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없는 행위는 죄가 될까

무용(無用)의 상태로 존재하는 권리에 대하여

by Bluebrowny

우리는 ‘쓸모’가 신앙이 된 시대를 산다. 아침에 눈을 떠 잠들 때까지, 우리의 하루는 숫자로 치환된다. 걸음 수, 읽은 페이지, 처리한 메일, 혹은 미래를 위해 쌓은 적금의 액수까지.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한 시간은 곧 ‘손실’로 간주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보낸 오후는 은밀한 죄책감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서른셋, 생의 허리에 서서 나는 묻는다. 생산성 없는 행위는 정말 죄가 되는 것일까.


새로운 취미를 거부하고 인간관계를 축소하며, 가만히 숨을 고르는 행위는 나태함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도구로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생산적 인간’이라는 규격에서 벗어나, 오로지 ‘존재하는 인간’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그릇이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안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이듯, 우리 삶에도 무언가를 담기 위한 거대한 공백이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나를 채찍질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를 구원하는 것은 늘 가장 무용한 순간들이었다. 창가에 비친 햇살의 각도를 관찰하는 일, 식어가는 찻잔의 온기를 손바닥으로 느끼는 일, 목적 없이 길을 걷다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일들. 이런 행위들은 엑셀 시트에 기록되지 않고, 이력서에 한 줄 보태지 지도 않는다. 하지만 방전된 영혼을 아주 미세하게 충전시키는 것은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바로 이런 ‘생산성 제로’의 순간들이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10년의 성실함 끝에 찾아온 무기력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그동안 충분히 뜨거웠다는 훈장이다. 억지로 나를 일으켜 세워 다시 생산의 대열에 합류시키지 않기로 했다. 취미가 없어도, 인맥이 좁아져도, 오늘 하루를 통째로 멍하니 흘려보냈어도 괜찮다. 나는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태어난 기계가 아니라, 삶을 감각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무용한 평화야말로,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중한 예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