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빠져 있던 고등학생을 소환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라미 말렉이라는 프레디 머큐리 역할의 배우가 맘에 들지 않았고 퀸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어서 미뤘던 영화.
음악영화 광이 이것을 안 보면 안 되지 싶어서(사실 영화 시상식에 자꾸 노미네이트 되니 보게 됨)
보았는데 연속으로 두 번을 보아 버렸다.
나는 같은 영화를 한 번 이상 잘 안 보는 편이다.
영화를 분석한다기보다는 보는 순간의 감동과 스토리 전개의 궁금증을 즐기는 편이라 스토리를 이미 아는 상태의 것은 다시 봐지지가 않더라.
그러나 음악영화는 스토리보다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본다는 느낌, 그리고 매번 그 순간의 감동이 새롭게 느껴진달까.. '위플래쉬'이나 '라라 랜드' '비긴 어게인'과 같은 음악 영화는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는 경우이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실제 퀸의 '라이브 에이드' 런던 공연 실황을 다시 찾아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안 찾으면 이상하리만큼 궁금해진다. 그 공연을 보면서 현실의 프레디 머큐리(영화보다 좀 더 남성스러운)의 '짝다리 춤'이 멋지게 보이는 건 나뿐이었을까. 그는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는데 나는 왜 그 연청색 청바지에 흰색 러닝 셔츠, 두꺼운 벨트가 패셔너블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네... (너무 벨트를 꽉 조이긴 했어.. 피아노 치는데 뱃살이 LOL..) 기승전 외모 얘기는 그만 접고;)
퀸에 대한 옛 생각으로 넘어가서.
고등학교 시절인 90년대 중후반, 처음 접한 퀸의 노래는 'Love of my life'였다. 그 시절 '나우'와 같은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되었던 것 같다. 부드러운 아카펠라와 같은, 그리고 가사도, 선율도 파퓰러 한 이 곡이 맘에 들어서 다른 퀸의 노래를 찾아들었다.
두 번째로 접한 곡이 바로.
"Bohemian rhapsody"
로큰롤과 클래식, 오페라 그 어떤 장르도 좋아하지 않았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그 곡을 듣고 영화 속 EMI 음반사 사장처럼, '이 무슨 해괴망측한 얘기야? 갈릴레오는 모고 비쉬 밀라는 먼데?'라고 생각했었다.
" 엄마 나 방금 그 남자를 죽였어요 "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것은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러는 와중에 그 시절 좋아하던 가수인
중국의 "Wong Faye"(왕가위 감독 중경삼림의 머리 짧은 패스트푸드점 점원이라고 이야기하면 많이들 아시더라)가 보헤미안 랩소디를 불렀다. 왕페이의 목소리는 아일랜드 밴드 Cranberries의 보컬 돌로레스와 흡사하다. 실제로 Dreams라는 크랜베리즈의 노래를 번안해서 '몽중인'이라는 광둥어 버전, 북경어 버전의 곡을 냈고 중경삼림에도 메인 테마곡으로 나온다.
'크랜베리즈'가 부른 '보헤미안 랩소디?'를 상상해 보시라.. 음.. 파워풀한 가창력과 고음이 필수인 이 곡의 전개상.. 상상만 해도 아니올시다지 않나.
그러나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할 거야."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멋진 왕페이는 그 노래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잘 불러냈고 그 시절 페이의 앨범을 다 살 정도로 팬이었기에 이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물론 "왕페이의 버전"으로.
여기까지가 퀸과 나의 인연이다.
"We will rock you" 나 " We are the champions" "Don't stop me now " 와 같이 스포츠 방송, 월드컵 등에서 그들의 히트 넘버들을 연신 틀어주니 귀에 익은 곡이 많아졌을 뿐. 그 이후 좋아하던 락 장르는 모던락이나 얼터너티브 락 정도이다. " Radiohead" "Oasis"와 같은 영국 밴드들의 적당히 대중적인 곡을 즐겨 들었고 그마저도 20대 중반부터는 애시드 재즈와 보사노바, 클래식을 듣기 시작하면서 록 음악에 조금씩 소홀해졌다 할까. 물론 명불허전 콜드플레이는 지금도 좋아한다.
20년이 흘러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퀸의 곡을 정말 많이 알고 있고 그들의 노래를 좋아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음악이 얼마나 내 삶에 침투해 있었는지 몰랐었다.
6분짜리 Bohemian Rhapsody는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퀸의 다큐멘터리 Days of Our lives(BBC, 2011)에 따르면 이 곡은 세 개의 다른 곡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그 곡들이 어떻게 나눠지는지 언급하진 않았지만 다른 스타일의 세곡이 합쳐졌다는 것은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마치 클래식 콘첼토의 악장이 나눠져 있듯이 이 곡도 세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첫번째는, 퀸 멤버들의 아카펠라 화음과 함께 시작하는 파워풀하고 화려한 피아노 독주.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앞부분 피아노 솔로를 연상시키는 멜로디. 강렬한 독백성의 가사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락발라드가 1악장이라면
갑자기 급전환하는 2악장은 오페라를 듣는 듯하다. 스크라무쉬, 갈릴레오, 피가로, 비쉬밀라 등 알수 없는 가사들이 나온다. 가사의 해석으로만 보면 아버지를 죽인 주인공이 법정에서 사람들의 지탄을 받기도, 동정을 받기도 하는 내용. 실제 갈릴레오 부분은 드러머인 로저 테일러가 불렀다. 영화에서도 나오는데 계속 음을 높이라는 프레디의 주문에서 까칠한 성격의 로저가 "얼마나 더 높이라고, 그 이상 높아지면 개나 들을 수 있어" 라고 이야기 한다. 솔직히 여기서 빵 터진다. ㅋ
마지막 악장은 브라이언의 멋진 기타 솔로와 함께 시작해 거세게 휘몰아치다가, 프레디의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아련한 페이드아웃성의 가사로 끝을 낸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구조이며, 가사도 하나의 영화 스토리로 완결되며
퍼펙트하게 조합된 팝과 클래식의 조화라는 생각이 드는 이곡. 크로스오버의 끝판왕.
한곡 한곡 그 자체만으로 멋진 세곡을 합쳐 탄생한 " 보헤미안 랩소디 :)"
늦바람이 무섭다고 나는 이제서야 이곡을 곱씹기 시작했다.
1991년에 죽은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이 30년이 지난 우리의 삶에도 얼마나 녹아 있는지... 나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몰랐던 퀸의 재발견이다. 프레디 머큐리의 연인이었던 메리와 다른 멤버들, 그들의 자손들에게 더 많은 저작권 수입을 가져다 줄, 팬 한 명 추가요!
더불어 그들의 수많은 곡들을 다시 접하면서 취항저격당한 곡들 몇 개를 더 소개한다.
기존에 알던 전형적인 록스타일의 퀸의 노래와는 거리가 있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더 새롭고 좋게 느껴진다.
Killer queen(1974)- 프레디 머큐리 작곡.
그 시절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가사와 멜로디.
Another one bites the Dust (1980) - 존 디콘(베이시스트) 작곡, 마이클 잭슨이 이 곡을 꼭 싱글로 내야 한다고 강추했다던데,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과 느낌 비슷.
Under pressure -featuring David Bowie(1981) 이것도 존 디콘이 첫 베이스 리프를 치다가 만들게 된 곡이라고 한다. 역시 볼매 베이시스트 존이다.
데이비드 보위와 프레디 머큐리가 따로 녹음실에 들어가서 각각 자신의 멜로디를 만든 다음 합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퀸의 다른 멤버들은 이 곡이 약간 따로 노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나는 그 불협화음인 듯한 느낌이 좋다. 전형적이지 않은 전개라서. 특히 뮤직비디오로 꼭 보시길.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너무나 잘 만들어진
" 웰메이드 음악" Queen.
이들의 곡이야 말로 시대를 불문하고 100년, 200년 후에도 들려질 수 있는 "고전" 이 아닐까.
많은 양의 콘텐츠가 생산되는 현대,
생산적인, 불변의 콘텐츠가 무엇인지
그 본보기를 보여 주는 그들의 음악.
퀸. 당신들을 존경합니다.
P.S :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순수한 팬심으로 쓴 글입니다.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