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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레몬 Aug 10. 2024

두바이 초콜렛 그리고 반미

메뚜기떼처럼 간식업계의 트렌드를 휩쓸고 있는 두바이 초콜렛, 단것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면서도 자꾸자꾸 반복적으로 입력되는 유행의 물결에 결국 나도 휩쓸리고 말았다.

두바이 초콜렛은 얇은 카다이프면을 버터에 바삭하게 볶아낸 뒤 피스타치오 잼으로 꾸덕하게 섞어낸 속을 얇은 초콜렛으로 코팅한 간식인데, 묘사만 봐도 달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바삭바삭하게 씹히는 카다이프면과 고소한 피스타치오잼이 단맛도 중화시켜 주고, 식감도 굉장히 좋을 것 같다는 환상이 있었다.

원조 두바이 초콜렛은 비쌀뿐더러 품귀현상으로 구하기도 힘든 지경이 되었다는 얘기에 집 근처의 수제 디저트집들을 물색하던 중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두바이 초콜렛을 만든다는 리뷰가 여러 개 있는 디저트집을 발견했고 며칠정도 살까 말까 고민에 빠져 있었다.

평일에는 사고 싶어도 퇴근하고 사러 가면 이미 품절되어 살 수가 없었고 주말에는 집 밖으로 나가기 싫은 집순이의 본능이 나의 발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의 시기가 제법 길어졌는데, 어느 주말 아침 두바이 초콜렛과 아메리카노를 아주 맛있게 먹는 꿈을 꾸고 홀린 듯 지갑만 급하게 챙긴 뒤 뛰쳐나갔다.


다행히 오픈한 지 30분 밖에 안 된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상당한 수의 초콜렛이 남아있었고, 혹시 맛있을 때를 위해 여분으로 한 개를 더 구입한 뒤 집으로 오는 길에 꿈에서 본 장면을 실현시키고자 아메리카노를 구입하기 위해 단골카페도 들렀지만 문이 닫혀있었다.

요 근래 오픈시간이 유동적으로 바뀌어 인스타그램에 공지하신다고 들었는데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아서 생긴 소소한 비극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내 손에는 꿈에서도 그리던 두바이 초콜렛 두 개가 쥐어져 있으니까.


폭염 속을 걸어서 다녀온 뒤라 빠르게 샤워를 마친 나는 기왕 처음 먹는 간식을 먹으려는 참이니, 아점도 처음이자 평소에 궁금하던 음식을 시켜보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반미인데 사실 나와 남편은 쌀국수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 동남아 음식점에 가면 쌀국수를 먹지 굳이 반미를 시켜 먹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이 어떤 날인가, 기왕이면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에 반미를 주문하고, 남편 몫으로는 쌀국수를 주문했다.

남편은 굉장히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에는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라 같이 반미에 도전해 보겠냐는 말은 가차 없이 기각되었다.


초콜렛은 살짝 녹여먹는 편이 맛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서 식탁에 두바이 초콜렛을 올려놓고 반미가 배달될 때까지 드립커피를 내렸다.

손목 관절이 별로 안 좋은 편이라 원두는 남편이 갈고, 나는 드립포트로 찬찬히 커피를 내리며 기대감으로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배달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열심히 내린 드립커피는 모닝커피로 이미 다 마셔버린 뒤였고, 반미랑 커피랑 먹으면 맛있었을 거라는 마음에 아쉬운 대로 인스턴트 블랙커피가루를 급하게 탔다.

그런데 마침 인스턴트커피의 브랜드가 베트남 브랜드라 오히려 잘 됐다는 마음으로 기대감에 반미를 한입 문 순간.


’원래 이렇게 단건가?‘


가득 들어있는 불고기에서는 불향보다 더 강한 단맛이 느껴졌고, 채소의 아삭함은 뒤늦게 느껴졌다.

현지에 가서 먹어야 맛있는 것이었을까? 분명 리뷰에는 맛있다는 얘기로 가득했는데.. 사장님이 베트남 현지인이라고 그랬는데..

다행히 바게트는 바삭하고 담백해서 맛있었지만, 기대와는 다른 맛에 실망스러웠던 나는 반정도만 먹은 뒤 남편에게 뒤를 맡겼다.

왜냐면 나에게는 아직 두바이 초콜렛이 남아있으니까!

커피로 입의 단맛을 지워낸 뒤 몇 주동안 기대하던 두바이 초콜렛을 크게 한입 물자마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몇 달 동안 기대하고 기대하던 제주도 여행지의 유명 녹차 아이스크림.

굉장히 말끔한 녹차맛과 적당한 단맛이 어우러질 것을 기대했던 아이스크림은 너무 달아서 한입 이상은 먹을 엄두도 낼 수 없어 실망만 가득했던 적이 있었다.

이 초콜렛은 그 이상이었다. 먹자마자 으악하는 비명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몇 초 정도 씹지도 못하고 경악에 찬 표정의 나를 본 남편이 급하게 커피를 가리켰다.

커피로 급하게 단맛을 중화시킨 나는 초콜렛이 너무 달았던 게 아닐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안쪽의 피스타치오 카다이프 속을 살짝 꺼내 먹었는데 여전히 달았다.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보다 더 달디달고 달디달고 단 두바이 초콜렛.. 식감이 좋긴 한데 그 식감을 온전히 느낄 수도 없이 단맛이 먼저 입을 공격하는 맛이었다.

나보다 단걸 더 못 먹는 남편은 당연히 시도조차 못 해보고 두바이 초콜렛은 그렇게 냉동실 나니아 세계 속으로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


커피를 마시고도 여전히 두바이 초콜렛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에게 남편이 반미를 쥐어줬는데, 한입 베어 물자 아까 먹은 반미와는 달리 불향과 채소의 살짝 매콤한 맛만 느껴지는 평범한 바게트 샌드위치의 맛으로 바뀌어있었다.

불고기의 단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초콜렛이 달았던 모양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이 두 개를 먹을 일이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하려 했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냉동실에서 차갑게 얼어있을 먹다남은 두바이 초콜렛의 안부가 다시 궁금해졌다.

얼려먹으면 단맛이 좀 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조심스레 한입 먹어보고 왔는데 여전히 달디달고 달디 단 맛이 느껴졌고, 진정한 안녕을 위해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혹시 두바이 초콜렛 안 먹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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