 규칙적일 수가 없다.
내 인생에 처음이자 다시없을 규칙과 집중력의 시간들이었다.
결혼 전이나 아이가 없을 때만 해도 내 스케줄에 따라 밤이든 낮이든 내 시간을 쓸 수 있었다. 타고난 저녁형 인간으로 글은 당연히 밤에나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이 다 그렇듯 언제나 내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완전한 타의로 아침형 인간으로 개조(?)되었다.
집에 혼자 있는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었던 만큼 아이가 오기 전까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시간이 허락된다고 글이 무작정 써지는 게 아니었다. 내가 무슨 달리기 선수도 아니고 '준비, 땅!' 하는 순간 글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조금 있으면 아이가 집에 오고 그럼 나는 더 이상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 글감이여 오라, 영감(inspiration)이여 내게 오라고!
내가 택한 방법은 '차이콥스키'였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내게 가장 '러시아다움'을 느끼게 해 준 건 차이콥스키 음악이었다. 우수에 젖은 듯 아름다운 선율이 러시아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직접 가보고 알았다. (사실 클래식 잘 모름)
유튜브에서 '차이콥스키 베스트' 이런 종류를 틀어놓고 커피 한잔 마시면 어느새 '러시아 모드'가 켜지는 것 같았다. 귀에 익은 곡이라도 나오면 모스크바에서 차이콥스키 생가에 갔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백조의 호수를 보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쯤 되면 러시아 여행에서 받았던 '영감'이 슬금슬금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아 자판을 두드릴 수 있었다.
'영감'이란 마치 그분이 오시는 것처럼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를 치듯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때로 그러기도 했다.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강렬하게 글을 쓰고 싶은 욕구, 번쩍 눈에 띄는 글감 같은 것만이 영감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 순간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그분이 그렇게 자주 올리 없는 것처럼 영감의 순간도 가끔이었다.
그래서 영감의 순간을 내가 만들어보는 것도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그때 나에겐 차이콥스키였지만 누군가는 카페의 적당한 소음과 사람들 속에 있는 순간일 수도 있고, 진한 커피 향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난 후일 수도 있고 내게 특별한 감정을 일으키는 책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내 글쓰기 욕구를 자극하는 순간과 분위기는 무엇일까?
그놈의 영감, 기다리다가는 쓰지 못할 수도 있다. 기다리는 것은 그만하고 불러들이자.
영감이시여 이리 오소서! 내가 글을 쓰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