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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Apr 29. 2023

환승연애! 환승크록스!

문신 같은 크록스를 깜빡했을 때

"애들 신발은?"

"신발?"

"아쿠아슈즈 안 챙겼어 ?"


'아.. 맞다..'


시선을 아래로 떨구어보니 나도 아이들도 운동화. 하루종일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인데 아쿠아슈즈를 깜빡했다. 바닷가  숙소를 잡아두고 운동화만 챙겨 오는 엄마.

그래 장하다.





1년 살기 집을 계약하러 제주로 왔다.

계약만 하고 돌아갈 것 인가, 내려온 김에 여행을 할 것인가.한 달 후면 살게 될 이곳이 더 이상 여행지의 느낌은 아니라서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바다를 좋아하는 두 딸을 생각하니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 마지막 제주 여행이라 생각하자. 4인 가족의 4박 5일 짐은 캐리어 4개. 일반 캐리어 2개와 큰아이는 민트색 미니 캐리어 작은아이는 요즘 한창 유행인 시나모롤 캐리어. 이렇게 1인 1 캐리어를 들고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월정리 바닷가. 남편과 한참을 과몰입해서 챙겨봤던  '환승연애 2'의 촬영지인 바로 그곳. 골목골목마다 티브이에서 보았던 가게들이 즐비하고 고개를 빼꼼 들어보면 저 멀리에 숙소로 나왔던 근사한 공간도 보였다. 여행이라 기쁜 마음이었지만 아쿠아슈즈에 대한 걱정 또한 커져만 갔다. 바닷가 벤치에서 환승연애를 떠올리던 그 순간.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환승. 그래 크록스에서 환승하자.

어차피 여행지에서 갑자기 크록스를 구입하는 건 불가능하니깐.




우리는 제주에 오면 꼭 다녀갔던 '김녕 킹마트'로 달려갔다. 월정리에서 가깝고 여행을 올 때마다 장을 보러 갔던 마트. 나는 비장한 각오로 마트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부터 물놀이 장비와 간편한 반바지 각종 장난감과 식품까지 없는 게 없었다. 그런데 신발은 보이지가 않았다. 빠르게 레이더를 돌려 신발 코너를 찾아 나섰다.


제발. 신발아 나타나줘.


그때 저 멀리 희미하게 삼선 슬리퍼가 보였다. 아이들 사이즈가 혹시 있나 살펴봤지만 역시 없었다. 이걸 어쩌지? 실망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그 순간. 하얗고 뽀얀 자태를 뽐내고 있는 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하얀색 실내화였다. 하얀 실내화 뒤로 번쩍이는 후광이 비추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매일 신고 있는 실내화! 구멍이 있어 물이 잘 빠지고 작은 돌들 위에서 소라게를 잡을 때 발등과 발목을 잡아주어 안정감 있는 실. 내. 화.

건조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에 5000원씩 가성비도 훌륭하다.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치고 바다로 돌아왔다.

우리는 15000원 치 실내화를 똑같이 나눠 신고 바다로 나갔다. 얀색의 통일감은 우리를 사뭇 비장하게 만들었다. 가볍고 편리하고 착용감도 크록스 못지않은 실내화를 구입하다니 일주일에 한 번 실내화를 세탁하는 순간이 오면 문득 제주 바다가 생각 날 것 같다.




여름이 오고 있다.

문신 같은 크록스를 깜빡했을 때 당황하지 말고 근처 마트로 달려가 하얀 실내화를 들고 계산대로 향하자.

시몬스 침대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착용감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가성비도 좋다.





사진출처_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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