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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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jwy


어느덧 햇수로 9년 차에 접어든다. 처음으로 변기를 붙잡고 위에 있는 음식들을 억지로 게워냈던 날로부터.


당시의 나는 무척 말랐었다. 내 삶에서 가장 몸무게가 적게 나갈 때. 호리호리한 나의 몸을 사랑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사랑하지 못했던 날들. 음식물을 섭취하길 거부했고, 배가 차게 먹은 날에는 그와 비례하지 않는 강도의 격한 운동으로 칼로리를 채웠다. 꼭 음식이 독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를테면 가족 행사라던가 교수님과의 식사 자리 등 뺄 수 없는 성대한 식사 자리를 위해서는 전날부터 식사를 굶었다. 그렇게 해야 성대한 식사를 하더라도 살이 찌지 않을 테니까.


문제의 발단은 스물한 살에 시작했던 다이어트복싱이었다. 체육관에서는 다이어트복싱뿐 아니라 주짓수, 크로스핏 등을 모두 체험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은 시간은 많고 돈은 얼마 없었다. 꽤 무리해서 끊은 6개월 회원건을 뽕 뽑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아침과 저녁을 모두 운동에 투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살이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늘 보통 체형의 내가 마름을 향해 갔던 것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바지 품이 남았다. 홀쭉해진 내 배를 보면 뿌듯했다. 복근이 드러나 보이고, 팔에도 근육이 단단히 잡히자 욕심이 생겼다. 더더욱 예쁜 몸을 갖고 싶었다.


곧 식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과식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모든 음식을 먹기 전에 칼로리와 영양성분을 확인했다. 주로 확인했던 것은 포화지방. 빵 하나를 살 때도 쉬이 고르는 법이 없었다. 늘 숫자와의 전쟁이었다. 나는 마름을 동경했다.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늘 동경했었다. 마른 사람. 무언가 욕심도 없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이고, 무슨 일을 해도 차분한 느낌. 탐욕이 덜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해 보이는 분위기를 갖고 싶었다.


결국 나는 당시의 나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동경하던 몸에 한 발짝 한 발짝 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음식에 집착하며 나 스스로를 옭아맬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고구마 하나, 달걀 하나로 버티는 날이 많았다.


'한 끼'라고 지칭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식사는 꼭 필수적인 약속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다.


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면 당연히 안 될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다들 살이 많이 빠졌다며 나를 칭찬했다. 예쁘다고 했다. 멋있다고 했다. 어떻게 뺐냐고 물었다. 나는 뿌듯했다. 행복해졌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 앞에서 내 모습의 전체적인 실루엣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전신 거울이 있는 곳이면 꼭 사진을 한 장씩 남겼다.


그런 날도 있었다. 과 행사가 있어 치킨을 다소 많이 먹은 날이었는데, 그날 밤에 도무지 죄책감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에 운동복을 입고 나와 2시간을 뛰었다. 발길이 닿는 곳으로 뛰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죄책감을 던져냈다. 그래, 이렇게 오늘도 나를 지켜냈어. 그런 마음이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도 행복하지 않다. 폭식증은 한 번 터지면 바로잡기 힘들다고 한다. 그 말을 그대로 증명하듯, 나는 폭식증과 함께 서른 줄에 접어들고 말았다. 이십 대 전부를 폭식과 함께 보내고 말았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후회스럽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기혐오가 치밀어 오른다.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렇게 운동을 할 수도 없고, 식사를 굶는 것도 어렵다. 이제 난 더 이상 마르지 않았고, 오히려 운동을 시작하기 전보다 체중이 늘었다. 요요는 필수적이라더니. 이제 더 이상 칼로리를 비교해 가며 음식을 먹지도, 지독하게 밥을 굶지도 않지만, 폭식은 어느덧 내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뚱뚱'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기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과식을 하는 순간 폭식으로 이어져 미친 듯이 음식을 위에 집어넣는다. 위가 터질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그리고 변기를 붙잡고 게워낸다. 그건 내게 숨 쉬는 행위처럼 쉬운 것이 되었다. 퉁퉁 부은 얼굴과 실핏줄이 가득한 흰자를 본다. 더 이상 거울을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린다. 양치를 하고, 늘어놨던 접시들을 정리하면서 울고 싶은 심정을 억지로 다스린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 생각한다. 그럼에도 울고 싶다. 어딘가에 털어놓고 엉엉 울고, 제발 스무 살 근처로 나를 돌려보내 달라고 빌어본다. 안 될 일이다.


술. 술도 뺄 수 없는 요소다. 성인이 되자마자 나는 술을 좋아했다. 많이 마셨다. 마음속에 항상 결핍이 있었다. 차차 기록하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술을 마시면 일차적으로 기분이 좋아졌기에 놓을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주위 친구들 중에도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건 이십 대 중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이른바 혼술이라고 하는 안 좋은 행위의 음주습관으로 자리 잡아버렸다. 혼자 집에서 술을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고, 그럴 때면 그러잖아도 약한 판단력이 거의 0이 되어, 음식을 또 미친 듯이 집어넣었다. 폭음. 폭식. 그리고 구토. 몸이 축나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마치 자해처럼, 나는 나를 괴롭혔다.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극복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내 옆에 오랫동안 있어주었다면 달랐을까?


글을 씀으로써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소망을 품고 키를 눌러본다. 그러니까 기적처럼 낫지는 못하더라도, 하루하루 내가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운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싶다. 나중에 언젠가 폭식증을 덜어내고 '보통 사람'이 되어, 그땐 그랬었다고, 참 힘들었었지만 이겨내고 말았다고 웃으며 읽어볼 수 있게.


이 글은 그 여정의 첫 발이 될 것이다.


매일매일 폭식이 아닌 폭기(記)로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날들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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