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겨자먹기로 회사에 다닐 바엔 울며 겨자를 먹겠다4

by 나만아는낭만

4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도 나는 학교에 대해 잘 몰랐다.

학생이 아닌 교직원이 되어 바라보는 학교는 내가 알고 있던 그 ‘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세상이었다.


학점, 강의실, 교수님, 시험, 도서관, 학생식당 정도가 학교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학업이 아닌 업무로 평가받고, 강의실이 아닌 행정실로 출퇴근하며, 교수님 대신 처장님과 팀장님을 만나고, 문서를 상신할 때마다 시험을 치는 기분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학교라는 곳은 학생 때는 절대 보이지 않던, 전혀 다른 인간 군상들이 뒤엉켜 사는 또 하나의 작은 사회라는 것을.

좋든 싫든, 나는 그 세계에서 ‘진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4. 내가 몰랐던 두 번째 학교 이야기 - 교수님은 안 무서웠는데 팀장님은 무섭다.


팀장님은 교직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분이었다.

'박00 팀장님' 밑에서 일한다고 하면 "아, 팀장님 어려우신 분인데 고생 좀 하겠네요." 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차가운 안경 너머로 (정말이지 안경마저 차가워보였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시는 것 같은 날카로운 눈빛, 그 시절의 나는 그녀 앞에서는 늘 작아졌다.


"000 선생님, 잠깐 자리로 와보세요."


다른 부서들과 다같이 쓰는 넓은 개방형 사무실 때문에 팀장님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면, 파티션 사이로 침묵의 파동이 퍼졌다.


팀장님 앞에서 작아지는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그녀 앞에서는 더더욱 작아졌다. 특히 고 차장님. 사람은 좋은데 팀장님 보시기엔 업무 능력이 상당히 난감했던 모양인지 거의 매일같이 자리로 호출되어 야단을 맞았다.


사소한 업무 실수도 팀장님 앞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내 업무들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에게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일이었는데, 온라인 증명 발급 신청이 대부분이었지만 졸업생들의 경우 우편으로 받고자 하는 수요도 꽤 많았다. 특히 해외 우편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배송시일이 걸리다보니 빠른 처리가 중요했다.

어느 날 내 실수로 해외로 보내줘야하는 우편발송 건들 중 하나가 누락되었다. 그 일로 팀장님은 나를 불러 실망했다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질책없이 나에게 실망했다는 그 말은, 그 어떤 꾸중보다도 더 날카롭게 내 마음을 찔렀다.

타고난 성향은 어쩔 수 없는지라 지금도 내 성격은 그다지 꼼꼼한 편이 아니다. 그러나 팀장님으로부터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업무에 있어서 두 번, 세 번씩 실수한 것이 없는지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팀장님이 늘 무서웠던 것만은 아니다.

아래 직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과 사고들을 팀장님은 언제나 침착하고 정확하고 단호하게 처리하셨다.

사물함 규정을 지키지 않아 여러 차례의 경고 끝에 물건을 처분한다는 통보를 받고 달려와 따지던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학생, 게시물 승인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전단지를 부착하던 험상궂은 아저씨, 우리 부서와 조정이 필요한 일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진행하려다가 발생하는 부서 간의 여러 가지 갈등상황 속에서도 우리 팀은 팀장님이 있어 언제나 든든했다.


조직이라는 것이 어떻게 굴러가는건지, 그리고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많이 배웠던 시기였다.

능력이 뛰어나든 부족하든 혼자 일할 수는 없고, 팀장이란 결국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부서에는 정직원들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해서 계약직 선생님이 두 분 더 있었다.

전공은 달랐어도 모두가 동문이었고 나이가 비슷한 또래였지만 우리는 결국 친해지지 못했다. 각자의 업무가 바쁘기도 했고, 대놓고 드러나는 일은 없었으나 분명 정규직과 계약직 간의 암묵적 계급이 존재하던 그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친목을 도모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그들 중 한 명이 노골적으로 정규직 전환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들 사이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