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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씨 Aug 10. 2022

축제


지난주에는 거의 10년 만에 락페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전혀 갈 생각이 없었는데, 라인업이 차례차례 뜨고 사람들이 일찌감치 예매를 끝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흥미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히 좋아하는 밴드가 출연하지도 않고 같이 갈 친구도 마땅히 없다는 건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사실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나는 원래 혼자 잘 놀고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이 아니어도 신이 나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곳을 빠져나온다는 게 정말이지 쉽지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아가는 것보다 편안했다. 그래서 지금이 최대한의 행복인 줄 알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했던 나머지 관계의 조화로움이 주는 위로와 즐거움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가고 싶은 마음 반, 가서 혼자 있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 반이 뒤섞여서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페스티벌에 가자고 적극적으로 권유해준 친구가 있었다. 그럼에도 바보처럼 망설이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공짜 표가 생겼다. 그래서 결국 “가겠다”고 선언했다. 즉흥적으로 한 말 같았겠지만 그 순간 나는 나름의 용기를 낸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10년 만에 락 페스티벌에 가게 되었다.

그다지 의지가 없었던 사람치고는 꽤나 준비물이 많았다. 초등학교 봄소풍 이후 처음으로 생수도 얼려놓고 돗자리와 캠핑 의자, 물티슈, 스포츠타올, 우비까지 꼼꼼하게 가방에 넣었다. 너무 들떠있는 모습이 살짝 민망했지만 실제로 그만큼 설레었다. 오후 1시쯤 공연장 근처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밖을 내다보는데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는 잔뜩 꾸미고 온 사람도 있고 편안한 복장에 짐을 한 보따리 든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을 보다가 어쩐지 마음이 조급해져서 조금 서둘러서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


펜타포트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던 적이 있었나, 이토록 많은 인파를 한눈에 담아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살짝 전율이 일었다. 밴드의 음악 소리가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좁은 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밝은 표정으로 어디론가 향했다. 낯설고도 익숙한 풍경이 나도 모르게 나를 웃게 했다. 커다란 짐을 들고 (초면이었지만)일행이 있는 피크닉 존으로 가서 돗자리를 펴고 앉자 ‘아, 나도 이제 이곳의 한 명이구나’ 싶었다. 예전 같았다면 짐을 풀자마자 무대 앞으로 가서 몸을 흔들고 노래를 불렀을 텐데 아직 그 정도로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일단은 구름이 가득 끼어 오히려 뜨겁지 않은 하늘을 보고 누워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래도 체리필터가 마지막 곡으로 낭만고양이를 부를 때는 벌떡 일어나 같이 노래하고 일부는 카메라로 녹화를 했다. 조금씩 조금씩 분위기에 젖어가도록 나를 내버려 두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도착하고 인사를 나눴다. 그때마다 사람을 만나 눈을 마주 보고 웃는 일이 굉장히 새롭게 느껴졌다. 준비해온 술과 음식을 나눠 먹고 온갖 소음을 헤치며 대화를 나눴다. 자주 앉아서 쉬고 가끔은 흩어져서 각자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랜만에 옛 친구들도 만났다.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정말이지, 이만하면 훌륭하고 멋지게 자라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허덕이지도 않고 곁에 둘 사람을 찾아 헤메일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것이 한결 여유로워졌고 목적 없이 반가워할 수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술을 사고 다음을 기약하며 웃었다. 축제가 만들어준 행복감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정함을 두 배로 만들어준 것 같았다. ​


내가 외면했던 세상에 다시 내 발로 걸어 나갈 때의 두려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은 억지로 쥐어짜 낸 용기가 아니라 네가 나에게 내민 손이다. 비록 많은 것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함께 어울릴 수 있다면 거기서 나오는 시너지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웃었고, 상대의 호의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모든 것이 위로가 되었다. 한 친구가 내 팔에 자신의 팔찌를 끼워주었다. 너무나 마음이 밝고 건강한 친구였기 때문에 그 기운이 나한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주는 사람에게는 그렇게까지 큰 의미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이 날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큰 선물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스스로 갇혀 있었던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락 페스티벌에 다녀와서 음악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이런 감상만 늘어놓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 날이 마음의 축제로 기억될 것이다. 당신의 상냥함과 다정함에 나는 이렇게 한 발자국 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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