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사진을 찍는 거창하지 않은 이유
필름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편리하고 빠른 디지털카메라를 두고 귀찮고 느린 필름 카메라를 드는 이유가 적어도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세상에 나온 지 몇 년 안 된 쌩쌩한 녀석들이 아닌 어디 옷장 속에 박혀 있기도 굴러 다니기도 하면서 가끔은 촬영자보다 연식이 더 된 카메라를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들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름도 사야 하고, 다 찍으면 현상을 맡기러 가야 하고, 오래된 만큼 주기적으로 점검도 받아야 하고, 행여나 망가질까 아기 다루듯 다뤄야 하는데 ‘그냥’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고? 변태가 아니고서야! 멋있어 보여서, 같은 이유라도 하나 있을걸?
얼마 전 롤라이 35를 들여왔다. 안 그래도 필름값이 계속 올라 돈깨나 드는 고급 취미인데 새 카메라를 산다고 따지고 보면 50년 가까이 된 카메라라 새 것이라 하기도 애매하긴 하다. 거금을 들였으니 돈이 샘솟나 할 수 있겠지만 주말 하루 일 해 근근이 살아가는 배고픈 대학생에게 무슨 돈이 있겠어. 전에 사용하던 자동 필름 카메라와 책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어린 날의 열정을 헐값에 넘기며 겨우 쥔 돈을 홀랑 갖다 바쳤지 뭐.
구매와 수리를 거친 3주의 기다림과 초점과 노출, 심지어 거리까지 모두 수동으로 맞춰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도 롤라이 35를 들여온 이유는 거창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별 거 없다. 솔직함. 수백 개의 단어보다 사진 한 장이 순간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애정을 갖고 있는 피사체를 담다 보면 솔직함과 다정함은 비례하는 건지 이리도 다정할 수가 없고, 이 마약 같은 다정함이 귀찮아도 돈이 많이 들어도 필름 사진을 찍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 ‘찍히는’ 것으로 시작해서일까? 필름 현상을 하면 90프로 이상이 인물 사진일 정도로 사람들을 많이 담는다. 사진이 찍히면서 결과물을 기다리는 설렘이 좋아 사진을 시작했고 순간의 시선과 감정이 응축되어 담겨진 사진의 간질간질함 때문에 계속 셔터를 눌렀지만, 간혹 보이는 솔직함을 넘어선 적나라함이 두려워 카메라를 책장 구석에 넣어두고 한참을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잠들어 있던 유리 눈을 다시 꺼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깊은 곳에서 솔직함과 다정함이 배가 되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구가 들끓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그 어렵다는 목측식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아차, 싶어도 이미 늦었다. 이제는 감정뿐만 아니라 카메라에 대한 이해도도 숨김없이 맺히겠지.
한 장 한 장 공을 들여야 하기에 한 롤에 꽤 오랜 시간이 담길 것이고 1km가 대충 얼마쯤인지 가늠을 못할 정도로 거리 감각이 꽝인 내가 이 친구와 친해지려면 꽤 시간을 들여야 하겠지만 처음 책가방을 매고 학교에 간 날만큼 설렌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카메라를 들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연락 한 통 해야겠다. 오늘 카메라 가져갈게, 내가 진심으로 정을 쌓은 사람들에게만 건넬 수 있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