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루스트 Oct 06. 2024

엄마, 그래서 나 조리원 가지 말라고?

MZ세대 딸 vs. 베이비부머세대 엄마, 우리 함께할 수 있을까?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자야지
차가운 침대에서 아기가 혼자 자는 거 그것도 그렇다


나는 우리 엄마가 이럴 줄 몰랐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고지식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나에게 "조리원을 꼭 가야 하나?"라고 말했다. 덧붙여 본인이 나를 낳았을 때 하루 만에 바로 퇴원해 집안일까지 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시어머니도 아니다. 친정엄마다. 엄마 그건 옛날이잖아!




마치 비정한 엄마가 된 기분

며칠 전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 친구의 딸이 올해 서른아홉에 첫째를 출산했단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어렵게 얻은 아이라 조리원이 못 미더워 가장 비싼 곳으로 예약했지만, 그 마저도 취소하고 친정엄마인 엄마 친구와 처음부터 함께 육아를 하고 있단다.


친구로부터 그 말을 들어서일까. 엄마가 조리원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다. 시작은 "조리원을 꼭 가야 하나?"였다. 그러면서 "조리원 가면 엄마랑 아기랑 떨어져 있는데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자야지 차가운 침대에서 아기가 혼자 자는 거 그것도 그렇다"라며 "엄마는 너를 꼭 안고 키웠다"라고 말했다.


'차가운 침대', '아기가 혼자'… 나는 벌써 나 좋자고 갓난아기는 나 몰라라 하고 조리원에서 푹 놀다 오려는 비정한 젊은 엄마가 되어버렸다. 조리원에서 새벽수유 안 받고 싶다고 했다간 애 굶기는 엄마가 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나는 우리 엄마가 이럴 줄 몰랐다. 아직 본 적도 없는 손자를 자기 딸보다 더 챙길 줄 몰랐다.

조리원비 지원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조리원 가서 몸조리 잘하고 나오라고 격려는 못해줄 망정, 덤으로 죄책감까지 심어주다니.


엄마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엄마, 그래서 나 조리원 가지 말라고?"라고 물었다. 엄마는 뭐랬더라. 첫째니까 가보든지 정도로 말했던 것 같다. 뒤이어 나는 "나 근데 조리원 갈 거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진. Pixabay



천기저귀를 쓰니, 할 일이 뭐가 있어?

이날의 대화 주제는 조리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젖병 얘기가 나와서 젖병 세척과 소독을 식기세척기로 할 거라고 말하자 엄마는 "젖병 그거 몇 개 된다고"라며 "직접 삶는 게 가장 좋다"라고 말했다. 아니, 엄마 나도 알지. 근데 내 건강 지키면서 일 좀 편하게 해 보려고 그러는 거지! 직접 삶는 건 품이 많이 들잖아.


그나마 육아용품 비용을 절약해 보겠다고 젖병 세척기와 소독기를 따로 사지 않고 집에 있는 식기세척기를 쓸 생각인데 세척기랑 소독기 따로 샀다간 아주 돈 낭비(라고 쓰고 돈지랄이라고 읽는다)라고 욕먹었을 상황이다.


엄마의 발언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으니.

"육아 어렵지 않다"라며 "엄마가 부지런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천기저귀를 쓰니, 일회용 기저귀 쓰는데 할 일이 뭐가 있어?"라고 말했다. 엄마, 이거 나 위로해 주려는 말 맞아? 결국 나를 갈아 넣으라는 거잖아.


여기까지 들으니 조금 과장하자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사나는 그녀에게 육아 도움을 받아볼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임신 준비 시기부터 미리 말을 꺼내 놓았다.

그런데 이거, 벌써부터 아닐 거 같다.



엄마 말만 잘 들으면 왜 싸워?

엄마 친구 중에는 딸 엄마가 많다. 그들은 대개 딸의 육아를 도와주고 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엄마 역시 내 육아를 도와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엄마의 노동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육아도우미 월급 정도의 사례는 생각하고 있다.


나도 친정엄마에게 육아 도움을 받은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내 친구는 친정엄마와 엄청나게 대립했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친정엄마와의 관계가 걱정이 됐다. 엄마한테 엄마 친구들은 딸과 육아하면서 다투지 않느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엄마 말만 잘 들으면 싸울 일이 뭐가 있냐"라며 "너나 나 뭐라 하지 마"라고 했다.


엄마의 생각은 엄마 말을 듣지 않는 딸 때문에 다툼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즉, 다툼이 생기면 딸이 문제인 거다. 너는 내 말만 들으라는 거다. 나도 내 아들인데 엄마 생각만 따를 수 있을까?


사진. Copilot



MZ 딸 vs. 베이비부머 엄마, 함께할 수 있을까?

엄마와의 통화 내용을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그때는 그렇게 해서 엄마 몸이 다 상했다"라며 "아무래도 세대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엄마와 나의 나이차이는 대략 30살. 맞다, 우리 엄마 60대지. 아무리 또래보다 열린 엄마라고 해도 60대는 60대구나. 언니한테 빨리 결혼해서 아이 낳으라는 거 보면.


이날 남편과 나, 우리는 우리끼리 죽어나더라도 우리끼리 키우는 게 낫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게 됐다.


신생아를 키우는 일은 정신적, 체력적으로 소위 죽어나는 극한의 일인데 식기세척기를 쓰기 위해, 하이체어를 쓰기 위해… 밖에 엄마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신문물(?)을 쓰기 위해 엄마한테 일일이 설명하며 눈치까지 보게 되면 정말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 한 번 키워보고(?) 정말 죽을 것 같을 때 도움을 청해볼까 생각 중이다. 무조건적으로 나에게 맞춰주는 자애롭고 편안한 엄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도움을 청할 엄마가 있어 감사하다. 그때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나의 구세주로 보일테니 무한 감사하는 마음만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돌돌트'라는 함정에 빠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