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치 에너지가 바닥났습니다

영혼의 잔고가 '0'이 되어버린 어느 오후의 기록

by Bluebrowny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으로 몸을 밀어 넣은 지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매일 아침 나 자신을 채근하며 집을 나섰고,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영혼의 배터리를 1%까지 탈탈 털어 쓰며 버텼다. 그 결과, 내 안의 지시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아니, 어쩌면 불조차 들어오지 않을 만큼 완전히 방전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번아웃은 요란하게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거나 악쓰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게 아니었다. 아주 사소하고도 평범한 일들이 거대한 돌덩이를 나르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새로 나온 영화를 찾아보는 일, 친구의 안부 인사에 답장을 하는 일, 저녁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결정조차 숨이 턱 막히는 과업으로 느껴졌다.


가장 괴로운 건 쉬고 있는 순간조차 쉬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머릿속에서는 정체 모를 경고음이 울려 퍼진다. ‘이래도 되는 걸까? 남들은 다 무언가를 준비하며 앞서가는데, 나만 이렇게 고여 있어도 되는 걸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아주 작은 먼지처럼 깊숙이 박혀,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을 조여 오게 한다.


요즘 무기력한 것 같다는 나의 하소연에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기분 전환을 위해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라고, 운동을 시작하거나 원데이 클래스라도 들어보라고. 고마운 조언이지만, 나에게 '또 다른 숙제'로 다가올 뿐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새로운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 모든 과정 앞에서 나는 또 멈춰 서고 만다.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나를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노동도 하고 싶지 않다. 지난 10년 동안 모든 에너지를 타인과 세상을 향해 쏟아부은 대가는, 나 자신을 돌볼 한 줌의 기력조차 남지 않은 무기력함만 남았을 뿐이다.


지금 내 나이는, 인생의 중간 점검을 하기엔 너무 빠르고,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은 애매한 숫자 위에 서 있다. 나는 이제 인정하기로 한다. 마음의 발전소가 잠시 가동을 멈췄다는 것을. 억지로 자가발전기를 돌려 빛을 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을. 비로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누릴 수 있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