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업 육아휴직 현실 2

by 나만아는낭만


면접과 면담.

두 단어의 차이는 극명하다.


여러 번의 이직을 했었기 때문에 면접이라면 이골이 났다. 나는 엄연한 재직자이고 자발적으로 팀을 옮기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육아휴직 후 회사로의 복귀를 원했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회사는 면접을 요구했고, 내가 클레임하자 교묘하게 '면담이라고 생각하세요' 라며 말장난을 쳤다.




뒤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나는 그 날 가지 말았어야 했다.


편도로만 1시간 40분이 걸리는 그 곳으로 향하면서 1년 4개월만에 출근하는 기분으로 내심 설레기까지 했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스스로가 좀 애잔할 지경이다.




예정된 시간보다 20-30분 정도 빠르게 도착해 골목을 서성이며 '면담 준비'를 했다.

사실 면담만으로도 긴장되었다. 일적으로 누군가, 특히 상사와 대화를 해본 것이 얼마만이었던가.




가벼운 사담조차 대화를 나눌 때면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뭐더라.','그걸 뭐라고 말하지?' 를 추임새처럼 집어넣으며 동네 아기엄마들과 깔깔거리던 일상들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회사원으로서의 나를 찾고 그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미리 프린트해온 이력서와 전날 밤 형광펜으로 칠해두었던 글귀들을 살피며 몇 번이고 말을 되뇌였다.




시간이 되어 로비로 갔고, 출입구는 닫혀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원증을 찍고 들어가던 곳이었는데.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앉아있던 직원이 기웃거리던 나를 먼저 발견하고는 "아 혹시 면접보러 오신 000 님 맞으신가요?" 라고 말을 건넸을 땐 기분이 묘했지만 나도 모르게 "네, 네." 하고 대답했다.




"아 그럼 인터뷰룸으로 안내해드릴게요."




내가 일했던 회사. 회의하고 커피를 내려마시고 잠시 잠깐 동료들과 수다를 떨던 곳들을 지나쳤다. 아무도 나를 몰랐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완벽한 이방인이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별 수 없지- 라고 생각했다.




인터뷰룸으로 두 여자가 노트북을 들고 들어왔다.


나까지 세 여자가 각자 자신의 소개를 마치고,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었다. 그런 자리에서 "어, 가만. 이거 혹시 면접인가요?저는 면담인줄 알고 들어왔는데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안타깝지만 내게는 없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셨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그 일을 하면서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행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상사가 당신에 대해 업무적으로 줬던 피드백과 강점, 약점을 설명해주세요."


"어떤 생각의 변화와 계기들로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이어왔는지 궁금해요."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하는 편인가요?"


"여러 작업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페이지의 목업 자료에요. 보시고 구체적으로 평가를 좀 해주세요."


"최근에 인상깊게 보았던 브랜드의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그 이유를 영어로 설명해주세요."


.


.


.



약 한 시간동안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누구도 그걸 면담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완벽한 면접이었다. 그것도 수 차례 보았던 경력직 면접들 가운데서도 업무적으로 심도있고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편이었고, 1년 4개월동안 애만 키우던 여자에게는 참 어려운 면접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역대급으로 말아먹은 면접이기도 하다. 시간이 갈수록 두 여자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도 느꼈고, 나 역시 한참을 침묵하다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를 반복했다. 뭐라도 말하자. 머릿속으로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최대한 쥐어짜냈고, 그 모든 생각들이 입밖으로 나오면서는 한번 더 생각을 거쳐야했다. 면접에 적합하지 않은 단어들이 종종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그게 최선이었다. 그 이상의 표현은 정말이지 생각나지 않았다.


난 정말... 그 자리에서 땅으로 푹 꺼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 이미 난 내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로 돌아가서 다시 일을 시작해야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두렵고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처럼 잘 해낼 수는 없겠지. 하지만 결국 다시 적응하고 익숙해질거야. 그렇게 여러 번 내 마음을 다독이며, 잠이 오지 않는 여러 밤을 보냈었다.




그런데 회사는 그런 나를 불러, 확인사살시켜버렸다. 아주 잔인하고 인정머리 없는 방법으로.


그들은 내가 돌아오지 않길 바랐던 걸까? 복직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제일 먼저 육아기 단축근무를 사용해야할 것 같다는 내 요청사항이 달갑지 않았던 걸까? 왜 나한테... 이렇게 대하지?


아, 그렇지. 이건 그냥 내 사정일 뿐이구나. 그냥 이게 현실이구나. 그냥 내가 받아들여야하는구나.




마지막에 이건 그냥 개인적인 질문이라며, 잔뜩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는 내게 물었던 그 질문. "복직하실 수는 있는건가요? 아이를 돌봐줄 시터를 구하셨다거나 하는... 아무래도 현실적인 문제들이다보니까요."


그게 곧 회사의 현실이었다.


나는 눈물이 많은 편도 아니고, 가족이라 할지라도 남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러나 그 날은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울고 말았다. 가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을 다칠 일도 없었을텐데-하는 후회만이 맴돌았다.





모든 회사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또 어쩌면 내가 유난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복직을 하기도 전에 유난히 그렇게 마음 고생이었던건지...


그땐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유난인걸로. 나만 잘하면 되는걸로.




그 날 썼던 일기에는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담담하게 쓰여있다.


"어떤 이유로든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 어렵거나 두려워도 끝까지 해보려고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누가 뭐래도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러니 상처받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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