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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Jan 06. 2024

겨울나무

며칠 계속 흐리던 하늘이 오늘은 정점에 달했다.

새벽에 비라도 내렸는지 하늘이 온통 잿빛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맑고 청량한 하늘을 본 적이 언제쯤이었는지....

날씨도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기만 하다.


펑펑 눈이 내리고 영하 15도를 기록했던 그날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지경이다.

작년, 때를 놓쳐 가게 한 귀퉁이에 세워 놓았던 2인용 눈썰매가 그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년 동안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던 여러 가지 모양의 눈 집게도 품절이 됐다.


눈썰매와 눈 집게를 새로 주문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은 고민이 되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재고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겨울이 시작이니 주문을 했다.

지난 봄, 여름, 가을을 지나고 다시 겨울까지 쌓여 있던 그 자리에 새로 들어온 눈썰매가 턱 하니 또 자리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야속하게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포근해지기 시작했다.

보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하지만, 겨울은 아직 한참 남아있지 않은가!

펑펑 눈 내린 뒤 꽁꽁 얼어,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겠다고 떼쓰는 그날은 또 돌아올 것이다.

방학이 시작되기도 했으니 이제 겨울답게 추워질 날씨를 기다리기로 하자.


© bbiddac, 출처 Unsplash


요즘 몇 년 동안 애용하던 산책로를 바꿨다.

너무 익숙한 산책로가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코스가 짧은 점이 아쉬움이 많았다.

다른 곳이 없을까 살펴보다 가끔 은행을 이용할 때 보던 수로로 나 있는 수변공원을 한번 가볼까 싶어 무작정 그 길을 걸었다. 앞에 아줌마 두 분이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고 있어 그 뒤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배다리에서 시작되었을 수로의 물줄기가 제법 세차게 흐르고 있었고, 수로 옆으로는 멋들어진 버드나무가 죽 늘어서 있다. 중간중간 나무로 된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고 옹기종기 모인 오리들은 차가운 물속에서도 유유자적하다.

말라비틀어진 갈대들이 아직도 그 형태를 지닌 채 겨울의 쓸쓸함에 운치를 더하고 있다.


수로 옆으로 걷던 길은 막바지에 이르러 빙 돌아서 반대편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렇게 한 바퀴 돌면 되겠구나 생각하던 그때 앞에 가던 두 아줌마가 코스를 벗어나 차도로 향했다.

2차선 횡단보도 앞에 지금 걷던 곳보다 더 큰 수로 산책로가 펼쳐져 있었다.

서둘러 따라가 보니 이곳도 많은 분들이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코스는 어디까지 뻗어 있는 것인지, 돌아서 다시 이쪽으로 올 수는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그 아줌마들을 조금 따라가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늘 가던 산책로 보다 풍경은 조금 더 단출하고 밋밋했다. 하지만, 코스가 길어서 하루 만보를 충분히 채울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가 매력적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 산책로를 애용하고 있다.

가게 옆 산책로는 아기자기하고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새들이 많은 반면, 이 수로 산책로는 풍경이 물과 버드나무, 그리고 오리와 겨울 철새를 볼 수 있다.



어느 날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자기 계발 영상을 듣고 걷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냥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내 마음을 바라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확언을 중얼거리며 걷기도 한다.


두 산책로 어느 곳이든 앙상한 겨울나무가 펼쳐져 있다. 그 나뭇가지 사이로 구름으로 잔뜩 흐린 하늘이 보인다. 모든 것을 다 떨구어 낸 겨울나무....

그 나무들을 보면 예전에는 헐벗은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이고 뭔가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보는 겨울나무는 그 안에 풍성한 봄의 씨앗을 품은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떨구어 낸 자연 그대로의 민낯을 당당하게 드러낸 모습이 홀가분해 보인다.


잎 한 톨 없이 초연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의 모습에서 나는 움트는 봄의 생명과 여름의 푸르름, 가을의 찬란함을 동시에 느낀다.  

겨울나무의 단순한 자태에서 그 어느 계절보다 멋들어진 의연함과 나무 본연의 아름다움을, 나무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의 큰 이치를 깨닫는다.



이 겨울, 나도 그저 한 그루 나무처럼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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